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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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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매’가 나가신다

등록 2004-02-12 00:00 수정 2020-05-02 04:23

여성의 재앙 진원지로 떠오른 생리대 바꾸기… 작은 권리 챙기며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도전

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게 뭐예요?” “생리대요.” “어, 무슨 생리대가 이래요?”
여성주의 모임 ‘언니네’의 후원행사가 열린 음식점 한쪽, 탁자 위에 펼쳐진 빨강·노랑·보라 선명한 색깔에 꽃 무늬도 화려한 헝겊 생리대들에 궁금증이 쏠렸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 알록달록한 것들이 어떻게 생리대가 될 수 있는지, 도대체 왜 ‘번거롭게’ 이것들을 만들었는지, 1회용 생리대의 그 엄청난 ‘편리함’에 비해 불편하지는 않은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이 특별한 생리대를 만든 이들은 이름하여 ‘피자매연대’
(http://bloodsisters.gg.gg). 손으로 한땀한땀 바느질해 만든 대안생리대(대안월경대)를 통해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1회용 생리대에 숨어 있는 문제들을 알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모임이다. 2000년께부터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생리대의 새로운 대안을 찾아오던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워크숍을 열어 대안생리대 만드는 법을 알리고, 함께 만든 생리대들을 판매해 이주노동자들의 농성 등 다양한 사회운동도 지원한다.

불티나는 1회용 제품의 엄청난 해악

그깟 생리대나 탐폰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생리대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은 일생의 8분의 1 동안 약 500번의 생리를 하며 여성 1명이 평생 1만5천여개의 1회용 생리대를 쓰고, 한국에서만도 한해 2500억원 이상(한국여성민우회 추정)의 생리대가 팔려나간다. 여성들이 ‘숙명처럼’ 1회용 생리대를 쓰지만 그것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의외로 적다. 정확한 원료와 제조법, 연구결과 등은 대기업들의 ‘제조비밀’이기 때문이다.

1회용 생리대의 ‘원조’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간호사들이 부족한 솜 대신 킴벌리 클라크사에서 의료용으로 내놓은 셀루코튼(Cellucotton)을 흡수지로 싸서 만든 임시 생리대이다. 킴벌리 클라크사는 1920년 이를 이용해 ‘코텍스’라는 제품명의 일회용 생리대를 내놓았다. 한국에도 1970년 무렵 1회용 생리대가 들어왔고, 뒤이어 선보인 탐폰과 함께 1회용 생리대는 여성의 활동을 해방시킨 자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를 위협하는 ‘반론’은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피자매’들은 1회용 생리대와 탐폰이 ‘여성의 건강을 망치는 독’이자 ‘환경을 위협하는 무한한 쓰레기’이며 지금까지 여성들이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월경은 더럽고 창피하며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압력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피자매연대를 처음 발의한 매닉(30·가명)은 “펄프와 면화를 이렇게 하얀 생리대와 탐폰으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염소 표백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대기업의 광고는 그 표백된 하얀색을 여성의 순결, 깨끗함과 연결하면서 위험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또 탐폰의 재료인 면화를 대량 재배하는 데 쓰이는 살충제도 가장 흡수력이 강한 점막인 질을 통해 고스란히 흡수된다”고 경고한다.

“깨끗해요” “자신 있게 그날을…” 등 생리대의 청결함과 편리함을 강조하는 텔레비전 광고 뒤에서, 최근의 연구들은 20∼30년 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여성 생식기 질병의 원인 중 하나가 1회용 생리대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2002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9%인 429명이 “생리대 사용으로 피부질환, 가려움증 등의 후유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수영이나 운동, 목욕 등을 위해 최근 사용이 늘고 있는 탐폰은 박테리아의 독소가 혈관으로 흡수돼 장기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독성쇼크증후군(TSS)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초 한해 50명 이상의 여성이 독성쇼크증후군으로 사망하고 1천여명이 질병에 걸려 사회적 충격을 주었고, 1997년과 99년에는 탐폰의 안전성에 대한 법안이 미 의회에 상정되기도 했다.

