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에서 “송구스럽습니다” 연발하며 납작 엎드린 이유는 무엇
장관직 수행할 때 시민 편에서 대통령과 ‘맞장’ 뜰 수 있을지는 의문
▣ 함돈균/ 문학평론가
국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가진 한 국어사전에 따르면 ‘변신’과 ‘변장’은 그 뉘앙스가 조금 다르게 정의돼 있다. ‘변신(變身): 몸이나 모습 또는 마음을 전과 다르게 바꾸는 것.’ ‘변장(變裝): 본디 모습을 감추려고 얼굴, 옷차림, 머리 모양 등을 다르게 보이도록 꾸밈.’ 그러니까 변신은 ‘진짜’ 바뀐 것이고, 변장은 바뀐 것처럼 ‘꾸민’ 것이다. 2004년 말 미 대선이 있을 무렵 김우창 교수는 한 신문 칼럼에서 부시와 케리를 비교하면서 항상 케리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우유부단함’은, 사실은 그가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행동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다가 반대하는 식의 입장 변화는 원리주의적 시각으로 점철된 부시의 시종일관된 정책과는 질적으로 다른 합리적 이성에서 나온 판단이라는 것이다. 변신과 변장의 어법적 차이로 말한다면, 이 경우 케리의 변모는 ‘변신’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충성심과 도덕적 해이
최근 유시민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평소와 달리 보여준 깍듯하고 겸손한 태도가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4월 <한겨레21>에 한홍구 교수의 ‘유시민 옹호론’에 대한 비판적 기고문을 썼던 필자의 관점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시민 의원의 변모는 ‘변신’이 아니라 ‘변장’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 그의 모든 정치적 행보들은 국민이 아니라 ‘노대통령’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정치에 대한 이러한 그의 기술공학적 접근 태도는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는 소견을 이미 전의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최근의 일만 거론한다 해도 그는 ‘반대 → 찬성 → 반대’로 이미 세 차례나 변했던 이라크 파병 논의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노 대통령의 현실적 이해관계에 맞춰 또다시 번복- 2005년 11월 서울대 특강에서 그는 2004년 12월31일에 있었던 추가파병 동의안에 대한 자신의 반대표를 “부끄러운 선택”이었다고 표현했다- 했다.
지난해 대통령 홀로 ‘원맨쇼’를 벌이다 그의 지지자들에게까지 많은 혼란과 상처를 주었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논란 때에도 이를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라는 견강부회적 논리를 펴며 다시 한 번 대통령 사수대를 자처한 바 있다. 또 황우석 교수 파문과 관련해 문화방송 <pd>이 취재 윤리 논란에 휩싸이며 회사의 존립마저 위태롭던 시기에, 그는 <pd>의 사활을 건 취재 행위를 특유의 비웃음을 섞어가며 비아냥댔는데, 이 역시 황우석 교수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일방적 특혜 시비를 염두에 둔 방어적 성격을 띤 것이었다. 특히 국익우선주의로 무장한 황 교수의 지지 세력과 건전개혁 세력을 자처하던 노 대통령과 유 의원의 골수지지 세력들이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줬던 이 기이한 현상은, 최장집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는데, 이는 유 의원의 정치적 행보가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다운 삶의 총체적 기획과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는지를 재차 회의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유 의원의 이 모든 정치 행위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그가 공공연히 밝혔듯이 위기에 처한 노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대신 소나기를 맞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 행위들이 공공성의 관점과 상충될 때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노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의 이익과도 상충될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현대민주주의를 대행자(agency)에 의한 대리 행위라고 보는 정치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필자는 이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본다. 인사청문회에서 유필우 의원이 간략히 지적한 ‘과도한 충성심’ 문제에 대해 그는 “노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시장주의를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다는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비판 등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가 이미 상당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노 대통령이 스스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를 하는 일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대통령이 자신의 가치관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과정에서조차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숱하게 보여왔다는 사실이다.
