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말 원없이 돈을 써봤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월30일 국무회의에서 한 해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자기 돈을 썼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정부 관계자는 “다른 사람이 (내가 그랬다고) 말하더라는 이야기였다”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그만큼 많은 돈을 썼다는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강 장관은 직설화법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재정부 관계자의 이런 설명은 일리가 있다.
강 장관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썼기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일까? 강 장관은 지난 1월3일 한국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16조원의 추가 재정지출, 35조원의 감세 등 총 51조원의 재정 확대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강 장관이 쓴 돈은 51조원이다. 2007년 국내총생산(GDP·901조원)의 5.7%, 2008년 예산순계(195조원)의 26%에 이르는 규모이니, ‘원없이 써봤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앞으로도 돈을 더 쓸 뜻을 분명히 했다. 이른바 ‘녹색뉴딜’ 정책을 통해, 대규모 재정 투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정부가 지난 1월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이른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뉴딜 사업 추진방안’을 보면, 정부는 2012년까지 4대강 살리기 등 사업에 모두 50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50조원에는 민간자본 투자 7조2천억원, 지방비 5조3천억원이 포함돼 있다. 이를 빼고 국비만 계산해도 37조5천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재정사업 계획이다. 녹색뉴딜 사업 예산으로 2009년 예산에 이미 반영된 국비 투자 규모는 겨우 2조6천억원이다. 이를 보면 앞으로 또 얼마나 공격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대규모 재정 투입은 ‘작은 정부’를 표방해온 강만수 경제팀의 경제철학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재정부는 지난해 9월 올해 예산안과 중기 재정운용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연간 예산 지출 규모를 세수 증가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올해 예산안을 처음 짤 때만 해도, 정부는 2008년 195조원인 재정지출 규모를 2009년에 7.2% 늘려 209조2천억원만 쓰겠다고 했다. 대규모 감세를 밀어붙이기로 했기 때문에 재정지출을 크게 늘릴 만한 재정 여력이 없었던 탓이 크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자 재정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 217조6천억원 규모의 수정예산안을 짜, 당초 예산안보다 지출 규모를 8조4천억원이나 늘렸다. 늘린 예산의 대부분은 사회기반시설(SOC)을 확충하는 데 씀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감세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정부는 2009년에 21조6천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내게 됐고,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국채를 17조6천억원어치 추가 발행하기로 했다.
정부가 발표한 ‘녹색뉴딜’ 사업계획은 감세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한 강만수 경제팀이 이제 경제위기를 빌미로 더욱 본격적으로 재정지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2009년에만 녹색뉴딜 사업에 국비 1조4천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것인 만큼, 추가경정예산 편성 필요성을 일찌감치 제기한 것이다. 2010년 이후 재정 투입 규모는 더욱 커진다. 녹색뉴딜 사업 국비 예산은 2010년 10조4천억원, 2011년 12조9천억원으로 늘어나고, 2012년에도 10조2천억원이나 된다.
과장은 아닌 일자리 수, 과장된 효과‘녹색뉴딜’이 과연 ‘녹색’이란 수식어를 붙일 만하냐는 점부터가 논란거리다. 정부의 사업계획을 보면, 총 37조5411억원의 국비 가운데 4대강 살리기와 주변 사업에 14조2344억원, 경부 및 호남고속철도 조기 완공 등 녹색 교통망 확충에 5조994억원이 들어간다. 두 가지 핵심 사업에만 전체 국비 투입 규모의 절반이 넘는 51.5%가 들어간다. 하지만 뉴딜 사업이 녹색이냐 아니냐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논란의 핵심은 토목·건축 사업의 이런 대규모 재정 투입이 과연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나라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과연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정부는 이런 대규모 재정 투입이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한다. 재정부는 2012년까지 민간자본을 포함해 모두 50조원 규모의 투자로 96만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집계했다. ‘과장’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녹색 숲 가꾸기 사업의 경우 2008년에만 4215억원의 예산을 들여, 3만198개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한 사람을 고용하는 데 1395만원을 쓴다는 것이니, 현실에 맞다. 정부는 건설사업의 경우 10억원 투자당 16.6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계산했는데, 이 또한 크게 무리한 계산법은 아니다. 다만, 창출되는 96만여 개 일자리는 자금이 투입되는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전체 일자리 수가 2012년까지의 연인원을 합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평균으로 보면 24만 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어 유지하는 정도라는 얘기다.
이 정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그만한 재정 투입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정적자를 감수한 재정확대 정책은 일시적인 것이어야 한다. 또 효율적이어야 한다. 한시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한 재정 투입을 계속할 경우 나라살림에 문제가 생긴다. 비효율적인 재정지출이 쌓여갈 때, 그것이 나라 경제에 어떤 재앙을 부를 수 있는지는 1990년대 일본이 보여준 바 있다.
경기 후퇴가 본격화되기 전인 1990년만 해도 일본의 재정적자는 10조엔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기 부양을 위해 비효율적인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대규모로 감행하기 시작하면서 재정적자는 해마다 커졌다. 1999~2003년에는 연간 재정적자가 40조엔 안팎에 이르렀다. 건설업자와 자민당의 짬짜미(담합)는 일본의 나라살림을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아넣었고, 경제는 활력을 잃어버렸다. 일본의 정부 부채는 2008년 현재 GDP의 1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25개국) 평균인 79.7%의 2배를 크게 뛰어넘는다. 일본은 나라빚을 갚기 위해 빚을 더 내야 하는 덫에 걸려들어,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강만수 경제팀은 “우리나라는 아직 재정에 여유가 많다”고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부 부채 비율은 GDP 대비 32.6%에 불과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크게 늘어났지만, 선진국에 견주면 재정이 건전한 편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가 서구 선진국만큼 복지 시스템을 확충하지 않은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는 순식간에 재정지출 규모를 키우게 된다. 재정에 마냥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갑작스런 나라빚 증가는 민간의 자금 사정을 나쁘게 한다.
재정위기 향한 질주, 브레이크도 없이방만한 재정 운용을 제어하기 위해 국가재정법을 주도적으로 만든 것은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심지어 추가경정 예산안을 짜는 것조차 어렵게 했다.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대규모 재정사업을 할 때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도록 한 제도는 1999년 도입됐다. 정부는 최근 이 제도마저 바꿨다. 국가 균형발전과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국가 정책사업 등에 대해서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도록 한 것이다. 재정위기를 향한,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 재정금융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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