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제 살 길 찾아 분주히 모였다 흩어지는 범여권 향한 국민들의 무관심…잇단 탈당과 ‘대통령 변수’ 속에 새 국면 맞아 흥행 노려볼 수 있을까 </font>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국민들은 아주 냉담하다. 누가 열린우리당 정계 개편에 관심이나 있나? 자기들끼리 살겠다고 난리치는 것을 정치부 기자들이 기사를 쓰니까 기삿거리가 되는 거지. …국민들 관심으로만 보면 기삿거리도 아니다.”(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다소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일면 국민들의 정서를 날것 그대로 정확하게 담고 있다.
1월24일까지 임종인(1월22일) → 이계안(1월23일) → 최재천(1월24일) 의원이 차례로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정계 개편의 새로운 국면임이 틀림없다. 당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 대패 직후부터 정계 개편을 논의해왔다. 통합의 주체와 명분, 범위 등을 놓고 별 가시적 진전 없이 지루한 과정이 이어졌다. 1월9일 고건 전 총리가 대선 중도 포기 선언을 할 때까지 변수는 없었다. 이제 고건이 떠났고 열린우리당에선 드디어 분열이 시작됐다. 언제 어떤 결론이 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한바탕 혼돈과 무질서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로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대선을 치를 것인지, 2008년 총선에서 재당선이 가능한 더 나은 선택은 어떤 것인지 계산하느라 하루하루가 피가 마른다.
범여권의 정계 개편 “관심 없다” 54.6%
이렇듯 여의도 정치판의 사활을 다투는 분주함과 대중의 무관심 사이엔 큰 괴리가 존재한다. 이 여론조사 기관인 메트릭스에 맡겨 지난해 12월26~27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당시 논의되고 있는 범여권의 정계 개편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의견이 54.6%로 나타났다. “관심이 있다”는 응답은 17.8%에 불과했다. 큰 차이다. 정계 개편의 과정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은 10%대의 정당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절망에 가까운 실망감의 반영이다.
그렇다고 정계 개편의 필요성까지 느끼지 않는다고 확장해서 보는 것은 좀 곤란하다. 문화방송 이 코리아리서치에 맡겨 지난해 12월13일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여권의 정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52.5%로 “필요 없다”는 응답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이는 지금의 구조로는 힘드니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여권, 더 나아가 범여권이 지닌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일부 의원의 탈당 등 여권의 정계 개편을 둘러싼 모든 움직임들은 좋게 보면 이같은 희망을 만들고 이를 살려나가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엔 몇 가지 갈림길과 변곡점들이 있다. 끝이 결코 ‘성공’이란 보증은 없다. 제대로 벼리지 못한 희망은 12월19일 쉽게 부러질 것이다.
정계 개편의 가장 커 보이는 변수는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년여 동안 열린우리당에 작용해왔던 원심력을 약화시켜왔다. 그는 1월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당을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노력해보자”고 말했다. 탈당 조짐을 보이는 신당론자를 향해 던진 말이다. 조만간 봇물처럼 터질 듯하던 탈당 움직임은 주춤거렸다. 최재천 의원의 바통을 이을 의원의 이름은 1월26일까지 나오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신당 하겠다는 분들과 협상하겠다. …대통령 때문에 탈당한다면, 제가 당적을 정리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
정계 개편 과정에서 이런 노 대통령의 적극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노 대통령은 갈수록 사라지는 변수”라고 예상했다.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학)도 한나라당에 맞설 수 있으려면 “대통령이 단서 조항을 달지 말고 탈당해서 정계 개편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의지나 행동과 달리 에 의견을 준 정치전문가 대부분은 그가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창교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연수원장은 “한나라당과 맞서려면 반한나라(당)-비노무현의 구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내 정계 개편이라는 생존의 몸부림 속에는 노무현을 둘러싼 대립각이 존재한다. 이는 1월29일 당 중앙위의 기초당원제를 포함한 당헌 개정과 2월14일 치러질 전당대회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의 과정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홍형식 소장은 “노 대통령이 정치에 개입할수록 여권에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나라당도 이걸 아는 걸까? 강재섭 대표는 1월2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자기(노무현)가 만든 당에서 탈당 운운하지 말고 끝까지 운명을 같이해야 도리”라며 “이번 대선에서 열린우리당 이름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이란 변수가 사라지면, 수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열린우리당 사수파를 중심으로 한 ‘친노 직계’는 그야말로 정치적 소수로 전락할 수 있다. 고원 연구원은 “노 대통령을 빼버리면 친노 세력을 응집시킬 수 있는 토대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그런 상황이 찾아올 것 같진 않다.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집착이 강한데다 그의 탈당을 요구하는 정치인도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당장 노무현 변수 외에도 여권에선 노선, 인물, 여당의 분열 가능성 등 정계 개편의 굵직한 변수들이 더 존재한다. 고건이 빠지면서 인물을 중심으로 짝짓기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고건도 결국 못했지만 정동영·김근태·천정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의원 등을 불러들여 독자적으로 정치 세력화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오히려 “제3후보의 출현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에 정동영과 김근태가 기득권(프리미엄)을 포기하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김형준 교수)는 의견이 끊임없다. 이는 좀 무리한 요구처럼 들린다. 스스로 결단하면 모르겠지만 정동영과 김근태의 기회를 박탈할 수도 없으며, 이들의 성장이 다른 후보들에게 나쁜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도 맞지 않다.
새로 연대할 시민사회 개혁세력이 있나
‘이념과 노선에 따라 헤쳐모이자!’ 정계 개편의 가장 그럴듯한 명분 중 하나다.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에서 떨어져나온 열린우리당을 다시 이념과 노선에 따라 재편하자는 얘기가 나올 만큼, 현실정치에서 명분은 말 그대로 명분에 그친 적이 많다. 정치권에서 쉽게 얘기하는 것처럼 시민사회 개혁세력과의 연대도, 이제 정치권이 연대할 만한 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좀 과대포장된 얘기다. 특히 반한나라 진영의 대통합이란 현실적 고민에 부딪힐 때 이념과 노선에 따른 정계 개편의 한계는 너무나 자명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가 “연말 대선은 결국 양당 구조로 갈 것”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념과 노선에 따른 정당의 모습을 민주노동당 밖에서 찾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도 봐야 한다.
사실 여권 안에서 찌그럭 뻐그럭하는 것으론 진한 감동을 주거나 관심을 받기 어렵다. 물론 한나라당을 아우르는 정치권 전체가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온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 파급력이 실로 크겠지만, 현실성은 낮다.
많은 정치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오랫동안 해온 얘기가 있다. “열린우리당이 밟아왔던 전철들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하고 이것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치열한 내부 투쟁이라도 한번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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