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파 386세대 사상투쟁에 일부 의원 동조… 당 지도부는 큰 의미 두지 않으며 내심 ‘경계’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11월25일 낮 한나라당 대변인실은 고민에 빠졌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신혜식 대변인이 지난 10월4일 집회에서 경찰에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뒤늦게 구속된 것에 대해 어떤 ‘강도’의 논평을 내느냐가 문제였다. 신 대변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 이틀이 지나고, 박근혜 대표가 주재한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김형오 사무총장이 이 문제를 언급한 뒤에도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적극 접목·연계·흡수, 기대치 제각각
한나라당은 결국 이날 오후 임태희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공권력 집행의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면서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해당 상임위 및 당 법률지원단 차원의 조사를 통해 정치적 탄압 의혹에 대해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히는 데 그쳤다. 장외 우익세력에 대한 한나라당의 ‘딜레마’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신씨 문제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기에는 “역시 수구우파”라는 지탄을 받을 게 두렵고, 회의 때 언급하는 정도로 넘어가기에는 우익세력으로부터 “야당이냐 여당이냐”는 항의가 빗발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한 주요 당직자는 “당 안팎(우익세력)으로부터 엄청나게 ‘쪼임’을 당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런 한나라당에 더 큰 숙제가 생겼다. 뉴 라이트(New Right·신우파) 기치를 내건 자유주의 386세력이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수구좌파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우파가 주도하는 정치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면서 사상투쟁을 통한 정치세력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11월23일 창립한 자유주의연대는 선언문에서 “두 차례의 대선 패배로 좌파 포퓰리즘 세력에게 나라 운영의 권리를 넘겨준 한나라당은 21세기 미래 대안세력으로서의 환골탈태를 등한시한 채 기득권 유지에 전전긍긍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공격했다. 노무현 정권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든든한 동맹군일 수 있는 이들이 정작 한나라당에게도 수구우파의 딱지를 붙여버린 것이다.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이 추구해온 ‘개혁적 보수’의 명분마저 위협받게 된 국면이다. 그런 탓인지 이들의 ‘출현’을 놓고 한나라당 인사들은 앞다투어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동상이몽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23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386 출신 인사들이 참된 자유민주주의 구현 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김 대표는 “현 정권 들어 송두율 사건, 의문사위 사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이는 기도가 계속돼왔는데 이들은 믿음직한 파수꾼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재철 전략기획위원장은 “침묵하던 중도, 보수의 목소리가 결집하기 시작했다”고 반색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태도는 곧바로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기존 우파의 맹성을 촉구한 이들의 주장을 애써 축소하거나 섣불리 한나라당 지지 그룹으로 분류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당 내부에서는 자유주의연대와의 관계를 두고 ‘적극 접목’ ‘연계’ ‘흡수’ 등 다양한 층위의 기대치가 존재한다.
대표적 강경파인 홍준표 의원은 11월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뉴 라이트 운동을 주목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기존 정치권의 보수우파는 부패와 무능, 특권과 수구로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면서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 홍 의원은 “진보좌파 정권의 실정과 잘못에 대한 반사이익만 기대해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면서 이들과의 접목을 통한 ‘이념적 재무장’을 주장했다.
