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고령·최다 선수 이명박의 형 이상득 부의장, 공천받은 데 이어 신풍속도 ‘형님 공천’의 중심으로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국어대사전이나 백과사전을 뒤져보면 상왕은 살아 있으면서 자리를 물려준 왕이란 뜻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일상에선 ‘왕 위에 있는 자’의 의미로 널리 쓰인다. 왕조 시대가 끝났지만, 상왕이란 말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3월5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상득 국회 부의장을 자꾸 “상왕”으로 불렀다. 1시간 남짓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 돌아가는 사정을 풀어놓던 그의 입에서, 이재오·이방호 두 의원의 이름과 함께 이상득이란 이름이 끊임없이 섞여나왔다. 얘기 속 이들 이름의 공통점은 현재 한나라당 공천을 좌우하는 인물이란 사실이다.
중진·70대·영남권… 물 건너간 물갈이
이상득 의원은 35년생으로 한나라당 최고령, 최다 선수(5선)의 의원이다. 지난 2년 동안 한나라당 몫으로 국회 부의장도 맡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신임 인사차 그를 예방한 것도,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그가 참석하는 것도, 이상득 의원이 국회 부의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 이상’이 있다. ‘형님 공천’이란 한나라당의 공천 신풍속도가 생긴 건, 그가 국회 부의장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공천과 관련된 아무런 당직이 없다. 하지만 공천을 희망하는 예비후보자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줄을 대려고 한다. 이상득 부의장 뒤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한 한나라당 한 예비후보자는 최근 이상득 부의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는 이 부의장에게 공천과 관련된 자료도 건네고, 자신의 희망도 전했다. 그가 이 부의장을 찾아간 까닭은 “주변에서 (공천과 관련해) 이방호 사무총장에게 얘기할 사람은 이상득 부의장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국회의원 지망생들이 이상득 부의장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려 하고, 이 부의장이 자신을 밀고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 이상득 의원이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관여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공천에서 이상득의 영향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다. 영남권의 한 초선 의원은 “다들 이상득을 ‘상왕’이라고 부른다”며 “○○○는 이상득 ‘라인’(줄)을 타지 못해 공천받기가 글렀다”고 말했다. ‘상왕’이란 단어는 언론을 통해 외부에 흘러나오지 않을 뿐이지, 한나라당 안에선 흔한 말이 돼버렸다. 하지만 한나라당 누구도 대통령의 형을 권력의 봉건적 특성을 상징하고 부정적 어감을 지닌 ‘상왕’으로 대놓고 부르지 못한다.
겉으로 보면 이 부의장도 조용하다. 3월6일 국회 의원회관 419호 이상득 의원실은 보좌관 한 명만이 자리를 지켰고, 국회 본관의 부의장실에선 여비서 둘이 넓디넓은 사무실을 한가하게 지키고 있었다. 여비서는 부의장이 지역구인 경북 포항에 내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2월19일 대선 이후 빠르게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해왔다. 동생도 그런 형을 끌어안았다. 지난 1월 이명박 당선자는 미·중·러·일 주변 4강에 특사를 보냈다. 미국에 정몽준, 중국에 박근혜, 러시아에 이재오, 일본엔 자신의 형인 이상득 부의장을 보냈다. 언론은 그가 일본을 다녀온 뒤 “이상득 출마론 힘 받나?”란 제목의 기사를 써줬다. 2월25일엔 헤드테이블에 앉아 동생의 대통령 취임식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며칠 뒤 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이 부의장의 공천을 확정했다. 일부 공천심사위원들이 “3선 이상의 중진과 고령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사실상 이 부의장의 공천을 반대했으나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한나라당이 당초 개혁 공천의 상징으로 3·4선 중진 의원, 70대 고령, 영남권 의원들을 대폭 물갈이하려 했으나, 이상득 부의장을 피해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일찌감치 “이상득 부의장과 외형적 조건이 비슷한 의원들을 낙천시킬 만한 명분을 잃어버렸다. 개혁 공천은 물 건너갔다”(전 한나라당 당직자)는 말이 나돌았다.
최시중 방통위 내정자도 ‘형님 인사’
청와대 비서진이나 국무위원 인사와 관련해서도 계속 이상득이란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나 물증이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이상득 라인 작동설’은 끊이지 않았다. ‘설’을 뒷받침하는 외형적 조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진 인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2005년 서울시 정무담당 보좌역으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을 돕기 시작하기 전 11년 동안 이상득 의원 밑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다. ‘왕비서관’으로 불리는 그는 이명박 사람 이전에 이상득 사람으로 통한다. 이 부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장다사로씨가 청와대 정무1비서관에 앉은 것도 인사와 관련된 세간의 의혹을 뒷받침했다.
이외에도 이명박과 이상득의 인적 네트워크는 중복되는 지점이 많다. 둘 다 소망교회에 다니고 있으며, 95년 나란히 장로가 됐다.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단체에서 ‘형님 인사’라며 결사반대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 인사도 또 한 사례다. 최 내정자는 이 부의장과 동향으로 57년 서울대 입학 동기이자 오랜 친구로 지내왔다. 그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소개해준 것도 다름 아닌 이상득 부의장이다. 이런 탓에 이명박과 이상득 형제의 정치적 움직임은 언제든지 ‘오버랩’ 돼 국민에게 보일 수 있다.
앞으로 이상득 부의장이 어떤 정치 행보를 할까? 이 부의장 쪽은 을 포함해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여야 및 당내 관계에서 거중자(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18대 총선 출마의 변을 내놨다. 최근엔 공천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 대사 임명설도 나온다.
아직도 생생한 전 대통령의 아들 비리…
얼핏 보면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뜯어보면 간단치 않다. 이상득 부의장이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거나 대사가 되면,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이 따르겠지만 그 몇 배, 몇십 배 이상으로 동생인 대통령의 후광으로 인한 권력을 업게 된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대통령과 가까운 형제 사이라고 야당과의 관계 등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의 채널이 돼 거중 역할을 한다면 민주적 권력 행사에 전혀 맞지 않다”며 “민주주의 권력은 공개돼 적절히 평가받고 또한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비선 조직을 통해 대통령인 아버지에게 인사를 추천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등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권력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막판에 아들의 비리로 정권은 흔들렸다. 국민의 뇌리에는 아직도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아들들 비리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5년 뒤 국민은 대통령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형을 같이 보면서, 이명박 정권의 성패를 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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