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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강경 정책이 무너뜨린 남한기업

대북 경협 중단 5·24 조처로 피해 입은 기업 정부 상대 소송…남쪽 직접손실 45억8천만달러, 간접손실 124억7천만달러 이르지만 북쪽 손실은 1/5에 불과
등록 2011-06-15 17:07 수정 2020-05-03 04:26

새 세기가 시작된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분단 55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는 경제협력에 관한 것도 있었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정부 조처 적법해도 기업에 보상해야”

‘6·15공동선언’ 11돌을 맞은 2011년 6월, 남북 경제협력은 사실상 파산 상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되는 등 위기에 처했다. 특히 지난해 3월26일 천암한 침몰 사태 이후 정부의 5·24 대북 제재 조처는 치명적이었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북 교역 및 경협사업을 전면 중단시킨 것이었다. 개성공단도 2007년 분양받은 기업들은 추가 투자할 수 없게 됐다. 남북 경협에 참여해온 기업 대부분은 이미 도산했거나 도산 위기에 처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북한에 새로 투자하거나 물품을 보내기는커녕 기존 투자조차 회수할 수 없게 됐다. 위기에 처한 이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거나 준비 중이다.

» 상당수 남북경재협력 기업들이 정부의 지난해 5·24 대북 제재 조처로 큰 피해를 입어 소송을 제기했거나 준비 중이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노동자들이 출경 수속을 밟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 상당수 남북경재협력 기업들이 정부의 지난해 5·24 대북 제재 조처로 큰 피해를 입어 소송을 제기했거나 준비 중이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노동자들이 출경 수속을 밟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맨 처음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망한 중소기업 사장이다. 엔에프엔 김찬웅 대표는 2007년부터 평양에서 의류를 위탁 제조해 이마트와 이랜드 등에 납품해왔다. 지난해에도 평양에 원자재를 보내 다시 완제품을 받을 예정이었다. 5월27일 103만2천달러(소비자가 기준), 6월5일 54만1천달러, 6월10일 23만5천달러어치다. 하지만 정부가 5·24 조처를 취하는 바람에 그의 물품은 북한에 발이 묶였다. 회사는 망했고, 김 대표는 빚더미에 올랐다. 김 대표는 지난 3월 소송을 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초 여름용으로 원자재를 보내 5~6월께 제품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하나도 못 건졌다”며 “팔 물건이 없어지자 납품을 못해 이마트에서 철수하고, 공장도 경매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또 “여름 물품뿐만 아니라 가을·겨울 물품까지 포함하면 피해가 30억원이 넘지만 5·24 조처로 받지 못한 물품에 따른 피해액인 21억여원에 대해서만 피해보상 소송을 냈다”고 덧붙였다.

소송에 참여한 법무법인 시민의 김선수 변호사는 정부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소장에서 “통일부는 5·24 조처 이전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할 기회도 주지 않고 대북교역 및 경협사업에 대한 가장 강력한 조처를 취했다”며 “이는 직무 집행에 있어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개성공단에서 사업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중단 조처를 취하지 않아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 조처가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헌법 제23조 23항의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서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보상이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5·24 조처로 말미암아 (기업들이) 입은 손실 전체를 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 기업도 소송준비 잇따라

개성공단 입주 예정 기업들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겨레사랑’은 개성공단에 지상 14층, 지하 3층짜리 건물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5·24 조처로 전면 중단했다. 정범진 사장은 “개성공단 투자의 경우 땅을 사고 설계, 제반 인허가 등을 다 마친 뒤 착공 시기만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며 “5·24 조처로 모든 투자가 금지돼 초기 투자만 한 채 증액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기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원천적으로 막혔다”고 말했다. 또 “토지대금, 설계비, 제반 인허가 취득 비용, 금융비용, 운영비용 등을 포함하면 개성사업에만 순수하게 2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며 “기업의 신뢰도 하락까지 고려하면 피해는 계산하기 힘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정 사장은 6월 안에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변호사와 논의 중”이라며 “정부 조처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손해보상 소송을 같은 피해를 입은 다른 회사들과 함께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도 “2007년 개성공단 부지를 분양받아 공장을 세우다가 공사를 중단한 상태”라며 “피해 금액은 1억~2억원으로 많지는 않지만, 공장을 세워 생산하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은 것은 기업으로서는 아주 큰 피해”라고 말했다. 또 “경쟁 업체들이 새로운 물품을 생산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처를 못하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불이익을 입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오죽하면 소송을 고려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통일연구원 김영윤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우리나라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24일 열린 ‘남북경협기업의 현실과 해법’ 토론회에서 남한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이후 2010년까지 남북 경협에서 입은 직접적 손실액만 총 45억8734만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반면에 북한이 입은 직접적 손실은 8억8384만달러로 남한의 19.8%에 불과했다. 여기에 원자재와 가공품이 국내에 들어와 유발할 산업연관효과 등까지 고려하면 남한의 간접손실액은 124억7천만달러에 달했다. 김영윤 연구원은 “북한은 기본적으로 경제제재에 익숙해져 있다”며 “남북관계 단절로 당장 외화 수입에는 차질이 있지만, 북한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경색 국면의 지속은 한반도의 국가 위험을 높여 남한의 대외신인도에 직접적 타격을 준다”고 지적했다.

또 같은 토론회에서 공개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주축이 된 ‘남북경협실태조사단’의 실태조사에서 남북경협기업 62.4%가 “(정부 조처가) 실효성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에 “실효성이 있다”는 22%에 그쳤다. 설문 대상은 남북경협업체 493개였다.

강경대응 고집하는 통일부

그럼에도 통일부 등 정부는 강경 대응을 고집하고 있다. 엄종식 통일부 차관은 이 토론회 축사에서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과거 방식의 남북관계로 돌아간다면 ‘도발-대화-도발’이라는 남북관계의 악순환과 북한의 무분별한 지원 요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북한 당국의 구체적 행동 변화와 정상적 남북관계 형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5·24 대북 조처는 일관되게 견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강경 대응을 계속하겠다는 공언이다.

하지만 남북경협 전문연구자인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경협기업들이 도산하고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통일부를 비롯해 정부는 이에 눈감고 있는 것”이라며 “5·24 조처로 인한 피해는 경제적 손실과 한반도 불안 고조 등을 고려하면 북한보다 남한이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미국이 7월께 대북 식량 지원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이제라도 우리 정부가 인도적 지원이나 적십자회담 등 낮은 단계의 대화를 시도해 점점 고위급으로 확대하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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