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 내정 뒤 대선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 제기…언론기관의 부담감 등 회의적 의견도 많아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홍석현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 발표 이후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홍 회장이 주미대사, 유엔 사무총장을 넘어 2007년 차기 대선경쟁에 참여할 가능성과 관련된 언급이었다.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홍 회장은 무엇보다 국제적 안목과 전문 경영인, 언론인으로서의 식견 등으로 보아 상품이 된다. 합리적인 보수주의자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가 여권의 대선주자 대열에 가세하는 것도 나쁜 게 아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청와대 영입 이후 떠오른 것과 마찬가지다. 여권의 차기 전략 측면에서 봐도 주자군이 진보·개혁·합리적 보수 등으로 다양해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출신 유력인사 모이다
그의 말에는 홍 회장이 고작 주미대사·유엔 사무총장만 바라보고 라는 기업의 명운을 ‘올인’하겠느냐는 일반적 의문에 대한 열쇠가 담긴 듯했다. 홍 회장이 참여정부의 공직에 참여하는 행위는 언론기관인 에 부담이 된다. 문창극 논설주간이 12월21일 칼럼에서 “대주주가 공직에 진출했다고 (신문) 스스로 눈치를 본다면 발행인도 죽이고 신문도 죽이는 것”이라며 ‘논조 변화 없음’을 주장한 것도 종사자들이 느끼는 부담을 역설적으로 대변한다. 따라서 홍 회장의 이번 행보에 주미대사·유엔 사무총장 이상의 꿈이 깃들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차기 대선 참여 아니겠냐는 관측이 가능한 것이다.
홍 회장의 대선경쟁 참여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정황들은 제법 있다.
그는 12월12일 고흥길·이규택·박형준(이상 한나라당), 박병석·신중식(이상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준영 전남지사, 정순균 국정홍보처장 등을 초청해 안양베네스트 컨트리클럽에서 골프회동을 했다. 편집국장과 정치부장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초청 대상자들은 출신으로 정·관계에 진출한 유력 인사들이다. 따라서 신문사 발행인으로서 퇴직 사우들과의 유대를 다지는 통상적 성격의 일정이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 설명을 의심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러나 장래에 홍 회장이 정치적 행보를 결심할 경우, 이렇게 다져나간 유대가 나름의 힘이 될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홍 회장과 는 현실 정치와 관련해 역풍에 휘말린 전력도 있다. 1997년 대선 때는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내부 문건이 유출됐다. 는 정치 개입 문건이 아니라 일선 기자들의 단순한 정보보고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 뒤 는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보낸 서한에서 “97년 12월 대선 당시 홍씨가 사장 겸 발행인으로 있는 는 김대중씨에게 패배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습니다”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99년 세무조사를 받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회창 후보 지지 사실을 스스로 토로한 셈이었다.
홍 회장의 신문사 운영 스타일도 흥미롭다. 그는 정치부장, 경제부장 등 편집국 부장단과의 간담회를 월 1회씩 주재한다. 이 자리에선 그때그때 정치, 외교, 경제 현안이 폭넓게 논의된다고 한다. 관계자는 “언론사 발행인으로서 사내 의사소통을 위한 통상적 간담회”라며 “편집국 부장단뿐 아니라 판매·광고 등 다른 직군 간부들과의 간담회도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간담회 참석 경험자들 가운데는 “홍 회장이 언론사 발행인 자격 이상의 관심을 정치와 국정 현안에 표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홍 회장과 대통령의 특별한 인연
홍 회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도 주목을 끌고 있다. 홍 회장은 2002년 4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이전부터 노 대통령을 만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무렵에는 출신인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다리를 놓았다. 김씨는 권노갑씨의 보좌역이면서 이광재 현 열린우리당 의원을 매개로 해서 노무현 캠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 뒤 노 대통령은 “부잣집 도련님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참으로 신사이며 사귀어볼 만한 사람이다”라는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당시 노무현 캠프 관계자는 기억했다. 홍 회장도 “참 독특한 분”이라며 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홍 회장은 이어 2003년 초 참여정부 첫 조각 단계에서 통일부 장관 후보에 오르며, 2004년 2월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견 등을 거쳐 주미대사로 영입되기에 이른다. 영입에는 청와대에선 김우식 비서실장이, 정치권에선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한길 의원이 다리를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를 따지는 이유는 차기 대선 후보 경쟁에서 현직 대통령이 갖는 힘 때문이다. 분권형 국정운영 차원이긴 하겠지만 노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 정동영·김근태 장관을 내각에 포진시킴으로써 이들의 경력을 자연스레 관리해주는 효과를 낳고 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 영입, 그리고 김 전 지사를 한때 총리로 기용하려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청와대는 심대평 충남지사도 지난해 말 접촉했으나 영입은 불발에 그쳤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 대통령과 홍 회장 사이에 어떤 정치적 약속이 되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앞질러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시점에선 두 사람 사이의 ‘좋은 인연’ ‘괜찮은 느낌’에 주목하는 것으로 족할 듯하다.
반면 홍 회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기 어려운 정황들도 많다.
첫째로, 상당수의 현직 관계자들은 “홍 회장께서 그런 생각까지 하시겠느냐”라며 가능성을 낮게 본다. 그런 반응들의 이면에는 역시 언론기관으로서 느끼는 부담이 묻어나온다. 관계자들은 과거의 정치 개입 시비와 관련해서도 “홍 회장이 1999년 탈세로 구속된 이후부터는 오히려 정치와 거리를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왔다”고 말한다.
두 번째로, 한국 사회의 ‘신흥 귀족’이며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홍 회장 본인의 이력도 가능성을 낮게 하는 대목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인 그가 만일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곧 삼성그룹의 권력 쟁취 시도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주영 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듯이 국민들은 재벌의 정치권력 장악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또한 홍 회장의 병역 문제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실패와 유사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관계자는 홍 회장의 병역 면제 사유와 관련해 “결핵도 앓으시고… 어쨌든 몸이 굉장히 허약했던 것으로만 안다”고 말했다.
‘깜짝 인사’의 퍼즐 풀기
홍 회장의 ‘깜짝 기용’은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쟁점을 낳았다. △참여정부 인재기용의 폭을 넓히는 문제 △언론사 현직 발행인의 공직 참여가 적절한지 문제 △조·중·동에서 중앙을 분리하는 정치적 고려 여부 △의 독립성 유지 문제 △참여정부와 삼성과의 관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홍 회장의 대권 레이스 참여 가능성도 이번 ‘깜짝 인사’의 퍼즐 풀기 숙제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한 것 같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퍼즐의 답을 내긴 어렵다. 다만 숙제에 담긴 ‘무게’를 한번쯤 찬찬히 달아볼 필요성만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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