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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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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 거듭나기의 진통!

등록 2005-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새롭게 꾸려진 1만7천명 자문위원의 정치적 성향 놓고 한나라당 반발
군사정권의 유산이라는 태생적 한계 뛰어넘지 못하면 존재가치 없어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1981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보수 진영이 완전히 장악해 거의 변화가 없던 평통 자문위원의 대대적인 인적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른 한나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은 “평통을 어용, 관변 단체로 만들지 마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은 “기득권화한 자문위원을 물갈이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1만7천명의 평통 자문위원이 어느 당파에 유리하게 구성됐는지를 놓고 여야 정치권의 이해가 충돌하는 것이다.

‘박계동 맥주 해프닝’에 숨은 불만

충돌은 엉뚱한 곳에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나타났다.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7월12일 ‘12기 민주평통 송파지역협의회 출범식’에서 이재정 평통 수석 부의장에게 맥주를 뿌렸다. 내빈 축사를 부탁받고 지역구 행사에 나선 박 의원은 평통 인사가 내빈 축사를 대신하자 순간 울컥한 것이다. 이번 맥주 세례를 박 의원 개인의 돌출행동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밑바탕엔 평통 인적 구성의 쇄신을 놓고 야당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평통엔 최근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대통령 자문기구인 평통은 그동안 나눠먹기식이었던 자문위원을 교체하기 위해 지난 3월 지역추천위원장을 공모한 뒤, 추천위에서 6천여명의 자문위원을 추천받았다. 지역추천위원장은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시군구협의회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다섯번(10년) 이상 연임한 사람은 배제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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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놓고 박계동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올 들어 갑자기 위원 수를 1만2천명에서 1만7천명으로 늘리면서, 75%에 달하는 신입 위원의 상당수를 열린우리당 편향 인사로 대거 포진시켜 여당과 대통령의 홍보기구화하고 있다”며 “지역추천위원장 227명 가운데 122명(54%)이 열린우리당 소속이며, 그 외 27명도 여당 성향의 인사로, 전체적으로 65.6%가 열린우리당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도 논평을 내어 “(평통의) 간부 중 대다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운동원이나 열린우리당과 관련 있는 인사들로 채워졌다”고 거들었다. 실제, 이러한 불만은 한나라당 성향의 강원도 시·군·구청 3곳이 평통 사무실을 내보내겠다는 의사로 나타났다. 그러나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법에 따라 지자체 등 관계기관은 평통의 협조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어서, 지자체의 반발은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평통은 박 의원과 한나라당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평통 고위 관계자는 “자문위원을 추천받는 과정에서 기회는 여야에 똑같이 제공됐으며, 과정은 개방적이고 공정하게 관리됐다. 시군구별 협의회장에 활발히 참여한 여당쪽 인사가 더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당연직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4100여명의 시·군·구 지방의회 의원과 자치단체장들이 추천하는 3천명을 포함한 7100여명 자문위원의 60% 이상이 한나라당 지지 성향”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평통의 다수는 과거 구 여권 성향의 사람들이란 것이다. 또 관변단체나 선거조직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기준에 따라 연임이 불가능한 인사는 1100여명에 달했는데 이들의 다수는 구 여권에 우호적인 인사들이다. 평통 고위 관계자는 “연임할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해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이 평통을 완전히 장악해왔다. 이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을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뿌리를 제거하려 한다고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반발은 고인 물을 새 물로 갈면서 표현된 상실감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서울시당 관계자는 “시당 차원에서 확인했더니 간부들은 거의 다 열린우리당 출신이었다. 평통이 현재 열린우리당에 편향돼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옛날 우리가 여당일 때는 안 그랬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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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우리도 옛날에 그랬지만…”

평통이 이제껏 제 역할을 못해왔다는 것은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평통 내부에서조차 공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평통은 자기 기득권 유지와 지역에서 토호세력이 자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로터리클럽 역할밖에 못했다”며 “과거엔 사실상 정치조직이었기 때문에 평화통일을 위한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제 역할은 못했다”고 지적했다. 평통 관계자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평통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돼온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평통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통이 인적 교체라는 형식적 변화뿐만 아니라 내용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통은 횟수가 아주 적어 유명무실한 상임위와 분과위의 회의 개최 횟수를 늘리고, 분과별로 건의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운영할 방침이다. 평통이 군사 정권의 유산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꾸준히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와 통합을 이끌어내는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변, 어용 논란은 끊이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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