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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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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에 바람난 남자

등록 2004-06-04 00:00 수정 2020-05-03 04:23

‘자기부상형 풍력발전기’ 상품화를 꿈꾸는 최종철씨… 풍력의 세계적 흐름에도 국내 기술력 취약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 1998년 8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업적인 풍력단지가 제주도 행원에 들어섰을 때 최재식(경기상고 3년)군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행원단지의 풍력발전기는 45m 높이에 날개 직경이 40m가 넘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제주 월령과 전남 무안 등지에 소형 풍력발전기가 들어섰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내 철거되는 운명을 맞이한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꼬마 에디슨’으로 불리던 최군의 호기심을 강력하게 자극했다. 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판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여기에서 싹튼 아이디어가 지구촌에 바람개비 숲을 만들어 에너지난을 극복한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아들의 상상력과 아버지의 설계

제주도 행원단지에 푹 빠진 최군은 몇 개월 뒤 ‘자기부상형 풍력발전기’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이디어의 핵심은 영구자석을 이용해 수직축형 발전기를 하나의 기둥에 몇개씩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공부에 소홀한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던 최종철(48)씨는 풍력발전기 아이디어를 들으며 뭔가 될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당시 봉제의료기기 무역업을 하던 최씨는 한때 공고를 다니며 엔지니어를 꿈꾸기도 했었다. ‘캐드’(CAD)라는 컴퓨터 보조 설계기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최씨는 숱한 나날을 밤잠을 설치며 발전기 모델을 만들었다. 최군의 상상력과 최씨의 설계가 결합되면서 색다른 풍력발전기가 구체화됐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불거진 뒤 풍력발전의 바람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1996년에 약 6천MW에 지나지 않던 풍력발전 설비 시장이 해마다 30% 이상 늘어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지자체별로 풍력단지 조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1999년 12월 최씨 부자는 아이디어를 특허 출원했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프로펠러 적용 수평축형 풍력발전기가 전부인 상황에서 자기부상형 풍력발전기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풍(11~12m/sec)이 아닌 미풍(5~6m/sec)에도 정격 발전이 이뤄지고 하나의 축에 6, 7개의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음을 도면으로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차츰 최씨는 풍력발전에 관한 신기술의 마술에 홀렸다. 급기야 사양길에 접어든 무역업을 정리하고 풍력발전에 매진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하지만 최씨 부자의 바람은 ‘희망사항’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세계적 추세가 풍력발전기의 대형화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 규모가 3MW급 이상이어야 상업적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조사가 잇따라 나오기도 했다. 더구나 국내 굴지의 업체들이 10여년 이상 풍력발전기 개발에 매달렸지만 소형 발전기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아마추어 발명가 부자의 도전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그렇게 ‘재야 연구자’로서 경력을 쌓는 가운데 지난 2002년 8월 첫 번째 특허 등록이 이뤄졌다.

최씨는 풍력발전기 개발에 나서며 위펙기술연구소를 차렸다. 우리나라를 세계 최대 풍력 국가인 독일에 버금가는 ‘바람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위펙에 새겼다. 현재 독일은 전세계 풍력발전량의 30%를 생산하고 있다. 지상에서 150m 이상의 상공까지 치솟은 1만6천개의 풍차가 독일 전역을 뒤덮었고, 멀티브라이드(Multibrid) 기술을 활용한 콘크리트 타워형 5MW 풍력발전기가 머지않아 솟아오를 예정이다. 독일 정부는 주민들이 마을에 풍력발전 설비를 갖춰 전기를 생산하면 납세 보조금을 받는 전력회사들이 시장가격의 2.5배를 내고 풍력을 구매하도록 정책적으로 재생에너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존 기술력에 맞서기는 힘겨워

그런 독일의 사정이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덴마크 베스타스사가 생산한 600kW 풍력발전기 2기로 시작한 제주 행원풍력단지는 660kW(7기), 750kW(5기) 등을 확충해 모두 10MW 발전기에서 연간 2만1900MWh의 풍력 전력을 생산해 한국전력에 판매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 전체 전력 수요의 1%(국내에서 풍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0.1%)를 차지하는 수치다. 여기에 한국남부발전이 150억원을 투자해 6MW 규모의 한경풍력단지를 조성했고, 2005년에는 34MW 규모의 단지를 추가로 조성할 예정이다. 2010년 무렵에는 제주도 전력의 10%를 바람이 감당하게 된다. 또한 660kW급 풍력발전기 4기를 대관령에 설치한 강원도도 내년까지 2MW급 발전기 49기를 새로 설치할 예정이다.

