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할망은 열세 살에 바닷속으로 처음 들었다. “바라만 보아도 먹먹한 ‘수지픈 바당’(‘깊은 바다’의 제주 사투리)이었다. 삶은 늘 지치고 고됐다. 섬을 떠날 기회가 종종 있었지만 떠나지 못했고, 물질을 그만둘 수 있었는데 멈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물속을 오가며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바다를 떠나기 전 힘차게 첫 물질을 시작했던 ‘할망바다’로 돌아왔다.
나이 든 해녀들이 물질하는 얕은 바다를 할망바다라고 한다. 할망바다에는 아무리 해산물이 넘쳐나도 상군(해녀는 해산물 채취 역량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뉜다)이 찾지 않는다. 결국 세월이 흘러 모든 해녀가 할망바다의 주인이 되리라는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해녀는 그 자리에 잠시 머무는 게 전부다. 바다가 사나우면 밭일을 하고, 때가 되면 다시 또 바다를 빌린다. 물이 들고 나는 조화처럼 그들의 삶도 그렇게 흘러오고 흘러갔다. 바다와 어울리거나 때론 맞서기도 하는 강직함, 또 바다에 묻어둔 인내와 용기는 섬을 감싸 안는 힘이었다. 그 거센 힘이 나를 바다로 이끌었다.
2012년 제주 가파도에 정착할 때만 해도 나는 사진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녀가 되었다. 난 항상 그들 속으로 제일 마지막에 걸어 들어간다. 해녀지만 여전히 사진가이기에 그들이 바다에 드는 모습을 하나하나 가만히 지켜본다. 섬의 생태환경과 역사 속 지독했던 시대 좌표 안에서 온몸으로 살아낸 삶과 노동의 무게를 느낀다. 바다를 중심으로 질서와 배려를 지켜온 해녀 공동체는 공존을 통해 섬세하고 아름답고 강렬하게 이어져왔다. 하지만 살아남은 해녀와 그 문화는, 바로 인지할 수 없는 바다의 수많은 오염과 위험에 노출됐다. 제주 해녀와 문화를 세계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그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또 한편에선 ‘인류 문명을 위한’이란 명분 아래 끝없는 개발과 파괴가 거듭된다.
미래나 과거가 아닌 바로 오늘, 바다의 풍요로움은 위태로운 상태다. 2년 전부터 이상 수온으로 해녀 바당밭의 순환이 갑작스레 변하고 있다. 모자반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톳은 상품 가치를 잃었다. 4월이면 채취할 수 있던 미역은 5~6월에야 발견되지만 순식간에 자라났다 녹아버린다. 미역과 모자반을 먹고 자라는 성게는 생장이 더디고 알을 품지 않는다.
세대를 이어 물질을 해온 해녀할망들도 처음 겪는 일이라 아무리 유연해지려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다. 절박한 생계 때문에 앞만 보며 내달렸던 해녀할망들은 빈 바다를 염려하며 과거 바다의 풍요로움을 떠올린다. 그리고 바다를 떠날 날이 머지않았음을 이야기한다. 풍요가 사라지고 많은 것이 변하는 오늘, 할망의 바다에는 불안이 자라고 있다.
가파도=사진·글 유용예 사진가
*유용예 사진가는 2012년 제주 가파도에 정착한 뒤, 막내 해녀가 돼 물질한다. 또 해녀와 그 문화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한다. 2015년부터 가파도 해녀를 기록한 사진전과 워크숍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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