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직후의 1천명 확보 전략에서 박사모의 108개조 사이버 전사대까지
순수한 충정이라 하더라도 인터넷 여론 장악 위한 당 홍보전략의 연장선
▣ 박종찬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pjc@hani.co.kr
“한나라당은 언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기업처럼 뒤에서 조종하는 에반젤리스트(evangelist·홍보인력)들을 양성해 이들이 ‘어떤 의원은 어떻다더라’고 인터넷에 띄워, 이른바 ‘입소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에 흔적 고스란히 남아
지난 6월21일 한나라당 중도파 모임인 ‘국민생각’(회장 맹형규)이 주최한 조찬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PR전문가 김경해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대표는 한나라당 홍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조언을 내놨다.
김 대표는 “한나라당 대권주자 여러분들이 대권을 위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계시는데, 내부적으로는 경쟁하면서도 좀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빅 싱크’(big think) 한번 해봐야 한다”며 “기업들이 신제품을 출시하면 40~50명의 주부 에반젤리스트들을 양성해서 입소문을 내는데 한나라당도 이를 활용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한나라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홍보전략으로 당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알바’(아르바이트)를 양성해 활용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여 뒤. 오비이락일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팬 카페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가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여론몰이를 위해 만들었다는 ‘사이버 전사대’(박사모 내부에서는 ‘알리미’라고도 한다) 108개조가 인터넷 세상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해온 정황이 포착됐다.
사이버 전사대 108개조의 조직표에는 각종 포털 사이트와 언론사, 보수 및 진보단체, 정당 및 공공기관의 인터넷 사이트를 성향별로 분류하고, 대상 사이트별로 각각 담당자의 아이디를 지정한 내역을 담고 있다. 108개의 조별로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20명 이상이 소속돼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모두 600여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활동 무대로 박근혜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사이버 여론전을 펼쳐왔다. 박사모 카페는 물론 디시인사이드, 프레시안, 미디어몹, 문화일보 등 게시판에는 사이버 전사대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터넷은 “‘알바’들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부글부글 끓었다. “소문으로 떠돌던 ‘한나라 알바’의 존재가 확인됐다. 알바 운운하면 발끈하던 사람들이 모두 한나라 알바였다.”(네이버에서 ‘sun2272’) “이상하게 한나라당과 박 대표를 편드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박사모였군.”(‘andewjgh’) “이러니 인터넷이 여론 수렴의 장이 아닌 쓰레기장이 돼버리는 것.”(‘xlxlx’)
한나라 당사 IP, 꼬리 잡히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을 벌였다. 열린우리당은 “사이버 전사대가 올해 2월 작성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2007년 승리를 위한 당 혁신방안’ 문건에서 나온 당의 디지털화 및 전력기능 강화 방안의 일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한나라당 공조직이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한나라당과 박사모쪽은 “박사모 회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일 뿐, 공조직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한나라당에서 연정이 야당의 대선 후보 관리용이라는 노무현 대통령 비선조직 문건을 폭로하자 물타기로 터뜨린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과연 사이버 전사대는 당과 전혀 상관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뚤뚤 뭉친 박 대표의 자발적 에반젤리스트들인가?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를 중심으로 개혁 성향의 네티즌들이 장악한 인터넷에서 이회창 후보는 절대적인 열세를 보였다. 인터넷 여론 주도층인 논객들은 경쟁하듯 ‘이회창 후보 씹기’에 열을 올렸다. 아들 병역비리, 손녀 원정출산, 900평 빌라 등은 이 후보에게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색칠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인터넷에서만큼은 ‘반창’ 구도가 너무도 견고한 벽처럼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 후보쪽 지지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반노무현 후보 게시물을 중복 아이디와 동일 IP로 게시하거나 도배질로 게시판을 공격하는 것뿐이었다. 초라한 ‘삽질’의 연속이었다. 인터넷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글은 양적으로 부족했고, 그나마도 ‘알바’라는 낙인이 찍혔다. ‘한나라 알바’라는 꼬리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002년 대선 뒤 한나라당이 인터넷 전략을 본격적으로 수립한 것은 ‘인터넷 때문에 졌다’는 자평에서 나왔다. 한나라당은 2003년 7월 ‘i-한나라 추진기획단’을 꾸리면서 사이버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최병렬 전 대표는 2003년 11월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사이버 전사 1천명 양성론’을 처음으로 언급한다. “사이버 세계에 정성을 좀더 기울이겠다. 인터넷에서 우리의 주장을 펴고, 리플을 달고 할 전사를 1천명쯤 길러서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실천하도록 하겠다.” 사실상 최 대표가 당 차원에서 사이버 전사를 대량 양성하고 있음을 시인한 것으로 오히려 알바 논쟁에 불을 지폈다.
“놈현(노무현) 알바 XX들 조용히 해.” “노무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골빈 사람들이 많은 것 같소?” “쓰레기 골이 빈 노빠X들. 나라를 아예 거덜내야 정신차리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 등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치던 2004년 1월6일.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노 대통령과 ‘노빠’들을 비난하는 욕설이 연속적으로 올라왔다. 인터넷에서 이같은 욕설이 오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이날은 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작성자들이 하나같이 동일한 IP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IP 번호는 211.44.187.143. 여의도 한나라 당사였다. 대선 뒤 소문만 무성하던 ‘알바’들이 꼬리를 잡힌 순간이었다.