직접적인 연계 움직임도 있다. 관료 출신 온건세력이 중심인 푸른정치모임의 한 의원은 “당 밖 뉴 라이트 세력과 세미나나 미팅 등을 적극 주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정훈·유승민·박세환·박승환·유정복·정두언·주성영 등 한나라당 내 1957년생 닭띠 초선 의원 7명은 11월25일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중도우파의 목소리를 독자적으로 대변할 세력을 만들겠다”며 모임을 결성했다. 너도나도 뉴 라이트를 표방하고 나선 셈이다. 자칭 ‘정통우파’인 김용갑 의원마저도 “뉴 라이트의 주장이 바로 내 주장”이라고 말해 시선을 끌었다. 영남권 의원이 주축인 자유포럼의 안택수·이방호 의원은 “대안적이고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추어올린 뒤 “큰 흐름에서는 한나라당에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뉴라이트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것에 견줘, 당 지도부는 “이론은 있지만 실체가 없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영 대표 비서실장은 “시대적으로 좌우 개념이 별 의미가 없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인 박형준 의원은 “현실 정치에 이론적·사상적·정책적 불만을 가진 지식인들이 자연스럽게 담론을 형성한 것”이라며 “새로운 비전을 정립해야 하는 한나라당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박 대표의 한 측근도 “한나라당을 향한 여러 정치적 요구의 하나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소장파의 목소리는 왜 안 들리나
그러나 내심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양새다. 한 핵심 당직자는 “‘뉴 라이트’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더 라이트’(The Right)가 옷을 바꿔입은 모습일 수 있다”면서 “한나라당이 주도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자칫 개혁적 보수라는 기치를 통째로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자유주의연대 등의 흐름에 ‘뉴 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적극적으로 불을 지핀 세력이 라는 사실도 당 지도부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는 11월 초부터 뉴 라이트 기획시리즈를 내보내며 이들의 주장을 시시콜콜히 소개했다. 뒤이어 가 창립 전부터 사설과 기획기사로 이들을 조명하고 역시 이들의 움직임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런 ‘증폭 경로’를 놓고 보면 박 대표 체제의 당권파들이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당직자는 “뉴 라이트 운동이 아니라 동아·조선 운동이라는 말도 있다”면서 “박 대표로는 안 된다고 얘기해온 류근일 주필 등 우익논객들이 부쩍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일정한 ‘(지지) 퇴각’의 예고라는 분석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당내 뉴 라이트 운동의 ‘원조’ 격인 소장파 그룹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의외이다. 한 소장파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 하나의 담론으로 급속도로 세력화된 대표 사례이듯, 뉴라이트 운동도 파괴력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한나라당이 자기 빵을 반으로 뚝 잘라 (그들에게) 내줄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섣부른 편승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그는 “당 밖의 자생적인 흐름이 스스로 커나가는 것을 지켜봐줄 때”라고 덧붙였다. 이념적·조직적으로 혼재된 한나라당 구도에서 당 밖 우파세력의 사상투쟁과 정치세력화 흐름은 이래저래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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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적극적 연계론’이 나오고 있는데.
= 그분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사전에 얘기된 바 일절 없다. 자기를 중심에 놓고 누구를 견인하고 흡수하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낡은 틀 아닌가. 한나라당으로 흡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자유주의연대가 표방하는 정치 참여는 어떤 것인가.
= 자유주의 사상운동이 성공하면 정치세력, 시민운동, 학술정책 등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될 것이다. 건강한 자유주의 정당이 나올 수 있는 제반 사회적 토양을 마련하는 게 우리 운동의 목표이다. 구체적인 현실정치 참여 시점도 올 수 있다고 본다. 그 전까지는 기존 정치권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다. 이슈나 정책에 대한 목소리가 한나라당과 가까운 걸로 비칠 수 있겠지만 직접적인 연대는 아니다.
- 현안인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 개정쪽이다. 유신과 5공을 거치며 국가보안법은 두 가지 속성이 짬뽕돼 있었다. 자유 체제를 지키겠다는 반공과, 정권 유지를 위한 반공이 혼재돼 있었다. 뒤엣것은 없애고 앞엣것은 지켜야 한다. 개인적으로 찬양고무죄는 없애서 ‘사상의 자유’는 허용했으면 한다. 잠입탈출이나 간첩같이 체제를 위협하는 ‘행동의 문제’는 현행대로 막는 게 맞다.
- 정치권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나.
= 정치권의 관심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반응이 놀랍다. 그만큼 건강한 우파 세력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이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니까, 조직적으로 미약한 우리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거다. 한나라당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반성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흐름에 쉽게 편승하려 해서는 안 된다.
- 신우파 기치를 내건 관점에서 한나라당을 평가하자면.
= 중구난방이다. 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덜 가야 한다 말하기도 어렵다. 국가정체성 논쟁을 제기했지만 자신부터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본다. 우파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과 이른바 보수를 보수하는 것이 통일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따로 노는 느낌이다. 원희룡과 김용갑이 함께 있고, 혁신을 얘기하면서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중적 흐름’이 각개약진하는 양상이다.
- 궁극적으로는 한나라당과 함께할 수 있지 않나.
= 한나라당에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이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미래의 대안세력으로서 신뢰를 못 심어주고 있다. 사상운동이 힘을 얻으면 우파 자유주의 세력의 분화가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 한나라당과 가시적인 협력틀을 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