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개인 정책연구소인 ‘국가미래연구원’이 지난해 12월27일 발족식을 열었다. 이를 두고 각 언론은 박 전 대표의 ‘싱크탱크’ ‘브레인’이 공개됐다고 기사를 쏟아냈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개인적 인연이 있거나, 해당 분야에서 ‘통’으로 알려진 교수·전문가 집단에 정책 자문을 받는다. ‘싱크탱크’니 ‘브레인’이니 하는 말이 암시하듯, 정치인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혼자 정책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문 그룹을 아예 하나의 공식 모임으로 집결하고, 드러내놓고 ‘내 사람’이라고 알리는 게 바로 개인 정책연구소다.
싱크탱크, 대선 주자의 필수품
국가미래연구원은 김광두 서강대 교수(경제학)가 원장을 맡았고, 경제학 전공인 김영세 연세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등 78명이 경제·복지 등 15개 분야를 자문한다. 박근해 전 대표는 연구원 발족식에 앞서 지난 12월20일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어 ‘한국형 복지’ 모델을 발표했는데, 이는 안종범 교수가 총괄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앞으로 재정·외교안보·과학기술·교육 등의 분야에서 연구원의 도움을 얻은 정책을 차례차례 발표하며 대선 레이스를 이끌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뿐만 아니라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대부분 이런 싱크탱크를 갖고 있다. 한나라당 쪽에선 정몽준 전 대표가 2009년 ‘해밀을 찾는 소망’을 꾸렸다. 경제학자인 김경환 서강대 교수와 정갑영 연세대 교수가 참여하고 있으며, 정명주 부산대 교수(행정학)와 김영한 전 기무사령관 등 103명이 5개 분과의 자문위원을 맡았다. 정 전 대표가 설립한 ‘아산정책연구원’도 “개인 연구소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 이재오 특임장관 등은 공직에 있기 때문에 개인 연구소를 꾸릴 처지가 아니다. 김 지사의 측근인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 국가미래연구원 출범과 관련해 “당내에 이미 훌륭한 연구소와 의원들이 있지 않나. (연구소 출범) 따라가기를 해선 안 된다”고 한 얘기엔 오히려 초조함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연구원’이라는 이름만 붙이지 못할 뿐,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가동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은다. 특히 차기 대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김 지사의 경우 경기도 산하의 경기개발연구원이 사실상 개인 싱크탱크라는 평가를 받는다. 좌승희 원장 취임 뒤 연구원은 500명이 넘는 규모로 커졌고, ‘중앙정부급’ 정책을 연구한다. 한-일 해저터널, 수도권 규제 완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와 메가시티, 서해안 종합개발계획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보다 더딘 편이다. 가시적인 연구소 형태로는 최근 재가동된 손학규 대표의 ‘동아시아미래재단’이 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손 대표가 2006년 설립한 동아시아미래재단은 김성수 전 성공회대 총장이 이사장,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상임이사, 손광현 청주대 교수(불문학)가 사무총장이다. 손 대표 후원회장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도 자문그룹에 속한다. 2007년 대선 이후 사실상 활동을 접었던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 때 손 대표의 전략을 자문하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12월7일엔 ‘위기의 한국사회, 진보개혁의 과제’라는 주제로 정책 심포지엄을 여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했다.
명단 공개로 전문가 ‘선점’ 효과
정세균 전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은 2011년에 싱크탱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정 전 대표는 10여 년 전부터 매월 한 차례씩 모여 공부를 함께 한 ‘미래정치경제연구회’를 비롯해 정·재계를 아우르는 대규모 싱크탱크를 1월 말께 선보인다. 윤성식 고려대 교수(행정학),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 전도영 서강대 교수(기계공학),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이 주축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 대선 때 싱크탱크였던 ‘나라비전연구소’ 인력을 기반으로 자문그룹을 확대해 ‘연구 네트워크’를 가동할 계획이다. 권만학 경희대 교수(국제관계학), 김관옥 계명대 교수(정치외교학), 안병우 한신대 교수(국사학) 등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싱크탱크는 기본적으로 대선 주자들이 당내 경선과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놓을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다. 한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비전이야 대선 주자 머리 속에 있겠지만, 이런 비전에 근거해 외교·국방·경제·문화·교육·복지 등 각 분야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는 건 싱크탱크의 몫이다. 때론 대선 주자가 가진 아이디어 수준의 구상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후보가 내놓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운하 건설을 꿈꿨다는 그의 의지는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원’의 손을 거쳐 공약으로 탄생했다. 거꾸로 대선 주자에게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이미지를 제고하고,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아산연구원이 로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의 대중 강연회를 열고, 보수층에서 각광받는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과 정몽준 전 대표의 대담을 추진한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대선 주자의 세를 과시하고 지지 기반을 확실히 다지는 동시에 넓히는 데도 싱크탱크는 쓸모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국가미래연구원은 발족식 전부터 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느냐로 관심을 끌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대선 경쟁은 세 과시가 아니라 정책으로 하는 것”이라며 이런 분석에 손사래를 쳤지만, “연구원은 호남 출신 원장에, 진보와 보수 인사들이 섞여 있다. 서울과 지방의 대학교수들도 골고루 포함해 지역과 이념을 뛰어넘어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 구성에 그만큼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한편 싱크탱크 명단이 공개될 경우엔 유능한 전문가를 ‘선점’하는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다.
MB 정부에 포진한 싱크탱크 출신들그럼 싱크탱크에 참여하는 이들은 뭘 얻게 될까? 학자와 전문가 처지에서 볼 때 자신이 연구한 결과가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은 매우 뿌듯한 일이다. 운이 좋으면 그게 끝이 아닐 수도 있다. 대선에서 이길 경우엔 정책을 직접 현실에 적용할 기회와 ‘감투’가 따라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전략연구원’과 ‘바른정책연구원’ 두 곳의 도움을 받았다. 국제전략연구원은 이 대통령이 1994년 직접 설립한 개인 싱크탱크고, 바른정책연구원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때 매달 한 번씩 연 정책포럼이 이어진 것으로 퇴임 뒤인 2006년 7월 발족했다. 국제전략연구원장은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대통령실장을 지낸 류우익 주중 한국대사다. 김영우 정책국장은 18대 총선에서 당선돼 한나라당 의원이 됐고, 곽승준 정책실장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거쳐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전 국세청장)은 바른정책연구원장 출신이고, 강만수 청와대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이 연구원에서 활동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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