이같은 한나라당 IP 소동은 대통령 탄핵으로 시끄럽던 3월까지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딴나라당 IP어드레스 관찰기’를 올리며 “한나라당이 알바를 고용해 사이버 여론조작에 나서고 있다”는 의혹을 잇따라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꼭 한나라당 직원이 했다는 증거는 없다. 당사에는 기자들도 있고 외부인도 있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2004년 8월,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 승리전략 ‘5107 프로젝트’(2007년 51% 득표로 집권)를 발표한다. 총선 뒤 박근혜 대표 체제가 안착화돼가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다음 대선을 준비하겠다는 전략 보고서였다. 여기서 한나라당은 충성도가 높은 네티즌 10만명을 확보한다는 ‘10만 양병설’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행넷운동은 박근혜 대표가 직접 지휘
“10만 양병설이 싸울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라면 이들을 지휘할 장교도 필요하다. 40~50명 정도로 핵심 네티즌을 구성해 이들이 인터넷상의 여론을 주도할 수 있도록 당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박사모를 노사모에 대적할 만한 충성도 높은 온라인 전사로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당시 박사모는 출범 5개월 만에 회원이 1만5천명을 넘어서는 등 노사모와 비교해도 손색없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모 안에서 ‘알리미’라는 이름으로 108개조의 사이버 전사대가 처음 조직된 것은 ‘5107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두달이 지난 10월께다.
한나라당의 사이버 전사대는 2004년 12월 ‘4대 국민분열법 바로 알기 네티즌 운동’(행넷운동)에서 빛을 발한다. 행넷운동은 4대 입법(과거사법, 국가보안법, 언론법, 사학법)을 저지하기 위해 별도의 홈페이지와 함께 싸이월드 미니홈피, 네이버 블로그, 다음 플래닛 등 네티즌들이 자주 모이는 주요 거점을 확보하고, 댓글 이어가기, 방명록 남기기, 퍼나르기 등의 여론전을 펼쳤다. 한나라당은 11월28일 박근혜 대표는 물론 김형오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등 당 지도부가 대거 참여해 ‘4대 국민분열법 바로 알기 네티즌 운동’ 선포식을 여는 등 지도부가 진두지휘했다. 박 대표는 당 디지털정당위원장인 김희정 의원에게 ‘네티즌 운동’의 조직화를 직접 지시하는 등 평소 스타일답지 않게 저돌성을 보였다. 박 대표는 “네티즌과 국민의 힘으로 4대 국민분열법을 막아내야 한다”며 누리꾼을 독려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행넷운동은 성과 유무를 떠나 박사모의 사이버 108개조와 깊은 연관 속에 진행됐음은 명확하다.
2002년 대선 뒤 한나라당과 박사모의 행보를 추적하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대선 뒤 한나라당과 박사모가 인터넷 여론을 붙들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정황상 부인할 수 없다. 박사모의 순수한 충정과 상관없이 사이버 전사대는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절치부심한 당의 홍보전략의 연장선에 있었다. 또 108개조의 존재는 인터넷 세상에 공공하게 퍼져 있던 ‘한나라당 알바’를 자인하는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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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알바’나 사이버 전사대 논란에 휩싸이면 어김없이 들고 나오는 것이 “왜 박사모만 타깃이 되느냐”는 것이다. 박사모를 옹호하는 누리꾼들도 여론몰이의 원조는 ‘노사모’와 좌파 세력이라고 반박한다.
박사모 카페에서 ‘카사노바척결’은 “웃긴다. 각종 사이트마다 노사모와 때중이(김대중) 광신도들의 여론몰이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 아픈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네이버나 각 좌파들 사이트는 물론이고 애국 우익 보수단체 사이트도 노사모와 대중이 광신도들 때문에 얼마나 신경질이 나는데…. 참 어이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비판의 형평성을 놓고 보면 박사모나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충분히 억울할 만하다. ‘노사모’ ‘서프라이즈’ ‘국민의힘’ 등 친노 매체에서도 알바를 독려하는 글은 쉽게 볼 수 있다. 사이트를 돌며 노 대통령 지지 글을 띄우거나 특정 성향의 글에 긍정적 댓글을 남기며 추천하는 ‘숙제놀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야, 정말 숙제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보기만 해도 즐거운 숙제” “서프 숙제 클릭, 클릭”…. 비록 박사모의 사이버 전사대처럼 조를 나눠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빠’도 각종 게시판에 ‘숙제’라는 명칭으로 리플 도배와 추천 조작을 통해 여론을 왜곡한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전사대나 숙제놀이 등이 명백한 여론 조작이라며 인터넷의 속상상 오히려 역풍이 불 것이라고 경고한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짜맞춰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것은 전혀 인터넷스럽지 못한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오히려 여론을 왜곡했다는 역풍에 휘말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누가 되는 바보스런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는 “법적인 잘잘못을 따질 수 없으나 여론을 조작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피할 수 없다”며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몰아쳐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런 식의 여론 조작은 정치인뿐 아니라 영화 홍보나 제품 홍보 등 인터넷 마케팅의 수단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며 “법적인 제재 방법을 찾기보다는 사실과 허위를 구별하고 조작된 여론에 휩쓸리지 않도록 누리꾼들이 스스로 안목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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