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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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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뺨 맞고 전교조에 화풀이

보수의 바람대로 ‘드디어’ 전교조 교사 명단 4월 중순 공개…
“교육 실정 감추려 전교조 죽이기에 매달려”
등록 2010-03-26 17:16 수정 2020-05-03 04:26

4월 중순이 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의 명단이 공개된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가 대상이다. 예컨대 서울 ㄱ고교의 전교조 가입 교사가 모두 몇 명인지, 어떤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했는지, 4월 중순이면 알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교육 관련 이슈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등 야 5당과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가 3월18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실시 및 입법화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교육 관련 이슈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등 야 5당과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가 3월18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실시 및 입법화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들통난 속내 “명단 공개, 한나라당에 유리”

전교조 가입 교사의 명단 공개는 한나라당과 교육과학기술부,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단체가 집요하게 노력한 결과다. 한나라당에서는 조전혁 의원이 앞장섰다. 뉴라이트 계열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 출신인 조 의원은 18대 국회 진출 이후 교과부에 ‘교원단체 노조 가입 현황’ 공개를 요구하는 등 ‘전교조 저격’의 선봉을 자처했다. 조·중·동은 그때마다 사설과 칼럼으로 전교조 명단 공개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장외에서는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 단체가 논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3월11일 법제처로부터 교원노조 교사 명단을 국회에 제출해도 괜찮다고 유권해석을 받은 교과부는 4월 중순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에 매달리는 의도는 비교적 명쾌하다. 겉으로 내세운 근거는 “학부모의 알 권리 보장”이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친절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선거용’이라는 사실을 직접 알려줬다.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의원은 3월16일 인터뷰에서 “전교조 가입 교사의 명단이 공개될 예정인 만큼 이번 선거에서는 전교조 문제가 이슈화될 것”이라며 “교육은 국민의 관심을 끄는 이슈로, 전교조 명단 공개는 야당보다는 한나라당에 더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6·2 지방선거에서 전교조를 이슈화하겠다는 이야기는 ‘전교조 심판론’을 선거에 끌어들이겠다는 뜻이다.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를 계기로 전교조의 좌편향성과 부도덕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한 뒤, 이를 공교육 정상화 논리에 활용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계산이다.

3월 말 시행될 예정인 ‘교원능력개발평가제’에 전교조가 그동안 반대해왔다는 사실도 한나라당이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소재다. 전교조는 전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에 재직 중인 모든 교원을 동료 교원이 평가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만족도를 묻는 교원평가제에 부정적이었다.

한나라당의 움직임은 최근 교육비리 척결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와 일정한 관계가 있다.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의 인사비리 등이 드러난 뒤 이 대통령은 토착비리 청산과 함께 교육비리 척결을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도 ‘교육비리근절 제도개선 정부지원 TF’ 구성 계획을 밝히는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 마련에 나서겠다며 거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교육비리 척결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교원평가제는 여권이 주장하는 ‘공교육 정상화’의 필수 요소다. 전교조가 교원평가제에 보이는 태도에 따라 ‘전교조=공교육 정상화의 걸림돌’이라는 공세를 펼치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얼마 전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간 전교조 조합원의 민주노동당 가입 의혹 사건 수사도 변수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교조를 정치집단이라는 식으로 매도해왔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거에 휘말리고 있는 전교조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말하는 ‘전교조 심판’의 내용을 되물었다. “한나라당은 지금 전교조의 구체적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는 무조건 악, 전교조 반대는 선’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이념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편가르기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번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카드로 전교조를 활용하고 있는 셈인데 우리로서는 억울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엄 대변인은 조만간 시행될 예정인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도 “전교조는 주요 정당과 교원단체, 학부모단체가 참여하는 6자 협의체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근무평정이라는 잘못된 승진구조를 개선한다면 합리적 평가를 수용하겠다고 말했는데도 전교조가 교원평가제를 무조건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무상급식 찬성 80%에 한나라 ‘조급’

한나라당이 전교조를 선거로 끌어들이려는 1차적 이유는 ‘프레임 전쟁’에서 밀렸다는 조급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등 야권은 6·2 지방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제안했다. 특히 민주당은 무상급식 공약이 30~40대 학부모층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3월3일 ‘무상급식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다.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 비리와 자율형 사립고 입학 부정 사건이 불거지자 정부는 교육비리 척결 구호를 내세웠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2월25일 교육비리 파문 대책 마련을 위해 열린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 비리와 자율형 사립고 입학 부정 사건이 불거지자 정부는 교육비리 척결 구호를 내세웠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2월25일 교육비리 파문 대책 마련을 위해 열린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실제로 과 한길리서치가 3월13~14일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초·중등생 전체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9.5%로 반대 의견(19.2%)을 압도했다. 찬성 의견 가운데서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응답은 절반에 가까운 것(45.8%)으로 나타난 반면 ‘적극적 반대’는 소수(4.1%)에 그쳤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압도적 지지(71.8%)가 나온 사실이 눈길을 끈다.

