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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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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대권 행보가 시작됐다

등록 2005-06-22 00:00 수정 2020-05-03 04:24

미니홈피를 통해 정치 소신 밝히고 비공개 정치 모임 참석
고건 중심 정계개편론’도 나왔지만 어느 세력과 연대할지는 두고 봐야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자꾸 흔든다.”
지난해 말까지 고건 전 총리와 그 측근 인사들은 ‘고건 대권도전설’에 잔뜩 몸을 사렸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책임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도의를 감안해 조신하게 있는데 주변에서 흔든다는 것이었다.

사석에서 개인홍보물 나눠줘

그런데 고 전 총리가 최근 변했다. 자기 존재 가치를 알리기 위해 발벗고 뛰는 모습이 뚜렷한 것이다.
일단 지난 5월 초 싸이월드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letsgo) 개설 이후 젊은 층과 상시적 호흡 체계 구축이 돋보인다. 5월 한달 동안 영화배우 샤론 스톤과 만남 사진 공개, 침팬지 학자 제인 구달과 만난 감상, 10만~10만9번째 방문객 10명과 호프미팅 선언 등 젊은 층 공략을 위한 이미지 정치에 힘을 쏟았다. 6월에는 미니홈피를 통해 정치적 의미가 함축된 공격적 행보의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 6월11일 광주 방문, 16일부터 시작된 중국 방문이 대표적이다.

고 전 총리는 광주 방문은 ‘역대 전남지사에 대한 도정 브리핑’, 중국 방문은 ‘한-중 경제협력 대논단 국제토론회’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방문에 앞서 미니홈피를 통해 방문의 핵심 메시지를 적극 설파했다. 광주 방문 전에는 광주와 자신의 정치적 인연, 5·18 광주항쟁 국가 기념일 지정에 대한 자신의 공적을 선전했다. 중국 방문 하루 전인 15일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북한과 특수 관계인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비공개 행보도 공세로 전환했다고 그와 가까운 인사들이 밝혔다. 지난 6월9일 고 전 총리가 참석한 서울대 정치학과·외교학과 출신 정치인 모임을 주도했고, 열린우리당 안에서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론’을 역설한 신중식 의원(열린우리당). 그는 “평소 굉장히 겸손한 고 전 총리가 요즘 고시 동기 모임, 외무관료 모임, 전직 장관 모임, 동창회와 향우회 등 공·사석에서 지난 3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한 북핵 관련 영문 연설문과 사진이 담긴 개인 홍보물을 직접 나눠주는 등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리고 있다”면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왜 이런 행보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신 의원은 “그동안 대권 행보를 자제해온 고 전 총리가 이제 대통령직은 누가 차려주면 먹는 밥상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대권 도전에 긍정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단계에 돌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대권 도전을 부정하는 단계-대권 도전에 대해 가부 표명을 자제하는 NCND 단계-그저 웃고마는 소이부답의 단계를 거쳐온 고 전 총리가 이제 누가 봐도 알 만한 대권 도전 의지를 표출하고 있고, 앞으로 남은 것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 다음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고 전 총리와 서울대 정치학과 동문인 김원웅 의원(열린우리당)도 “전직 총리 가운데 미니홈피를 개설하고, 자신의 팬클럽을 만드는 데 힘을 쏟는 사람은 고 전 총리밖에 없다”면서 “최근 부쩍 대권을 향해 움직인다”고 평가했다.

고 전 총리쪽 핵심 인사들도 정치권의 이런 분석을 부정하지 않는다. 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은 “고 총리께서 최근 상당히 친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대선 출마 여부가 화두로 등장할 때면 ‘역사가 요청하면 회피하지 않겠다’고 얘기한다”면서 “대권 도전 뜻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고 전 총리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끝낸 지 이제 1년이 지난 만큼 명분 있는 공식 행사에는 적극 참여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사가 원한다면 피하지 않겠다”

정치권 안팎에서 고 전 총리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민주당에 입당한 최인기 의원은 6월16일 광주를 방문해 “고 전 총리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문호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상당한 역풍이 불지만 열린우리당에서도 신중식, 안영근 의원 등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론’을 주창하는 인사가 적지 않다. 지난 1월 고 전 총리를 고문으로 영입하고, 우민이란 호를 지어주며 네티즌 상대 여론조사를 벌여 ‘고 전 총리의 대선캠프’라는 의혹을 받았던 다산연구소도 적극적이다. 연구소 이사장인 박석무 전 의원이 최근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 전 총리가 다산(정약용)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근접해 있다”며 “고 전 총리가 집권한다면 다산식 정치개혁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물론 고 전 총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그는 6월16일 중국 방문 중 “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시점에서 대선 출마 여부나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핵심 측근들도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고 전 총리와 어떤 교감도 없이 각자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분리의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이런 태도는 대권 행보를 시작했지만, 어느 정당을 선택할지, 또 어떤 세력과 연대할지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고 전 총리쪽 핵심 인사도 “지금 당장 어느 당을 선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해도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당분간 대외적 명분이 있는 공식 행사,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활동, 국가적 어젠다에 대한 언급, 젊은 세대와 호흡 확대 등 내공을 다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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