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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정동영을 버렸나?

등록 2005-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열린우리당 대의원대회에서 김근태 계열 재야파 승리 이변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호남 유권자들은 정동영 대신 김근태를 택한 것인가? 2000년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노무현 돌풍을 불러온 ‘전략적 선택’의 조짐을 보이는 것인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텃밭으로 인식돼온 호남지역의 열린우리당 시도당 위원장 경선에서 김근태 장관계로 분류된 재야파 인사들이 1등을 석권하자 여당의 각 계파는 그 의미와 파급력을 놓고 신경전을 거듭하고 있다.

“당 개혁의 열망 표출한 결과”

3월13일 치러진 광주, 전남, 전북 등 호남권의 3개 시도 대의원대회 결과는 여당의 일반적 예상을 뒤엎는 이변을 연출했다.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인 강봉균 의원 압승, 정동영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채수찬 의원의 선전이 예상됐던 전북도당 대의원 대회에서는 가장 약체로 평가받던 재야파의 최규성 의원이 도당위원장에 선출됐다. 또 ‘개혁당 그룹’에 속한 이광철 의원이 강봉균 의원에 이어 3위로 중앙위원회에 진출했다. 반면 ‘정동영 장관의 대리인’으로 통하는 채수찬 의원은 5위에 머물러, 4명의 중앙위원단 진입조차 실패했다. 전남도당 대회에서도 정동영 장관과 연대설이 나도는 국민참여연대 소속의 주승용 의원이 열세로 평가받던 김근태 장관 중심의 ‘국민정치연구회’ 소속 유선호 의원에게 패했다. 광주광역시 역시 김근태 장관쪽의 김재균 북구청장이 정동영 의원쪽인 양영일 의원을 제치고 광주시당 위원장에 뽑혔다.

호남의 이변에 대해 재야파와 개혁당 그룹은 평당원들의 당 개혁과 민주화 요구, ‘문희상 대세론’에 대한 거부감 등이 반영된 결과라며 잔뜩 고무됐다. 전북도당 위원장에 선출된 최규성 의원은 “중앙 정가의 판단과 달리, 당원들 사이에는 제왕적 정당 운영, 중앙당의 낙하산 공천 등 구태를 극복하고 정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적합한 관리자를 선택하자는 흐름이 강했다”며 “대의원들이 당 개혁을 외친 나와 재야파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당 그룹에 속한 한 의원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연대한 문희상 의원의 줄세우기식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호남 대의원들이 당을 민주적으로 바꿔보자는 열망을 표출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이 흐름이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을 선출하는 4월2일 전당대회는 물론, 2007년 대선후보 결정전까지 이어지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반면 정동영 장관 계보나 문희상 의원 지지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호남의 바닥 민심 변화로 확대 해석하는 데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정 장관과 가까운 전북 출신 한 의원은 “상황을 너무 낙관한 강봉균 의원, 선거운동을 게을리한 채수찬 의원의 실패를 김근태 장관 중심의 재야파에 대한 지지로 보는 것은 너무 호들갑을 떠는 분석”이라며 “정 장관이 대선후보가 되면 호남은 99% 표를 몰아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남의 바닥 민심이 정 장관의 대선후보 경쟁력을 의심하며 전략적 선택 조짐을 보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재야파와 별 관계 없는 조직력일 뿐?

전남지역의 한 의원도 “개혁당 그룹에 속한 문태룡씨가 막판에 유선호 의원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하면서 유 의원이 전남도당위원장에 당선된 것일 뿐 큰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재야파와 개혁당 그룹의 일시적 연대에 따른 반짝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광주시당대회 결과에 대해서도 “바닥을 충실히 다져온 김재균 북구청장 개인의 노력과 조직력 덕분일 뿐, 재야파와 별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호남 대의원들의 선택을 두고,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근태·정동영 두 장관쪽과 당권 경쟁에 나선 후보 진영이 서로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계파의 이해에서 비교적 중립적인 당직자들은 아직 호남의 선택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인다. 열린우리당 총괄조직실의 한 핵심 관계자는 “시도당 대의원 등 밑바닥과 현역 의원 중심의 중앙정치에 정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의원들이 정 장관이나 김 장관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며 “3월26일 인천·경기와 27일 서울 대의원대회 등 수도권 대의원들의 선택을 봐야 더 확실한 의미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기간당원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의원들이 과거와 달리 현역의원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일방적 지침을 거부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해 투표하는 경향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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