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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김근태’의 축배 또는 독배

등록 2006-08-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재계 달래기용 ‘뉴딜정책’ 밀어부치기… 곳곳에 암초, 당의 운명과 정치 생명이 걸린 살벌한 변신 실험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김근태가 변했다. 새로운 경제 비전인 ‘뉴딜(New Deal) 정책’을 제시해 ‘뉴(New) 김근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뉴딜은 재계, 노동계 등 우리 사회 경제주체들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해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일종의 거래(Deal)다. 정부 재정정책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계의 투자를 유도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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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비리 경제인 사면 등을 내용으로 해 ‘재계 달래기용’ ‘우향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취해왔던 입장과 대치하는 것은 물론, 진보적으로 알려진 김근태 의장의 원래 이미지와도 다르다. ‘수구꼴통’ 소리까지 듣고 있지만 김 의장은 아랑곳 않고 있다. 단단히 각오를 한 것이다.

당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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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근태 의장 쪽은 변한 것이 아니라고 일축한다. 예전부터 했던 구상인데 김 의장이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소신을 알릴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2005년 3월12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대통령 후보자별 이념 성향 위치도’에 따르면 김근태 의장은 4.5점을 받아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매우 진보는 0점, 매우 보수는 10점). 3.9점을 받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 이어 2위다. 2001년 1월1일자 월간 에서 김근태 의장은 ‘학자들이 뽑은 진보적인 정치인’ 1위로 선정됐다. ‘민주화 운동 투사’로서 이미지가 워낙 강하고,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넣자고 주장하는 등 진보적인 의견을 표명해왔기 때문에 최근 김 의장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낯설다. 그런 점에서 김근태 의장은 적어도 ‘변신한 것처럼’ 보인다.

왜 그는 변신, 아니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행보를 택하게 됐을까?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근태 의장의 ‘뉴딜 정책’ 핵심 브레인으로 알려진 한 측근은 “우리도 출총제 폐지에 당연히 반대하고, (비리를 저지른) 기업인들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기업인들의 말은 변명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상황에서 투자할 여력을 가진 경제주체는 재벌뿐”이라며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경제주체들과 흥정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대통합’이라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재계를 달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경제 살리기’는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5·31 이후 민심이 멀어졌다는 것을 느꼈다”며, “서민경제가 어려운 것이 우리가 심판받은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책임지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런 시점에서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카드가 바로 뉴딜이다. 이 의원은 또 “당이 ‘지지도 상승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면 당도 없고 김근태도 없고 차기 정권도 없다”며 ‘뉴딜’의 성공 여부가 향후 정계 개편에서 당의 운명을 판가름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런 점에서 역으로 ‘뉴딜’은 김근태 의장이 대권주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김근태 의장은 ‘우유부단하다’ ‘리더십이 없어 보인다’ 등 당의장이 된 이후에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거나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런 비판들을 불식시키고, 비전을 제시하는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얻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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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당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김근태 의장은 그동안 언론으로부터 외면받았던 비전과 철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김 의장의 참모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의장이 즐거워하고, 에너제틱(의욕적)하다”며, “독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잘만 하면 독배가 축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드러난 대목이다.

대통령 면박에도 “강행하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독배가 축배가 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암초가 너무 많다. 당 안팎에서 김근태 의장의 ‘뉴딜’ 행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뉴딜’은 의원들 간 공감대를 갖고 추진한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 “출총제는 재벌의 소유 구조를 개선하자는 참여정부 로드맵인데, 개혁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출총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정부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는 뒤집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의장’과 ‘원내대표’라는 투톱 시스템 체제도 김근태 의장의 ‘뉴딜’이 힘을 받기 어려운 구조로 작용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보좌관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면서 원내가 배제됐고 정책라인 간 교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일 조일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뉴딜은) 우리 전체의 의견을 모은 것은 아니다”라며 “정책은 원내가 담당하고 당은 개혁을 담당하는 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길”이라고 말해 원내와 비대위 사이의 갈등을 드러냈다.

‘뉴딜’에 회의를 품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청와대와의 대립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일 당·정·청 오찬에서 뉴딜 정책 등을 거론하며 “출총제 폐지 등 그런 방향이 우리의 정체성과 맞느냐”며 면박을 줬다. 이어 ‘8·15 특별사면’에서 김 의장이 제안한 경제인 사면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골은 더욱 깊어졌다. 청와대와의 대립각에 대해 김 의장의 참모는 “정부를 설득하고 합의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정부가 마지막까지 반대하면 최악의 경우 국회에서 입법권을 갖고 법을 바꾸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뉴딜’을 끝까지 밀어붙일 것임을 시사했다.

재계, 노동계와의 ‘사회적 대타협’도 요원해 보인다. 재계는 서민경제추진위원회 소속 채수찬 정책위부의장이 제시한 ‘순환출자를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라며 “조건 없는 출총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재계와 큰 틀에서 합의는 이뤘지만 구체화할수록 협상이 어려워질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동계는 특히 시큰둥한 반응이다. 지난 16일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과 한국노총 지도부 정책간담회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요구만 할 게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침을 가했다. 22일 있을 민주노총과의 합의는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시간도 김근태 의장의 편이 아니다. 9월 임시국회 이후 정계 개편이 이뤄지게 되면 의원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 없을 게 뻔한 상황에서 ‘뉴딜’이 힘을 받지 못하고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

진짜 변신은 지금부터다

어쨌든 승부수는 던졌다. 당의 운명과 김 의장의 정치 생명이 걸린 살벌한 시험대 위에 올라선 것이다. 암초가 많을수록, 게임이 진행될수록 김근태 의장의 변신은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뉴 김근태’의 진짜 변신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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