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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 노사모될라”

등록 2005-06-01 00:00 수정 2020-05-03 04:24

3만5천여명 회원의 오프라인 정치세력화에 쏟아지는 우려와 견제
“적·아군 구분하는 이분법으로 홍위병 노릇하려나”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내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등 선거 국면이 되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더 적극적으로 당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나?”

김아무개(37) 한나라당 보좌관은 4·30 재·보궐 선거 뒤 소장파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 박사모의 정치세력화 움직임을 잔뜩 경계했다. 그의 우려는 단순히 정치세력화 자체에 있지 않다. “박사모가 전대 등을 통해 자기 입맛에 맛는 사람들을 당 지도부에 올리려 애쓸 것이다. 편협하고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있다고 스스로 비판해왔던 노사모와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박사모가 도덕성이나 탈권위주의를 통해 당 개혁에 힘을 보탠 노사모의 장점은 건너뛴 채, 오로지 박근혜 대표의 홍위병 노릇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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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혐의 고소 사건도 도덕성에 흠집

박사모가 당 안팎의 많은 우려와 견제 속에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박사모는 소장파와의 대립이 수그러들 무렵인 지난 5월14~15일 충주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박사모는 이날 대외협력 홍보단, 사이버 전사대, 조직위원회, 인간 박정희 만화출판 위원회 등 10개의 소위원회를 꾸렸다. 지난해 3월 동호회 차원인 인터넷 팬카페에서 첫발을 뗀 박사모가 이제 3만5천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정치조직으로서 기본 꼴을 갖춘 것이다. 최진무(54) 박사모 행사준비위원장은 “어떤 의도를 갖고 정치세력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소장파와 반박(반박근혜)쪽에서 그렇게 평가할 뿐이다. 그동안 박근혜님의 얼굴만 쳐다보며 좋아했으나, 이제는 회원 각자가 (박 대표의) 대권 도전을 바탕으로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당 안팎에서는 박사모의 활동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박사모가 4·30을 계기로 소장파와 ‘반박’ 진영 의원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탈당을 요구한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싸움은 흐지부지됐으나, 박사모의 판정패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소장파들도 팬클럽과 싸우면서 체면을 크게 구긴 것이 사실이다. 최진무씨는 “앞으로는 소장파와 극단적으로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과격한 용어를 쓰지 않고, 이론과 논리로 철저히 무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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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와 소장파의 대립에 때 맞춰 불거진 카페지기 정광용(46)씨를 상대로 한 횡령 혐의 고소사건은 박사모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이 때문에 ‘박사랑’ 등 박근혜 팬클럽 7곳이 모여 만든 ‘애국애족실천연대’(애실련)는 박사모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최근 박사모의 잇따른 행보가 “박 대표에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비판적 입장이다. ‘범 근혜 가족’(20여개의 박근혜 팬클럽) 내부에서 균열이 생긴 것이다. 하상규 애실련 사무총장은 “정광용씨 개인이 박사모를 가지고 노사모를 흉내내려 하지만, 아무리 복제를 해도 원판이 될 순 없을 것”이라며 “범 근혜 가족 내 박사모의 대체 세력이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여만 범 근혜 가족 회원들 모두가 박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데 생각을 같이하고 있으나, 노선은 조금씩 다르다.

이성권 한나라당 의원은 “박사모의 정치세력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들이 당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박사모의 양적 팽창이 박근혜가 대세론인 만큼, 그게 무조건 ‘옳다’는 논리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선이 2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박사모가 앞장서 박 대표가 독주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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