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카메라 앞에서 서민을 포옹하다

MB 지지율 50% 분석…
‘흑자’ 경제 지표에, 대선 때 국민이 기대했던 ‘서민·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연출해내
등록 2010-01-12 18:02 수정 2020-05-03 04:25

1월7일 오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첫 화면에 ‘청와대 지하벙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청와대 주도로 시작된 비상경제대책회의의 2009년 활약을 다룬 기사였다. 특이한 것은 기사에 딸린 댓글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권을 일방적으로 칭찬한 기사를 비판하거나 이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를 꼬집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험악한 ‘넷심’과 실제 민심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 차이가 놀랍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연말 서울 강서구 등촌동 노후 영구임대아파트 장애인 모녀 세대를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대통령의 민생 행보가 바빠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연말 서울 강서구 등촌동 노후 영구임대아파트 장애인 모녀 세대를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대통령의 민생 행보가 바빠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넷심과 민심의 거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지난해 6월 여론조사에서 10%대를 기록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이후 대체로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12월9일 조사와 1월4일 조사에서는 각각 50%와 56.7%를 기록했다. 이쯤되면 ‘박스권 대통령’이란 표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박스권 대통령이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꼬집는 표현이었다.

이 대통령이 지지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이유로는 우선 경기회복이 꼽힌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이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상승은 특정 계층이 주도한다기보다 대부분 계층에서 전체적으로 오른 편”이라며 “경제나 외교 등 전체 계층에 골고루 영향을 주는 국가적 이슈가 지지도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차적으로는 2009년 각종 거시 경제지표의 개선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지지율 회복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았고 경상수지 흑자폭도 컸다. 물론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감소한 가운데 수입 감소폭이 워낙 커 생긴 ‘불황형 흑자’였다. 경기회복은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라는 한계가 뚜렷했다. 통계 이면의 진실을 알고 보면 무작정 박수를 보내기 어렵지만, 어쨌든 결과는 좋았다.

경제지표의 회복과 함께 가계 체감경기의 개선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를 끌어올린 동력이 됐다. 2009년 2월과 12월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경제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경제가 1년 전보다 악화됐다는 응답은 2월(93.1%)에 비해 12월(36.2%)에 크게 줄었다. 가정경제가 1년 전보다 악화됐다고 대답한 사람도 2월(50.9%)보다 12월(33.1%)이 적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부소장은 “경제적으로는 2009년 11월 말 두바이 지급불능 선언으로 유발된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이 조기에 진화되고 2010년 한국 경제에 대한 안팎의 평가가 우호적인 것이 사람들에게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되고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서 실제 내용을 자세히 알 길 없는 국민은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또 하나의 ‘마법’이 있다. 청와대의 강화된 정무 및 홍보 기능이다.

2009년 6월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PI(President Identity)에 대한 변화, 즉 좋은 부분은 강화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나가야겠다는 논의가 있었다. 서민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음에도 이른바 이미지, 감성, 그리고 소통 및 홍보 등의 부족으로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PI란 대통령 이미지 전략을 가리킨다. 점퍼 차림으로 재래시장을 찾는 이 대통령 모습이 이때부터 신문과 TV 화면을 통해 자주 노출됐다. 시장을 찾아 상인에게 목도리를 걸어주거나 포옹하는 장면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욱 자연스럽게 보였다. 주요 국정과제 홍보 광고에 대한 예산집행도 크게 늘었다. 에 따르면, 지난해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4대강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TV 방송광고에 투입된 예산은 20억원이었다. 앞서 6월부터는 라디오광고에 2억원을 썼다. 정부는 언론관련법 홍보에도 6억원 넘게 썼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과제 홍보 예산집행 크게 늘어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미지 정치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이미지를 실체와 상관없는 부정적 개념으로만 이해하는데, 2008년 촛불시위 이후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대선 때 자신에게 기대했던 이미지를 어떻게든 구현해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중동 원전 수주나 용산 참사 문제 타결로 ‘능력과 성과’를 보여주고, 서민을 열심히 찾아다닌다면 지지율이 나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무기능 강화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6월 박형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이 강조한 ‘클린턴의 트라이앵귤레이션(triangulation) 전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트라이앵귤레이션이란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렇다고 단순하게 두 주장의 중간도 아닌, 삼각형의 꼭지점을 지향하는 국정운영 태도를 가리킨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뒤 참모 딕 모리스의 조언을 받아 공화당이 주장해온 ‘균형예산’을 수용했다. 공화당의 ‘균형예산’ 공세로 어려움을 겪던 클린턴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바꿨다. ‘균형예산’을 받되, 복지예산 지출을 줄이라는 공화당의 방식은 거부한 것이다. 이를 통해 클린턴은 타협 대신 독주를 택했다는 비판도 피하고 피해도 적게 입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논란에 대응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지난해 12월 말 국회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논란이 되자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12월3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회의에 앞서 그는 “이미 이 정부의 임기 중에는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물리적·시간적으로도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4대강 사업=대운하’라고 주장해온 반대 여론의 뇌관을 제거해버림으로써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 논쟁’을 ‘우열 논쟁’으로 바꿔버린 셈이었다. 물론 보 설치 등으로 4대강 사업이 언제든 대운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적절한 시점에 효과적으로 개입했다는 평가다.

“고정층·우호적 언론 감안하면 오히려 당연”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의 상승은 주요 국정과제 프로세스를 나름대로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대통령 스스로 ‘MB다움’을 회복하면서 지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 관계자가 말한 ‘MB다움’의 요체는 사람들이 그에게 가졌던 ‘서민대통령’ ‘경제대통령’의 이미지처럼 성과와 업적 중심으로 국정을 풀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정치 현안에 일일이 개입하기보다 정쟁에서는 한발 떨어져서 외교와 국방, 대중정책 발표에 치중하는 것이 ‘MB다움’이라는 이야기다. 이 부분 역시 클린턴이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말고 외교와 국방에 치중하는 모습을 연출하라”는 딕 모리스 등 참모의 제안, 즉 ‘대통령답게 행동할 것’이라는 조언을 따른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물론 이런 ‘MB다움’이 구현되려면 미디어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컨설턴트는 “모든 대통령이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대외 정책이나 서민 정책 발표에 집중한다면 지지율은 당연히 오르게 돼 있다”며 “오히려 40%대의 고정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고 우호적 언론을 등에 업은 이 대통령이라면 안정적으로 50%를 넘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최근 지지도를 높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지지도의 마지막 함정은 여론조사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휴대전화 여론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여론조사는 통상 집에 주로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며 “정치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보수층의 응답률이 다소 높은 이유도 응답자 구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