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2010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서울을 지켜낼까? 당연한 말이지만, 알 수 없다. 한나라당·민주당·자유선진당이 각각 ‘갈라먹는’ 영남·호남·충청과 달리 서울 민심의 향방은 쉽사리 점치기 어려운 탓이다. ‘누가 당선될 것인가’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대중적 인지·지지도, 당내 입지와 역학관계, 당선 가능성, 차기 대선에 미칠 영향 등이 뒤엉켜 고차방정식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1년 넘게 남겨둔 지금으로선 ‘현역 프리미엄’이 있는 오세훈 시장이 유리해 보인다. 이 컨설팅전문업체 나우리서치와 공동으로 지난 2월6~7일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천 명을 상대로 벌인 전화면접 조사(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1%)에서, 오 시장은 차기 서울시장감으로 22.1%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여당 후보로 누가 적합한가를 물었을 땐 32.8%가 오 시장을 지지했다.
물론, 이는 안심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현직 프리미엄이 있는데다 경쟁 상대도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지지율은 예상보다 낮다는 게 오 시장 쪽의 반응이다. 이종현 공보특보는 “자체 조사에서 시정 만족도는 70%를 넘는다”며 “올해 중반 한강 르네상스, 광화문 광장, 세운상가 녹지 광장 등이 완성되면 ‘이명박의 청계천’처럼 오 시장이 만들려고 했던 ‘매력적인 서울’이 어떤 것인지 시민들도 눈으로 보게 된다. 그러면 시장 후보 당내 경선 시기와 맞물려 오 시장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세훈 시장은 당내 경선에서 투표권을 가진 서울지역 당협위원장들을 일주일에 최소한 네댓 명은 만나 식사를 하는 등 지지 기반 다지기에 힘을 쏟고 있다. 그간 소원했던 박근혜계 인사들과도 자주 접촉하면서 ‘지원군’ 확보에 힘을 쏟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세론-대안론 때이른 고차방정식하지만 ‘오세훈 대세론’에 의문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선거 프레임이 ‘이명박 정권 심판’으로 완전히 굳어지면, 경기·인천 선거에까지 미칠 영향을 고려해 언제든 ‘새 피 수혈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지난 선거 때 오 시장이 뒤늦은 ‘바람’으로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준표 원내대표를 쓰러뜨렸던 것과 똑같이, 오 시장 역시 그 ‘바람’에 날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총선 때 서울지역 출마자들과 뉴타운 지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일도 오 시장에겐 부담이다.
이번 조사에서 지지율 2위는 3년 전 오 시장한테 고배를 마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으로 나타났다. 강 전 장관은 재출마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한 인터뷰에서 “정치하다 변호사 업무로 돌아오면 일이 재미없어진다는 얘기가 있지만, 경제 흐름에 따라 주력 분야가 달라지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를 느끼고 있다. 당분간 변호사 업무에 힘쓸 것”이라고 말한 그는 최근 서울 서초동에 문을 연 법무법인 ‘원’에 합류했다. 그런데도 9.5%의 지지를 얻어 차기 서울시장감 2위로 꼽혔다. 야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선 18.6%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왜 그럴까? 민주당 인사들은 “강 전 장관이 한 번 출마했던 경험이 있는데다, 현재 당에서 서울시장감으로 내세울 만한 다른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당협위원장은 “강 전 장관은 대중적인 인기도 높고, 정치도 경험해본 민주당의 소중한 자원이다. 강 전 장관이 지금은 스스로 나서지 않지만, 그도 서울시장 선거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당이 삼고초려하면 출마를 고민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7대 비례대표 의원에 이어 18대 서울 중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5.7%를 얻어 3위에 올랐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직에 강력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서도 그의 높은 인지도 등을 이유로 출마를 권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고민은 ‘지역구 초선’이라는 데 있다. 아직은 지역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만약 시장 선거에서 떨어지면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최근엔 시민사회단체와 누리꾼들한테 ‘언론악법 5적’으로 지목되면서 표독스런 이미지가 부각됐다는 점도 부담이다.
4위엔 4.1%의 지지를 얻은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올랐다. 노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로) 당에서 결정을 한다면 우리 사회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바로 세우는 데 일조할 생각이 있다”며 서울시장에 도전할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상계동에 문을 연 사단법인 마들연구소를 기반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진보정치의 지역 모델을 실험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큰 걸림돌을 만났다. 2월9일 열린 ‘삼성 X파일’ 재판에서, 재판부는 현직 검사들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고 실명을 공개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등 위반이라며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노 대표는 이에 불복해 항소할 계획이지만, 만약 대법원에서도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3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을 치른 바 있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3.3%의 지지를 얻어 5위를 차지했다. 홍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 차례 “서울시장엔 나가지 않는다”고 공언한 바 있다. 측근들도 “경선이 아닌 추대로라면 몰라도…”라고 단서를 붙이면서도, “지금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게 대부분 재선 의원들인데, 4선에 원내대표까지 한 홍 원내대표가 나갈 자리는 아닌 것 같다”며 손사래를 친다. 홍 원내대표는 서울시장직보단 법무부나 노동부 장관 쪽에 더 마음이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6위는 3.1%의 지지를 얻은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다. 추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월5일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개인 거취 문제를 고민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 마음은 열어놓고, 당장은 실업 대책 등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팎에선 그가 차기 대선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대통령이 되려면 서울시장 경험이란 교두보가 필요하다”며 그의 출마를 권하는 이들도 있다.
원희룡·공성진 행보에 주목자천타천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 한나라당은 후보군이 넓다. “오세훈 시장이 재선에 도전하더라도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한다”고 날을 세우는 원희룡 의원은 개인 정책연구소 격인 사단법인 ‘지역과 세계’를 중심으로 정책 연구·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장기적으로 대선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복잡한 한나라당 내부 역학 구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어, 대중적 지지율이 탄력을 받으면 이명박계 의원들의 지원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시당 위원장 출신으로 이명박계인 공성진 의원도 출마에 적극적이다. 그가 지난해 말부터 ‘이재오 조기 복귀론’을 주장해온 것을 두고, 당 안에선 “세력이 없는 공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이재오 전 의원의 지원을 받으려는 포석”이란 평가가 많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미 팀을 꾸려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박진·권영세·진영·정두언 의원 등도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들이다.
민주당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출마 의사를 드러낸 이는 신계륜 전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말 서울지역 민주당 낙선 인사들과 함께 ‘신정치문화원’을 열어, 지방자치 전반을 평가하고 개선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신정치문화원 내부 조직인 ‘신서울구상위원회’는 아예 “서울에서 독재정권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지방선거·대선·총선을 모두 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6년째 맞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서울 탈환’을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 강남(송파 병)에서 당선된 김성순 의원도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똑 부러지는 정책 전문가 이미지를 보여주는 박영선 의원은 주변에서 출마 권유가 끊이지 않는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한길·이계안 전 의원 등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선 “선거에 나갈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야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모름·무응답’ 의견이 43.3%로, 여당 후보 적합도 조사의 31.9%보다 11.4%포인트나 높은 것은 왜 민주당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지를 설명해준다. 서울시장감으로 마땅히 떠올릴 스타도 없고, 민주당이 선명한 야당으로 자리매김하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잇따라 두 차례나 서울에서 패배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외부에서라도 ‘메시아’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민주당 영입 대상 ‘0순위’로 꼽혀왔지만 불출마 선언으로 답해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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