깍듯한 수식어, 조삼모사의 수사일 뿐
한두 달 전 즈음 보건복지부와 통일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하마평이 정가에 무성할 때, 유 의원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장관의 두 가지 조건은 능력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국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그의 말은 어떤 정치적 수사도 없는 날언어여서 보통 사람이라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 할 수 있는 말인가 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겠지만, 지금까지 그의 행보는 이토록 노골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승만과 박정희의 ‘예스맨’들보다 더 노골적인 유 의원의 정치 행보는 그의 개인적 영달 행위와는 전혀 무관해 보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이미지로 보여짐으로써 결과적으로 그의 정치적 주가를 더욱 높이게 됐다. 대통령이 여당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그를 잠재적 대선주자로 호칭하며 장관으로 불러들인 것 이상의 그의 상품가치 상승에 대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대통령 사수대’의 고행을 자처한 결과로 얻어진 그의 정치적 성장이 과연 우리 사회 전체가 지향하는 사람다운 삶의 실현을 위한 정치 발전 과정과 유의미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인 유시민을 버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그의 약속이 ‘변신’이 아니라 ‘변장’이라고 생각되는 까닭은, ‘정치인 유시민’과 ‘장관 유시민’이 다를 수 있다는 논리도 기이할뿐더러, 그의 ‘일관된’ 과거 행적으로 보아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심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머리에 기름을 칠해 가르마를 타고, 단정한 양복을 입고,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는 깍듯한 수식어를 붙이고, 종교와 대언론 관계, 국민의례와 관련된 과거 언행에 대해 “송구스럽습니다” “교만했습니다”라는 서술어를 연발하며 자세를 납작하게 엎드린다고 한들, 이는 원숭이를 속이는 조삼모사식의 정치적 수사일 뿐 그의 근본적 변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설령 이것이 진정한 변신이라고 한들,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방향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뤄진 그의 갑작스러운 소신의 변화라면 이것이 꼭 올바른 일도 아닐 것이다.
국민연금 초기 시절 국민의 95% 이상이 미납자였던 것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이 쟁점화한 유 의원의 소액의 국민연금 미납 문제는 큰 흠이라고 보기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과거 천문학적인 부패 정치자금으로 정치를 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재산 1억원도 안되는 무주택 서민 장관에 대해 벌금 10만원 수준의 연금 미납과 적십자회비 1회 5천원 미납을 ‘비리’라고 캐내며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일이 과연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보다 중요한 일은 과연 그의 장관직 수행이 또 한 번 ‘대통령을 위해’ 총대를 메는 일인지, ‘국민을 위해’ 진정한 공복이 되겠다는 건지를 분명히 따지는 일이었으리라. 청문회에서 이기우 의원이 지적한 대로 그는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대통령과 관점을 달리하는 정책 집행에 대해 때로는 국민의 편에서 노 대통령과 ‘맞장’을 뜰 수 있을까? 중책을 맡게 된 그가 잘하기를 바라며 그의 능력에 대해서도 별 의심은 가지 않지만, 문제는 공공성을 핵심으로 하는 보건복지부의 수장이 된 그가, 시장주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전 경제부총리를 대표적 공공 영역인 교육부 수장으로 임명하는 수준의 협소한 정치적 비전을 가진 노 대통령의 정치적 분신이라는 데 있다.
그에겐 ‘제대로 된’ 경쟁자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의료기관의 영리법인(민영화) 추진과 개방화, 수요자 부담 원칙 등 공공 영역에 대한 시장주의적 접근 방식을 신념처럼 내비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신이 독일에서 사회복지 관련 공부를 한 전문가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가 구상하는 보건복지 정책의 얼개는 실상 공공성의 관점을 최우선시하는 독일식 사회복지 모델과도 상당히 다른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진보적 보건단체들이 유 의원에 대해 청문회 이전에 이미 ‘부적격’ 판단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장관이 될 유 의원은 이런 정도의 ‘소란’은 걱정도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의 입각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히스테리 증세로 일관한 지리멸렬한 여당과 딱 그만큼 무능한 제1야당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작 애석한 일은 유시민 내정자의 자질이 아니라, 그에게 적절한 수준의 질문과 합리적 비판을 던질 만한 ‘제대로 된’ 경쟁자가 없는 우리 정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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