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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은 ‘3불가론’을 넘어설까

등록 2008-05-09 00:00 수정 2020-05-03 04:25

과거 전력·신뢰 문제·대한민국 1위 부자… 그럼에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친이·친박 고민 중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정몽준의 한나라당 당권 도전]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수첩이 정치 관련 일정으로 빼곡히 채워지고 있다.

4월30일만 해도 정 최고위원이 소화한 공식 스케줄은 6개였다. 우선 아침 일찍 시작된 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지역구가 있는 서울 동작구로 향했다. 지난 4월9일 총선에서 자신을 도왔던 지역 대의원 등을 만난 그는 모임이 끝나자마자 인근 독거노인 경로잔치로 자리를 옮겼다. 오후 2시에는 김포공항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앙여성위원회 워크숍을 챙겼고, 저녁에는 불교방송 개국 18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간에 비는 시간에는 전북 남원춘향제에 보내기 위한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남원춘향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제전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례없는 ‘여의도식 정치’

1988년 5월 제13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정 최고위원이 요즘처럼 여의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모두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문이다. 일찌감치 당권 도전을 선언한 그가 생소한 분야인 ‘당내 정치’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 쪽은 “당 안팎과의 스킨십 확대를 위해 당 관련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것은 물론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공식적인 접촉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력 및 외곽조직 확대를 위한 물밑 작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주로 지난 2002년 국민통합21에서 함께 일했던 측근 그룹이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염동열 한국청소년연합 강원도지부장과 정태용 정무특보, 홍윤오 전 국민통합21 대변인 등이 외곽에서 정 최고위원을 돕는 측근 그룹이다. 정태용 특보는 “(정 최고위원이) 워낙 오랫동안 혼자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한나라당에 입당했기 때문에 우선 당을 깊이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정 최고위원이 150억원을 출연해 만든 아산정책연구원의 역할도 앞으로 눈여겨봐야 한다. 정 최고위원 쪽에서는 미국의 헤리티지 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 등을 모델로 한 순수 연구재단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싱크탱크와 인력풀 기능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정 최고위원 쪽으로부터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이 이처럼 ‘여의도식 정치’에 활발히 나서는 장면은 과거와 비교해볼 때 대단히 이례적이다. 정치 입문 20년 만에 처음으로 당내 권력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정 최고위원의 변신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전망이 썩 밝지는 않다. ‘친이’든 ‘친박’이든, 어느 쪽에서도 정몽준 최고위원의 당 대표 도전에 박수를 보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 최고위원이 당 대표가 될 수 없다는 ‘3불가론’도 당내에서는 이미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리더십이 부족해 보인다’(백성운 당선인), ‘대권 도전 의사를 가진 사람이 당권 도전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공성진 의원) 등의 주장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우선 무엇보다 정 최고위원의 ‘전력’을 여전히 마뜩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정 최고위원은 실제로 1992년 대선을 사흘 앞두고 터진 초원복집 도청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렇게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시절부터 악연을 맺은 셈이다. 게다가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손을 잡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떨어뜨린 1등 공신이었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핵심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당의 밑바닥 정서는 과거 민자당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정몽준을 ‘우리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많다”고 전했다.

“내가 지금 너한테 물어봤냐” 반말 사건도

두 번째 문제도 심각하다. 정 최고위원의 신뢰성 문제다. 정 최고위원은 2002년 대선을 하루 앞두고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라는 어이없는 해프닝을 빚었다. 2006년 9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방송 카메라가 비추는 가운데 수석전문위원에게 “내가 지금 너한테 물어봤냐”라며 거친 반말을 한 사건도 유명하다. 4월9일 총선 직전에 일어난 문화방송 기자 성희롱 사건도 정 최고위원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다.

친이 진영의 한 핵심 의원은 “정 최고위원이 당 대표를 맡을 경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무에게나 반말을 내뱉어버리면 당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냐”며 고개를 내저었다. 친박 쪽 관계자 역시 “국회의원 등 각 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들은 지지 여부를 결정할 때 ‘저 사람이 과연 나를 책임지고 키워줄 수 있을 것인가’를 따지게 된다”며 “과거부터 정 최고위원이 워낙 좌충우돌한 사례가 많아서 기본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로, 현대가 출신에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사실도 전당대회 국면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즉,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회장 출신인데, 153석을 지닌 막강 여당의 대표 자리마저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최고위원이 차지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강부자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남주홍·박은경·이춘호 장관 내정자 등이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했고,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도 최근 땅투기 문제로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로서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 1위 부자( 4월23일치 기준)인 정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얼굴로 나서게 되는 것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고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이다. 우선 친박 진영.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나선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만 우선 전당대회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 여기에 내년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 대한 책임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도 떨떠름하기만 하다. 친이 진영도 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정 최고위원을 밀어주기는 싫지만 딱히 다른 카드도 없다. 최근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 카드가 느닷없이 급부상하는 이유도 친이 쪽의 고민을 대변해준다. 이에 대해 박 전 부의장은 4월30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황당하다”고 말했다.

‘친박의 교활과 친이의 비겁’이 어떤 결말을?

정 최고위원이 파고들고 있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감이 아니다’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지방선거를 책임져야 하는 대표 자리에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정몽준’이 낫지 않느냐는 논리다. 정 최고위원 쪽 핵심 관계자는 “미우나 고우나 이번에 선출될 당 대표와 함께 2010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그나마 누구와 함께 치르는 편이 가장 도움이 될지 당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며 “정 최고위원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은 많지만, 친박 진영의 교활함과 친이 쪽의 비겁함이 의외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나뿐인 당 대표 자리지만 입에 넣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남이 채갈까봐 좌불안석이다. 친이·친박 두 진영의 고민은 이렇듯 비슷하다. 이런저런 약점도 많은데다, 당내 자기 계보라고는 울산 동구 지역구를 물려준 안효대 당선인 한 명뿐인 정몽준 최고위원이 카드로 계속 거론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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