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 월드컵 한국-벨기에의 마지막 경기가 벌어진 6월27일 새벽 5시.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앞 한쪽 대형 모니터에서 침몰사고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쪽 모니터에선 한국팀의 경기가 중계되기 시작했다. 새벽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 몇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한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에 온 나라가 흥분하고 떠들썩하지만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딴 나라의 이야기다. 한국이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도 아쉬움을 나타내는 탄식이 들리지 않는다. 그저 커다란 모니터만 하릴없이 번쩍이는 화면과 흥분된 목소리로 월드컵 경기 장면을 내뿜어대고 있다. 나라 전체가 월드컵으로 들떠 있지만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는 적막만이 흐른다. 잠시 웃음이 나도 쓴웃음뿐이다. 깊고 차가운 바닷속의 가족들을 기다리다 지친 가족들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6월24일 안산 단원고 윤민지 학생의 주검이 발견돼 세월호 침몰사고의 사망자는 293명, 실종자는 11명이 됐다(6월27일 현재).
실종자 가족들은 주검이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윤민지 학생이 발견된 날에는 체구가 비슷하고 단짝이던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가족이 급한 마음에 팽목항에 달려가 주검을 확인했다. 주검을 본 가족은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는 평소 앓고 있던 희귀병인 신경섬유종이 충격으로 더 악화됐다. 다윤이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어머니는 실신을 했다. 헬기를 이용해 바로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어머니를 따라 같이 서울로 올라간 아버지 허흥환(50)씨는 누구보다도 예쁜 딸을 찾기 위해 아픈 아내를 병원에 두고 홀로 진도로 내려왔다.
식구 네 명이 제주도로 이사가다 사고를 당해 권지연(5)양만 살아남은 실종자 권재근(51)씨의 형 오복(59)씨는 사고 첫쨋날부터 체육관 한 귀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생과 조카 혁규(6)군은 아직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있다. 4월23일 새벽에 찾은 권씨의 아내 한윤지(베트남 이민 여성)씨는 팽목항 시신확인소 냉동고에 두 달 넘게 보관되고 있다. 오복씨는 동생과 조카를 찾으면 같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제수씨의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단지 잊혀지는 것이 싫어요”라며 오복씨는 현재의 심정을 말했다. 70일이 넘는 체육관 생활로 감기와 복통을 달고 사는 오복씨의 잠자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약과 파스가 굴러다닌다.
세월호는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들이 점점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는 실종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권오복씨는 “아직은 세월호를 잊을 때가 아니다. 여기 실종자 가족들은 백골이라도 찾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검 수습을 포기하라는 말을 하지 마라. 나는 동생과 조카의 주검을 찾을 때까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진도=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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