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친인척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사람에게도 ‘업자’들이 붙는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과거 정부 청와대의 핵심에서 일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친인척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친인척 관련 문제가 터지면 대통령이 처음에 잘 풀어줘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살붙이라도 엄단하라는 의지를 대통령이 직접 표명해야 한다. 그래야 친인척들이 민정수석실을 두려워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문제가 될 소지가 줄어든다. 그런데 이번 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별다른 말이 없어 아쉽다.”
관할 경찰서 정보과가 동향 점검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모두 재임 중 ‘친인척 비리’로 골치를 앓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 5개월 만에 처사촌 김옥희(74)씨의 ‘공천 장사’ 의혹이란 암초를 만났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평소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대통령 친인척들을 ‘관리’한다. 민정1비서관 산하에 ‘친인척관리팀’이 있다. 친인척 관리팀에는 경찰, 검찰, 감사원, 정보기관 등 출신인 행정관 1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1200여 명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리범위는 대통령의 8촌 이내 친족과 외가 쪽 6촌 이내, 부인 김윤옥씨의 6촌 이내 친족 등이다.
1200여 명에 이르는 대통령 친인척을 친인척관리팀이 모두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선 관리는 경찰의 몫이다. 친인척관리팀이 관리대상 친인척을 경찰청에 알리면, 친인척 주거지 관할 경찰서 정보과에서 이들의 동향을 점검하는 식이다.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친인척 관리는 모두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임무로 넘긴 상태지만, 현실적으로 경찰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보과 형사들은 담당 친인척들에게 정기적으로 연락하거나, 주변 탐문을 통해 정보를 모은다. 이들에게 특이한 동향이 감지될 때 별도의 보고서가 작성된다. 보고서는 친인척관리팀의 경찰 출신 행정관이 1차로 받는다. 보고서는 민정1비서관과 민정수석을 거쳐 윗선에 보고된다. 친인척에 대한 직·간접 조사 여부는 민정수석이 판단한다.
조사와 감찰은 민정2비서관의 몫이다. 민정2비서관 산하에는 ‘특별감찰반’과 ‘공직기강팀’(이른바 ‘삼청동 별관팀’)이 있다. 특별감찰반과 공직기강팀 모두 10~12명 정도의 행정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감찰반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만들어졌다. 대통령비서실 직제(대통령령 제17960호)에 따르면 특별감찰반의 임무는 “대통령비서실 직원,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투자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 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에 대한 감찰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공직기강팀은 고위 공직자 기강 확립과 인사검증 업무를 주로 한다.
한국타이어·효성·LG·삼성과 연결돼
특별감찰반은 주변 탐문 조사를 주로 하지만, 필요할 경우는 대상자를 직접 조사하기도 한다. 이들이 민간인을 조사할 권한은 없지만, 본인이 동의할 경우는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대상자를 찾아가 조사를 하지만, 청와대로 불러 조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옥희씨의 경우는 민정 1비서관실에서 인지해 내사한 뒤 민정2비서관에 넘겼다”며 “민정2비서관실에서 사실관계와 주변 조사를 통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설명한 방식대로, 친인척관리팀의 인지와 특별감찰팀의 내사 및 조사 과정을 거친 것이다.
민정1비서관 친인척관리팀에서 김옥희씨와 관련된 문제점을 확인한 것은 6월 중순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2비서관실(특별감찰반)에서 검찰에 넘긴 날은 7월14일이다. 특별감찰반은 한 달여에 걸쳐 김옥희씨 주변과 돈을 준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 등을 조사했다. 특별감찰반은 사건을 검찰에 넘기기 전에 김옥희씨도 직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컨설팅업체 민컨설팅의 박성민 대표는 “김옥희씨 사건에서 국민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슈 자체보다는 정권이 이를 다루는 태도”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면 전화위복이 되겠지만, 아니면 반대의 경우도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변 인물이 많다. 이 대통령이 4남3녀의 다섯째이고, 부인 김윤옥씨도 3남3녀의 다섯째다. 친인척 중에는 ‘거물’도 많다. 셋째딸 수연씨를 통해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과 전경련 회장인 조석래 효성 회장으로 인척 관계가 이어진다. 다른 사위들도 기업임원(첫째 사위 이성주 삼성화재 상무)과 의사(둘째 사위 최의근 서울대병원 내과의사)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다. 둘째 사돈 최윤식 서울대 의대교수는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됐다.
둘째형 이상득 국회의원을 통해서도 구자두 LG벤처투자회장을 거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으로 이어진다. 또 이상득 의원의 맏아들 이지형씨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대표이사로,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다. 이 의원의 둘째 사위인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아버지는 오명 건국대 총장(전 부총리)이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은행임원으로 있던 처남 권기문씨, 벤처기업 대표이사를 지냈던 조카 노지원씨 등 10여명이 ‘특별관리대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와 비교하면, 속된 표현으로 ‘잽도 안 된다’.
부인 김윤옥씨 쪽에서도 지난해 경선·대선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이들이 많다. 맏언니 김춘씨는 한나라당 대구시당 여성정치아카데미 출신이다. 지금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 출신의 한나라당 당직자는 “김춘씨는 대구 달서구에 살고 있는데, 김윤옥씨가 대구를 방문할 때 늘 함께 다녔다”며 “아들 김봉조씨도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팬클럽을 조직해 활발히 활동했다”고 말했다. 김봉조(45·지에스엠 대표)씨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팬클럽인 ‘보름달 사람들’을 만들어 활동했다. 대구·경북에 중심을 둔 전국 조직으로, 2007년 1월부터 활동했다고 한다. 김봉조씨는 이런 활동들을 경력으로 내세워 지난 4월 총선에서 대구 중·남구에 출마했으나 공천을 받지는 못했다.
김윤옥씨의 둘째 언니 김정혜씨의 남편 황태섭씨는 은퇴한 언론인인데,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15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서울 종로 지구당 사무국장을 지낸 것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는 지난 1996년 황씨가 당시 종로구 구기동의 ㅇ오피스텔 2개를 빌려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의원의 사조직을 이끌었던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이런 사실을 폭로했던 김유찬(전 이명박 의원 비서관)씨는 이 사조직이 ‘일명회’였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지난 대선에서도 서울과 경북 지역을 오가며 청년조직에서 활발한 선거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윤옥씨의 셋째 형부(김숙혜씨의 남편) 신기옥씨는 경북중·고 총동창회 부회장이다. 신씨는 건축자재업을 하는데, 대인관계가 활발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대선 당시 경북중·고의 인맥과 원로조직을 주로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옥씨 둘째·셋째 형부 등 선거 도와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맏누나 이귀선씨 아들) 김동혁(57)씨도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팬클럽인 ‘MB연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김동혁씨는 현대계열사 출신이며,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선거 캠프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며 “대선 이후로 두드러진 활동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도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검토했다가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지난해 12월22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외손녀(둘째 승연씨의 딸) 돌잔치에서 가족들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가족들이 근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 보도한 바 있다. 큰사위 이상주씨도 “장인어른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수긍했다고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가족뿐만 아니라, 친인척 모두가 근신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과거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과 전문가들은 김옥희씨 사건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수많은 친인척들이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처신을 삼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김옥희씨 의혹에 대한 엄정하고 투명한 수사를 전제로 할 때의 이야기다.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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