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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축구가 잃어버린 10년

등록 2002-04-03 00:00 수정 2020-05-02 04:22

축구가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브라질, 80년대부터 서서히 내리막길 걸은 이유는?

브라질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월드컵에 대한 농담을 하나 들어보자. “정말 재미있는 월드컵을 구경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대륙별 참가국 배정 숫자를 바꿔야 한다. 아시아에서 4개국이나 출전할 필요 없다. 두 나라면 충분하다. 북중미 합해서 1개국만 나오면 되고 오세아니아에는 신경쓸 이유가 전혀 없다.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 대륙에서 5개국을 선발하라. 그리고 브라질에서만 4개팀을 월드컵에 출전시켜라. 그렇다면 진짜 멋지고 신나는 월드컵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브라질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러나 브라질 축구가 세계 최강이라는 건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90년대 이후로 계속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빈민촌 형성으로 공터 잃은 아이들

전통적인 축구 강국이라면 유럽의 이탈리아·독일·영국·네덜란드,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들 수 있다. 이 구도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게 80년대부터였다. 프랑스의 98년 월드컵 우승은 어느 날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각국 축구 세력의 지각 변동이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던 결과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은 왜 경쟁력을 잃었는가. 전문가들은 먼저 브라질의 축구 스타일이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브라질 축구는 전통적으로 공격형의 축구다. 한팀에 공격수를 다섯 명까지 넣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 공격 스타일의 축구를 해서 80년대 이전까지 세 차례의 월드컵을 타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격형 축구가 유럽의 수비형 축구에 결정적으로 참패한 게 82년 월드컵이었다.

브라질의 축구팬들은 아직도 82년 월드컵을 잊지 못하고 아쉬워하며 떠올리곤 한다. 82년 대표팀은 브라질 축구 사상 불후의 명감독인 텔레 산타나가 이끌고 지코·소크라테스·팔캉 같은 신화적 존재들이 총망라된 전설의 드림팀이었다. 그런데 4강전에서 이탈리아에 2 대 3으로 지고 말았다. 전후반 90분 사이에 이탈리아는 딱 세번 공격해서 세골을 모두 넣었다. 날고 기는 브라질의 공격수들이 이탈리아의 철벽 수비를 뚫지 못하고 고전하는 가운데, 브라질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축구 실력 자체는 별볼일 없는 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시에게 당했다. 94년 월드컵을 다시 타올 수 있었던 건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던 파헤이라가 브라질 사람들의 거부감을 무릅쓰고 수비 위주로 팀을 짰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호마리우와 베베토라는 걸출한 공격수가 투톱으로 뛰었다.

브라질 축구 실력이 퇴보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브라질에서 축구 인구의 저변이 확대되지 않고 오히려 축소되어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탁월한 축구 선수는 학습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브라질에 잘 뛰는 축구 선수들이 많은 건 전국의 코흘리개 아이들이 학교만 마치면 동네 공터에 모여서 축구를 하고 놀다 보니 그 중에서 뛰어난 소질을 타고난 아이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현역 브라질 선수 중 최고로 꼽히는 호마리우나 히바우두, 호나우두 같은 선수들은 어린이 축구 클럽에서 축구를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축구하고 노는 아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브라질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80년대는 내륙 지방 사람들이 도시 주변으로 이주해서 빈민으로 정착하던 시기다. 공터에는 빈민촌과 판잣집이 자꾸 들어서서 아이들이 축구할 장소가 없어졌다. 게다가 가난한 아이들은 일찍부터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 대문에 공 차며 뛰어놀 수가 없게 됐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도둑 소굴?

대표팀을 둘러싼 체제와 조직력의 문제도 항상 지적된다. 현대 축구는 과학적이고 체계 있는 조직력이 승부를 결정한다. 대표팀 축구가 정비된 조직력을 갖추려면 축구협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브라질축구협회는 체계적인 조직이라기보다는 썩어빠진 인사들이 한 자리씩 차고 앉아 이권을 챙겨먹는, ‘도둑 소굴’에 가까운 곳이다.

축구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일상인 동시에 축제와 같은 것이다. 삶에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생활의 일부이고, 모든 이들을 엮어주는 즐거운 놀이다. 그래서 비록 그 옛날의 영광은 빛을 잃었다 할지라도 다가오는 월드컵을 기다리는 브라질 사람들의 가슴은 벅차고 흥겹게 설렌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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