민주노동당 소속 서울시의회 이수정 시의원이 3월9일부터 엿새간 시의회 사무처를 통해 서울 시민 2179명에게 전화 여론조사로 무상급식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도 비슷하다. 응답자의 78.9%가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무상급식 공약이 대중적 지지를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던 이유로는 6·2 지방선거가 16개 시도 교육감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다는 사실이 꼽힌다.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를 거치며 각 정당은 교육감 선거의 정치적 의미를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지방교육자치법을 보면 정당은 교육감 후보를 공천하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교육감 선거와 광역단체장 선거 등이 함께 치러질 경우 각각의 선거는 서로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표적 교육 이슈로 꼽히는 무상급식 프레임은 교육감 선거와 지방선거 유권자의 관심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는 소재였다. 정당 소속 광역단체장 후보가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건다 해도 해당 지역 교육감 당선자의 의지 없이 추진되기 어렵다.

무상급식 프레임에 밀리자 새 카드

민주당 지방선거기획본부에서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유기홍 전 의원은 “무상급식 등 교육 이슈가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는 현상은 토건 시대를 지나온 한국 사회가 이제 더 좋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복지·생태와 더불어 교육 분야로 시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본다”고 말했다.

‘무상급식 프레임’에 빠진 한나라당의 최초 선택은 야권과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하는 무상급식을 매도하는 전술이었다. 정두언 의원 등은 “우리 한나라당은 서민에게 무상급식을 하자는 것인데, 야당은 엉뚱하게도 부자에게도 무상급식을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준표 의원은 “국민의 세금을 걷어 쓰지 말아야 할 곳에도 쓰는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무상급식에 대해 각을 세울수록 손해 보는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에서 “경쟁자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해 줄 뿐”이라며 “상대방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순간, 그들의 생각이 바로 공론이 중심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조지 레이코프가 지적한 오류를 그대로 따라했다. 물론 이같은 공세가 무상급식 바람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지도 못했다.

교과부의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 방침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전교조 문제 이슈화될 것” 발언은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비리 척결 구호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의 전교조 공세 등 여권의 움직임을 무상급식 프레임에서 탈출하겠다는 의도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인사비리·부정입학도 책임론 대두

한나라당이 예고한 ‘전교조 vs 반전교조’ 전선이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과거 경험을 보면 한 번은 성공했고 한 번은 실패했다. 성공의 경험은 2008년 7월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다. 공정택 전 교육감을 당선시킨 당시 선거가 전형적인 ‘전교조’ 대 ‘반전교조’ 세력의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도 보수 진영은 선거를 그런 식으로 몰고 갔다. 보수 단체와 는 주경복 후보에게 반복적으로 ‘전교조 지원을 받는’ 전교조 후보의 낙인을 찍었다. 반면 공정택 전 교육감은 ‘반전교조’ 후보로 알렸다.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됐지만 그때는 실패했다. 보수 성향 후보의 분열 속에서 지금의 김상곤 교육감이 여유 있게 당선됐다.

전교조 낙인찍기 움직임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교육계 비리 척결, 공교육 정상화 구호가 여당 선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8년 보수 진영의 일방적 지원 아래 당선된 공정택 전 교육감의 인사비리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불거진 자율형 사립고 부정입학 문제도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무상급식 의제가 학부모의 많은 지지를 얻는 등 선거 상황이 여당에 불리하게 전개되니까 지방선거나 교육감 선거와 전혀 관계없는 전교조를 선거에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라며 “교육계 이명박이라 불린 공정택 전 교육감의 비리와 자사고 입학 비리가 잇달아 터진 것도 이명박 정부의 ‘교육 실정’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사례인데,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이를 모면하려고 느닷없이 교육비리 척결과 전교조 죽이기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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