대안생리대 만드는 소박한 바느질

피자매의 매닉은 또 “수많은 여성들이 매달 그 썩지 않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환경에 재앙이 되며, 대량생산되는 생리대를 통해 큰 이윤을 얻는 남성 중심의 경제 체제가 여성의 몸을 ‘관리’하고 있다. 제3세계 가난한 농민들이 생산한 면화를 헐값으로 들여와 고가의 공산품으로 가공하는 불공정한 세계교역 체제의 문제도 숨어 있다. 생리대를 통해 세계의 많은 문제들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1회용 생리대를 넘어 대안생리대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 장애물들을 하나씩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피자매들의 생각이다.

이들의 ‘운동’은 소박한 바느질이다. 외국 사이트들을 뒤지며 대안생리대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고, 거기에 자신들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더해 방수천을 덧붙이거나 디자인과 바느질 방법을 바꿔 사용하기 좋게 업그레이드했다. 지금까지 몇몇 환경단체들에서 선보인, 기저귀처럼 두툼한 옥양목 생리대와 달리 피자매들이 만든 생리대는 얇고 똑딱단추를 이용해 날개까지 달아 실용적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깔은 얼룩이 덜 생기게 하면서, 여성의 순결을 유달리 강요하는 흰 생리대의 고정관념을 깨는 의미도 있다. 매닉은 “물론 대안생리대가 1회용 생리대와 똑같이 편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안생리대를 쓰면서 경쟁사회에서 강요당하는 편리함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버릴 수 없는 다른 가치들을 생각하게 된다. 편리함에 대한 강박을 버리면 대안생리대는 더없이 안전하고 편안하며 별 불편함이 없다”고 자랑한다.

지금까지 4번의 워크숍에 참여한 80여명은 10대 소녀부터 회사원, 환경·평화 운동에 관심 많은 중년 여성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자신들이 만든 생리대를 모아 사이트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수익으로 기금을 모아 사회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이주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투쟁과 밥’(http://bab.gg.gg)을 후원하고 있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생리대를 매개로 자칫 엘리트주의적인 개념으로 흐를 수 있는 운동에서 벗어나, 몸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생활운동을 하겠다는 것이 피자매들의 구상이다.

이들은 또한 새로운 ‘이중생활’을 실험 중이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낮에는 세무서에서 일하고 밤에는 자신이 원하는 소설을 쓴 것처럼, 이들 역시 낮에는 학생이나 직장인 등으로 살고 밤이나 주말에는 생리대를 만들거나 농성장 또는 거리로 나선다. 1980~90년대 대학 시절 ‘진보운동’을 열심히 했던 많은 이들이 취직과 결혼이라는 현실의 관문을 나서면 ‘과거’와는 완전히 결별하는 길을 택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잡스족’으로 나서는 지금, 이들은 이중생활을 통해 ‘현실’과 ‘이상’을 둘 다 포기하지 않는 또 다른 ‘투잡스족’으로 살고 있다.

‘투잡스족’으로 사는 일상의 운동가들

매닉 역시 대학 시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남들처럼 잘 살겠다는 생각을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사회이론을 공부할수록 구체적으로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회운동에 대한 목마름이 커졌다. 그 시절 친구들과 피켓을 만들어 맥도널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자본주의의 첨병인 화려한 압구정동 거리”에서 ‘자본주의 반대’라고 쓴 거대한 깃발을 들고 행진하기도 했다는 그는 ‘번듯한 직장’인 출판사에 다니는 지금도 대안생리대 운동 외에 반전평화·환경·여성·이주노동자 운동에도 열심이다. “막 끓어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운동이 아니라 가늘고 길게 꾸준히 실천하며 살고 싶다. 한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지만 사람들이 삶에서 조금씩 깨닫는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충분히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앞에 나서는 활동뿐 아니라 소수자들을 돕는 일상의 작은 운동들을 꾸준히 하는 것도 소중하다.”

이들은 정말 알록달록한 이 작은 생리대들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들처럼 ‘카프카스러운’ 일상의 운동가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황당무계한 꿈은 아니리라.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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