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 국정감사에서 중국산 김치의 중금속 문제를 터뜨린 고경화 의원
‘식품안전기본법’ 제출했지만 정책 순위에서 밀려나는 현실 개탄스러워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고경화 의원은 주말마다 집 근처 백화점을 찾는다. 달랑 둘뿐인 식구의 1주일치 찬거리를 사다놓기 위해서다. 지난 10월1일에도 반찬 코너에서 쇼핑을 마치고, 음식 코너에 들렀다. 늘 먹던 잔치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평소와 달라진 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김치였다. 갓 담은 듯, 선명한 붉은색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진 싱싱한 배추김치가 나왔다. 이날은 모처럼 국수에 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그전에는 국숫집 김치에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김치가 싫어서가 아니다. 작은 종기에 담겨 나오는 국숫집 김치는 언제나 흐물흐물한 모양에 물컹한 맛이 났다.
김치·콩나물, 중금속 기준치조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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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하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보람을 느꼈어요. 약간의 불안이 조성됐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주일 사이에 국숫집의 김치가 바뀐 것은 고 의원의 의정활동의 결과였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인 그는 9월26일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중국산 김치에서 국산 김치의 최고 다섯배에 달하는 중금속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배추김치는 백미 다음으로 섭취량이 많은 식품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1년 다소비 식품의 1인 하루 평균 섭취량을 조사했더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 81.3g의 배추김치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깍두기(9g) 등 다른 종류의 김치를 포함하면 김치 섭취량은 더욱 늘어난다. 따라서 국민들이 두 번째로 많이 섭취하는 김치의 안전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 의원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해 나온 결과를 보자. 중국산 수입 배추김치에서 최고 0.57ppm(mg/kg)의 납이 검출됐다. 검사에 사용된 것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전국에 판매 중인 10개 업체의 중국산 배추김치였다. 이들 김치에서 평균 0.302ppm의 납이 검출됐으며, 2곳에선 수은도 나왔다. 이에 비해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조사한 국산 김치의 납 함유량은 2002년 0.11ppm이 나왔을 뿐, 2003~2004년엔 아예 검출되지 않았다. 납은 뼈와 치아 등에 축적돼 신장, 간, 신경 및 면역 시스템을 교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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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의원이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는 도대체 김치에 중금속이 얼마나 함유되면 ‘위해’하다고 판정을 내릴 수 있는지 그 기준치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 의원이 중국산 김치의 안전을 따져보겠다고 발벗고 나선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평소 식당에 가면 항상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 김치와 콩나물이었는데, 정부에 물어보니 아예 기준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 정부의 품새를 보니 이런 실태를 조사할 것 같지도 않았어요. 솔직히 평소 중국산 식품에 대한 불신도 컸고요.”
그는 정부의 태도에 더욱 분노했다. 정부·여당은 9월28일 중국산 김치의 납 함유 주장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주간 잠정섭취 허용량의 6.1~28.8%에 해당되므로 유해하지 않다”고 태연하게 발표한 것이다. 이에 고 의원은 다시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여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염물질의 주간 잠정섭취 허용량과 식품 기준치는 명백히 다른 기준이다. 주간 잠정섭취 허용량 대비 10%만 초과해도 정밀조사를 통해 ‘기준치’를 설정하도록 돼 있다. 특히 30%를 초과할 경우 어린이 등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 수준으로 봐야 한다.”
그는 비판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5월17일 식약청이 주최한 ‘식품안전의 날 심포지엄’ 자료를 근거로 활용했다. 고 의원의 결론은 “중국산 김치 10개 제품 가운데 6개 제품이 주간 잠정섭취 허용량의 30%를 초과해 어린이 등에게 위험한 경고 수준이고, 정부의 계산 방식을 따르더라도 김치 하나의 품목만을 가지고도 위험 수준인 30%에 육박한다”며 “중국산 김치에서 검출된 납의 인체 노출량은 다른 영양을 포함할 경우 주간 잠정섭취 허용량의 23.6~46.4%에 이르는데도 정부가 납 김치를 유해하지 않다는 말로 먹어도 무방한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는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꼬집었다. 참고로 WHO는 김치의 주원료인 배추의 납 기준치를 0.3ppm로 정해놨다. 그는 정부가 기준치를 마련했어야 하는데 미처 하지 못했고, 곧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태도로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식당에서 식품 원산지 표시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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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김치의 높은 납 오염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 의원은 “배추나 고춧가루, 소금, 비위생적 제조 과정에서 오염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현장 역학조사를 통해서나 가능하다”며 “정부가 나서 빨리 실태를 파악하고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김치의 원산지 표시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종 소비단계인 식당에서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원산지 표시가 안 돼 유통되는 중국산 김치가 더 많다.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국산 김치업자들까지 어렵게 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산 김치가 ‘김치 종주국’을 자임하는 우리나라의 식탁을 점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01년 393t에 불과하던 수입량은 지난해 7만2천t으로 불과 3년새 183배나 늘었다. 농림부가 한국음식업중앙회에 의뢰해 서울·경기 지역 한식업소 7만9311곳을 대상으로 김치 사용 실태를 조사했더니, 절반인 3만9663개 업소가 중국산 김치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그는 중국산 김치뿐만 아니라 먹을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만두소 파동이 터진 뒤 당 먹거리안전태스크포스 위원장을 맡으면서 ‘식품안전기본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그가 주도해 만든 이 법안은 기존 위해 식품업자들을 향한 솜방망이 처벌에서 벗어나 형량을 높이고,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진척이 없다. 그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호들갑을 떨면서도 조금만 지나면 잠잠해진다. 식품안전은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는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당내에서 조용하게 정책활동에만 몰두하는 의원으로 꼽힌다. 당 정책위에서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으로 5년 동안 일했던 경험이 그의 전문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정책을 하면서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의정활동의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빈곤, 저소득층을 위해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나라당이 제안한 국민연금법 개정안 가운데 연금의 취약 계층인 65살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기초연금제 도입은 그가 당 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맨 먼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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