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라는 매체는 기괴한 운명을 타고났다.
어떤 경우 행복하다. 많은 경우 잔인하다. 사진은, 직접 본 뒤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내 사진’은 나와 사진기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반박하기 힘든 증언이다. 하나 그것을 ‘내 사진’이라고만 불러도 좋을까. 사진은 찍는 이보다, 찍힌 이에 더 의존한다. 고로 사진은 ‘내 사진’이기 전에 ‘그때, 그곳의’ 사진이다.
세월호 이후, 우리의 삶과 사회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고 많은 이들이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표현이, 우리의 발언이, 우리의 예술이 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전면적으로 묻는다고도 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던가. 이것은 금지의 문장이 아니다. 비난의 화살도 아니다. 질문일 뿐이다. 이러한 참사 앞에 예술과 표현이 대체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
많은 글과 그림과 노래와 몸짓이 세월호 참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거짓을 규탄하고, 우리의 존재를 되물었다. 많은 글과 그림과 노래와 몸짓은 ‘현장’을, ‘그때 그곳’을 가지 않아도 쓰고 그리고 노래하고 몸짓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은, 기괴한 운명을 타고났다. 사진쟁이는 ‘그때 그곳’에 가지 않고는 사진을 찍을 재간이 없다. 불가피하게 현장의 목격자가 된다. 세월호 참사는 사진쟁이에게 무엇을 묻는가. 목격자에게 따르는 진술의 책무를 무겁게 묻고 있다. 사진으로 가능한 진술이란 무엇이며, 불가능한 진술이란 또 무엇일까.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경기도 안산 단원고와 합동분향소에서, 주인 잃은 공부방에서, 국회의사당에서, 청와대 앞에서, 서울 시청광장과 광화문광장에서, 숱한 거리의 ‘현장’에서 세월호를 사진기에 담았던 사진쟁이들이 각자의 사진을 모았다. 이 참사의 기록이 우리 사회의 공적 자산이어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한 53명의 사진쟁이들이 1천여 장의 사진을 모은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https://www.facebook.com/sewolsazine’을 통해 업로드 중이며, 누구나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진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묻고, 책임을 규명하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공익적인 일에 널리 쓰이길 바란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워 벌어진 참사 앞에서, 카피라이트(Copyright) 대신 카피왓(CopyWhat?)을 묻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이 어쩌면 세월호를 왜곡하는 사진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섣부른 기억 행위가 망각을 부채질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이 사진들은 불쾌하고 불편하리라. 그러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304개의 우주가 진 이 마당에.
사진·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https://www.facebook.com/sewols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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