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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과 이명박은 같은 처지?

등록 2008-01-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짧은 기한 등 악조건 속에 출발하는 특검, 상처난 리더십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명박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는 사설을 싣지 않았다. 는 “‘특정인 겨냥한 특검’ 길 터준 헌재 결정”이라는 제목을 달아 사설을 냈다. “특검 수사 제대로 마무리하라”란 제목의 사설 내용은 이렇다.

“헌재의 결정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헌정 사상 최초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게 됐다. 나라의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당초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는 것이 수사 결과 입증되면 명예회복의 계기가 될 것이고, 잘못이 있었다면 수사 관행 등을 바로잡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한나라당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지난 1월10일 헌법재판소가 ‘이명박 특검법’(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 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린 다음날 보수언론이 보인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헌재 결정을 격하게 비판하지 않고, 느긋함을 보였다. 실체적 진실은 뒷전이다. 자칭 ‘실용적 중도 개혁세력’이라고 하지만 보수단체라 할 수 있는 ‘선진화개혁추진회의’(선개추)가 전날 내놓은 논평은 이런 분위기를 좀더 솔직한 화법으로 드러냈다.

“진보 시민사회 단체들을 위주로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이명박 특검법’이 지금 그 진위를 명백히 가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진보 시민사회 단체들에게 이명박 정권을 공격할 수 있는 좋은 실마리를 제공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이명박 특검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오늘 결정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신임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BBK’ 등 그와 관련된 모든 의혹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가려 좀더 활기찬 새 정부가 출범해야 한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BBK 대책단장’ 역할을 해온 홍준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은 에 “일하려는 정부를 발목잡은 (대통합민주)신당은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렇듯 한나라당을 비롯해 보수언론과 단체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대선 승리로 얻은 자신감이 제일 클 것이다. 더 결정적인 건 적어도 현 시점에서 보수진영이 대한민국 검찰에 보여주는 아낌없는 ‘신뢰’다. 그 바탕에 검찰의 수사 결과가 100% 실체적 진실인지를 떠나, 나름 특검이 검찰의 수사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판단과 계산이 깔려 있다.

실제 그렇다. 이명박 특검의 수사 조건은 결코 좋다고 보기 어렵다. 수사 기간이 너무 짧다. 조영선 민변 사무차장(변호사)은 “그게 문제다. 특검이 과연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인) 이상은(이명박 당선자의 큰형)씨와 김재정(당선자의 처남)씨는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수사에 협조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특검은 수사를 착수하는 1월15일부터 40일 안에 수사를 끝내야 한다. 통상 특검의 수사 기간이 100일 안팎이었던 점에 비추더라도 기간이 너무 짧다. 그에 비해 BBK 사건은 금융 사건으로 상당히 어렵고 복잡하다. 자료도 방대하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서 출발해야 할 판인데, 수사자료만 한 트럭에 달한다. 검찰 수사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7~8년 전 일어난 사건을 다루면서 새로운 증거를 찾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인수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

짧은 수사 기간은 2월25일 대통령 취임 전 수사를 끝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에서 나왔다. 실체적 진실 그 자체만을 고려했을 때 충분한 수사 기간이 필요하다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헌법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제84조)고 돼 있다.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는 특검은 법리적, 정치적 논란과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짧은 수사 기간에 더해, 사건의 주요 참고인들을 조사하는 것도 어렵게 됐다. 헌재는 이명박 특검법 중 참고인 동행명령 조항이 참고인의 신체 자유를 사실상 억압하는 것으로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와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명박 특검법엔 “특별검사는 사건의 참고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아니한 때에는 해당 참고인에 대하여 지정한 장소까지 동행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고 정한 뒤, 이를 따르지 않으면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해놨다. 헌재 결정으로 이제 이 부분의 법적 효력은 상실됐다. 강제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곧 취임할 대통령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참고인이든 반대로 불리한 증언을 할 참고인이든 특검의 출석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새 정부가 막 출발하려는 상황에서 특검을 둘러싼 정치·사회적인 분위기도 수사의 장애물이다. ‘이제 수사를 해서 뭣하나’라는 분위기가 꽤 폭넓게 퍼져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선자를 조사하는 문제도 결코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조건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주가조작 등의 의혹을 수사할 정호영(60) 특별검사가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묘하게도 특검의 수사를 받게 될 이명박 당선자도 어려운 정치적 조건에 맞닥뜨리게 됐다. 헌정 사상 최초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는 대통령 당선자로 기록됐다. 지난해 12월19일 대선을 끝으로 후보 시절 1년 넘게 지겹도록 따라다녔던 온갖 의혹과 도덕적 결함이, 특검을 계기로 다시 국민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입길에 오르내리게 됐다.

특검은 태생적으로 검찰 수사 결과를 뛰어넘는 ‘플러스 알파’(+α)를 내야 한다. 당선자한테 최선은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일점 일획’도 더 나아가지 않는 건데, 그럴 가능성은 낮다. 설령 특검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BBK 동영상’을 본 국민들이 이명박 당선자를 둘러싼 모든 도덕적 의혹이 이제 말끔히 해소됐다고 봐줄 가능성은 아주 낮다. 물론 중대한 혐의나 거짓말이 추가로 드러나지 않는 한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다시 불거진 약점으로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의 리더십에 흠집이 나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특검은 대통령직 인수위와 총선 등 다른 정치적 조건과도 맞물려 전개될 수 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연구실장은 “당선자가 인수위 정국에서 성과도 내면서 잘 이끌어가면 특검 정국은 탄력받기 어렵다”며 “그러나 인수위 정국에서 성과에 급급해 독선을 드러내고 ‘과연 서민들을 살리려는 의지가 있나’라는 등의 비판적 견제 여론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특검 정국을 통해 국민들이 선거에서 판단을 유보했던 도덕성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서 4월9일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끊임없이 이명박 당선자와 특검의 긴장 국면을 활용할 것이다.

이명박과 정호영, 언제 만날까

헌재가 발표를 한 날 정호영 특별검사는 수사진을 꾸리느라 바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특검보) 적임자 찾기도 쉽지 않고 찾아내도 본인들이 고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애로가 크다”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자도 바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특사로 방한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일행의 예방을 받았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이날 간사단 회의에서 “(대운하는) 국내 민간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착공까지는 취임 후 1년이 걸린다고 확실히 (이 당선인이)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명박과 정호영, 두 사람은 1월15일 이후 언제, 어떤 형식으로든 한 번쯤 만날 가능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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