또 하나의 ‘셀프 빅엿’이 될 것인가. 한나라당의 새 당명 ‘새누리당’을 둘러싼 당 안팎의 논란이 뜨겁다. 정당으로서의 무게감과 책임감도, 지향하는 가치도, 쇄신의 효과도 모두 날아가버렸다는 아우성이 여권 내부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 “유치원 이름으로는 괜찮아”
공모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새 당명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문구로 유명한 카피라이터 조동원씨의 작품이다. 홍보기획본부장으로서 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최근 합류한 그는 “(당명에) 놀이 같은 느낌이 있어도 좋다. 비판자도 외면하지 않고 앞으로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의 우려와 반발에 대해서도 그는 “순우리말이고, 기호 1번은 그대로가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쏟아지는 패러디 속에서 “새누리당은 정당이 아닙니다, 1%입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최종 후보작에는 ‘새누리당’ 외에도 ‘새희망한국당’ ‘한국민당’ 등이 올라왔다. ‘새나라당’은 기존 한나라당의 당명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새 당명이 확정돼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지은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은 14년3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향후 상임 전국위원회와 전국위 의결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새 당명은 비대위 지도부에 의해 이미 확정된 상태다. 언론사들도 한나라당 대신 ‘새누리당’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새 당명으로 총선을 돌파해야 하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반대론을 주도하고 있는 친박계 핵심 유승민 의원은 “지역 주민들에게 새누리당의 뜻을 설명할 생각을 하니 머리에 쥐가 난다”고 혹평했다. 유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의원들과 상당수 쇄신파 의원들은 “당명 개정 과정에서 의원들의 여론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다”며 이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명분도, 철학도, 고민도 없는 이름”(전여옥), “핵심적인 가치가 빠졌다”(신지호)는 내부의 비판도 제기됐다. 여당 내부뿐 아니라 보수 진영 전반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앞선다. 보수논객 조갑제씨는 ‘누리’의 사전적 의미에 ‘메뚜깃과의 곤충’이 포함돼 있다며 “메뚜기당? 새누리당은 최악의 개명”이라며 “유치원 이름으로는 괜찮지만”이라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새 당명에 힘을 싣고 있다. 당명 개정을 주도한 박 위원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새누리당’의 ‘새’는 새로움,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가자는 뜻”이라며 “우리가 꿈과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많이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두둔했다. 상처만 남긴 채 또다시 당명을 개정하는 일도, 그렇다고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는 판단이 깔린 듯하다. 여당이 새 당명을 확정해 발표한 2월2일은 공교롭게도 환갑을 맞은 박근혜 위원장의 생일이었다. 생일을 맞아, 야심차게 내놓은 당명이 오히려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셈이다.
“비례대표로 철새들을 공천하라”
누리꾼들의 반응도 대세는 조롱조다. 인기 스마트폰 게임 의 캐릭터인 새 머리와 기존 한나라당 로고를 합성한 사진까지 나돌고 있다. “당가는 가수 싸이의 로, 당의 슬로건은 ‘나 완전히 새 됐어’로 하라” “비례대표로 철새들을 공천하라”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는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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