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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마일리지 정치자금

등록 2005-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카드사와 손잡은 선관위, 소액 기부 독려로 옛 시절 돌아가려는 정치권 압박

▣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공무원 홍아무개(44)씨는 요즘 흐뭇한 표정이다. 연말정산을 하면서 여느 해에 견줘 6만6천원의 세액공제를 더 받았기 때문이다. 홍씨는 지난 7월 신용카드 포인트(마일리지) 6만점(현금 가치 6만원)을 선관위에 정치자금으로 선뜻 기탁했다. 지난 6년 동안 포인트를 한번도 쓰지 않은 홍씨에게 포인트를 활용해 세액공제까지 받는 것은 제법 쏠쏠한 재테크다.’

미리 내다본 올 연말정산의 한 풍경이다.

신용카드 포인트 주고 연말 세액공제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마일리지를 정치자금으로 기부할 수 있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유지담)는 4월19일 신한카드사(대표이사 홍성균)와 ‘마일리지 정치자금 기부 협약’을 맺었다. 이르면 7월부터 가능하다고 한다. 상품 구매나 서비스 이용 실적에 따라 일정률의 보너스 점수가 쌓이는 마일리지의 알뜰 활용법에 정치자금 기부 항목이 하나 더 늘게 된 셈이다.

앞으로 마일리지를 정치자금으로 기부하고 싶은 사람은 카드사 홈페이지에 구축된 정치자금 기부시스템에 들어가 후원하고 싶은 정치인의 후원회나 선관위에 기부 의사를 표시하면 된다. 그러면 카드사는 고객의 의사에 따라 마일리지에 해당하는 금액을 후원회 등에 입금하게 된다.

우리나라 전체 마일리지 시장은 4조5천억원에 이른다. 선관위는 모든 마일리지를 정치자금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길을 트면 마일리지 시장의 1%인 450억원 정도가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지난해 정치권 전체로 들어온 기부금이 490억원인 점을 고려할 때 엄청난 금액이다.

신한카드사의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장광태 신한카드 상품개발팀장은 “신한카드 고객 220만명의 누적된 총 마일리지를 돈으로 환산하면 303억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10억~30억원 정도가 정치자금으로 기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0만원 이하의 소액 정치자금 기부자가 연말정산을 통해 110%(주민세 10% 포함)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제도의 가장 큰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년 중앙선관위 홍보과장은 “마일리지의 정치자금 기부는 ‘스리 윈’으로 기부자에게 세액공제, 기업에게 홍보, 정치인들에게 안정적 정치자금 제공의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더 많은 업체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카드사 외면 “휴면 포인트 깨워서야”

그러나 참여 업체들에게 딱히 손에 잡히지 않는 홍보효과 외에 마땅한 유인책이 없다는 게 걸림돌로 보인다. 선관위가 지난 3월31일 삼성카드, 비씨카드, 국민카드 등 8개 카드사에 보낸 ‘정치자금 기부 참여 안내문’에 신한카드 외에 어느 곳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기업들 입장에서 가만히 놔두면 회사의 이익으로 귀결될 60% 안팎에 달하는 휴면 마일리지의 활용률을 스스로 높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참여 업체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선관위가 고객과 기업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마일리지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지난해 3월 고쳐진 정치자금법으로 금지된 법인이나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다시 허용하자는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는 성격이 짙다. 선관위 관계자는 “마일리지 기부는 옛날로 돌아가려는 정치권에 압박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일리지를 통해서도 소액 다수의 정치자금 모금이 가능한데 굳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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