이제 가까스로 아크릴 모형을 만든 최씨 부자의 자기부상형 풍력발전기가 기존의 기술력에 맞서기는 힘겨워 보인다. 어쩌면 상용화에 성공해 기존 제품에 맞설 기회를 갖는 것조차 ‘천우신조’가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 풍력발전 산업은 규모의 경제에 따르고 있다. 풍력발전기가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량은 풍속과 함께 회전 날개의 면적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750kW급의 48m 회전 날개 지름을 2배 늘리며 면적이 4배로 늘어나 회전 날개에서 얻을 수 있는 출력도 4배가 된다. 풍력발전기를 대형화할수록 작은 것보다 저렴하게 전기를 생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국내 풍력단지도 1MW급 이상으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이처럼 풍력 선진국의 평균설치 용량이 1.4MW에 이를 정도로 대형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자기부상형 풍력발전기의 용도는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돌풍이나 낙뢰에 약한 초대형 수평축형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기 어려운 지역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국내 풍력발전기는 상업적 가능성 보여

우리나라에서도 수평축형 풍력발전기가 기후 여건에 맞지 않아 제구실을 못해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지난 1999년 (주)효성이 경북 울릉도 해안에 설치한 600kW의 풍력발전기의 경우 돌풍에 따라 출력 변화가 심해 군사시설 등지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해 20억원 안팎의 설치 비용을 그대로 날렸다. 최씨는 이런 지역에서 영구자석을 이용한 수직축형 풍력발전기가 제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펙기술연구소의 자기부상형 풍력발전기가 상공에서 회전할 수 있을까. 최씨 부자는 5년여 동안 아이디어를 가다듬었지만 아직까지 상용화를 위한 시제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 꿈은 지구촌에서 기술적으로 개발 가능한 풍력발전 잠재량인 연간 2만~5만TW(1TW=1조W) 가운데 다만 얼마라도 감당하고 싶다는 것이다. 2003년 말 현재 풍력발전기의 전체 용량은 3만9151MW이며 발전량은 70TW에 머물고 있다. 아직도 개발 가능한 풍력발전량이 무한정하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셈이다. 최씨는 작은 바람이라도 전기로 바꾸는 것을 기대한다. 선박 구동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기부상 풍력발전기 추진장치를 개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박시에는 자연풍을, 운행시에는 자연풍과 운행풍을 이용하는 상시 발전·충전 시스템이다.

현재 국내에 보급된 풍력발전기는 상업적으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제주도와 강원도 대관령 일대의 바람이 초속 6m를 웃돌아 풍력발전에 유리한 여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았듯이 바람을 팔아 돈을 챙길 만한 여건인 셈이다. 제주도 행원단지의 경우 지난해 생산한 2만MW의 전력을 전력거래소에 내놓아 한전이 사들여 13억원 수익을 올렸다. 풍력 전기의 원가는 1kW당 90원인데 정부가 가격을 보전해주기에 1kW를 팔아 17원66전의 수익을 올린다.

바람에 살고 싶은 꿈은 계속된다

앞으로 첨단 기술이 접목된 고성능 발전기가 개발된다면 정부의 지원 없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효성과 유니슨산업 같은 기업도 제주도 바람 장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니슨산업은 750kW급 풍력발전기를 시험 제작해 국산화를 선도하고 있다.

아직까지 최씨의 위펙기술연구소는 사무실 유지비용도 빠듯한 처지다. 당장 바람장사를 하려면 특허권을 팔아 상용화를 하루라도 앞당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씨는 늦깎이 엔지니어의 꿈을 이루려 한다. 자신이 개발한 풍력발전기로 중국 내륙 지역에 풍차 숲을 만들어 황사까지 막고 싶은 것이다. 지금으로선 200kW급 풍력발전기를 하나라도 제작한다면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환경 지킴이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kW 발전기 한대가 1년 동안 가동돼 연간 40만kWh의 전력을 생산하면, 연간 140t의 석유를 대체하며 450t의 이산화탄소, 200kg의 입자물질 배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고유가 사태에 따라 최씨의 마음도 바쁘다. 아크릴 풍력발전기 모델을 찾는 기업들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정부가 올해를 ‘신재생에너지 원년’으로 선언하고 대체에너지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적극 나서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1년까지 대체에너지 개발 보급에 10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씨가 이 지원 예산의 수혜자가 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런데도 최씨 부자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대체에너지 개발 기업들이 효율적인 장비를 개발하는 데 나름대로 보탬이 됐다고 믿는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수십kW짜리 소형 풍력발전기라도 개발해 자신의 가정 전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바람에 살고 싶은 최씨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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