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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상생의 염원 품고

4대 종단과 민족종교 성지 아우른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 전주~김제 잇는 600리 황톳길에 한옥교회·고찰 등 볼거리 풍성
등록 2013-05-05 16:14 수정 2020-05-03 04:27
4개 종단(기독교·불교·원불교·천주교) 성직자들과 합창 단원들이 4월20일 오전 순례음악회가 열린 전북 김제 금산사 유스호스텔에서 종교 간 화합과 상생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풍선을 하늘로 날리고 있다.

4개 종단(기독교·불교·원불교·천주교) 성직자들과 합창 단원들이 4월20일 오전 순례음악회가 열린 전북 김제 금산사 유스호스텔에서 종교 간 화합과 상생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풍선을 하늘로 날리고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평저수지 산책길에 순례길을 상징하는 달팽이가 표시돼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평저수지 산책길에 순례길을 상징하는 달팽이가 표시돼 있다.

1908년 외국인 선교사 데이트가 한옥으로 지은 금산교회.

1908년 외국인 선교사 데이트가 한옥으로 지은 금산교회.

전주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경기전의 한옥 처마선과 이국적인 전동성당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동성당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주 풍남문 밖에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지어졌다.

전주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경기전의 한옥 처마선과 이국적인 전동성당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동성당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주 풍남문 밖에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지어졌다.

시조 강증산의 유골을 간직한 증산법종교 본부.

시조 강증산의 유골을 간직한 증산법종교 본부.

순례길을 걷다보면 낡은 정미소, 창고, 폐역사 등 근현대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 회평마을의 금산정미소.

순례길을 걷다보면 낡은 정미소, 창고, 폐역사 등 근현대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 회평마을의 금산정미소.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에서 신자들이 절을 하고 있다.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에서 신자들이 절을 하고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악산 금산사 가는 길. 4월 말이 다 돼가는데 아침부터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린다. 모악산 정상에 쌓인 눈과 들판에 핀 개나리·벚꽃·복숭아꽃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상기온으로 날씨는 싸늘했지만 자연이 만들어준 선물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이날 금산사에서는 4개 종단(기독교·불교·원불교·천주교)의 합창단원들이 만나 ‘순례음악회’를 열었다. 각기 다른 종교의 합창단원들이 금산사를 찾은 순례자들에게 음악을 선물했다. 한 장소에서 듣는 4개 종단의 음악이 모악산 주변 풍경과 다른 듯하면서 조화를 이뤘다.

2010년 종교 간 상생과 화합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완주∼익산∼김제를 잇는 240km의 ‘아름다운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4개 시·군에는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민족종교(대순진리회·증산법종교·천도교)의 성지가 산재해 있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이 성지들을 연결해 9코스로 이뤄진 순례길을 만들었다.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긴 것이다. 2012년에는 세계순례대회가 열려 6만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순례길은 하루 10시간 남짓 걸으면 9일 동안 코스를 다 돌 수 있다. 코스를 전부 걷기에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금산사에서 시작하는 7코스를 돌면 된다. 7코스에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들의 성지가 자리잡고 있다. 백제 법왕(法王) 원년인 599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금산사를 나와 20여 분을 걸으면 1908년 데이트 선교사가 지은 금산교회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한옥으로 만든 교회다. 남녀가 따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ㄱ’ 형태로 지어졌다. 금산교회를 나와 조금 걷다보니 금평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 주변에는 증산교의 시조인 강증산의 유골을 모신 증산법종교 본부와 대순진리회의 성지가 자리잡고 있다.

김제 원평에는 원불교 원평교당, 천주교 원평성당, 기독교 원평교회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원평교당은 순례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한다. 원평천을 따라 쭉 걷다보면 7코스의 마지막 장소 수류성당이 나타난다. 성당이 있는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는 100년 이상 된 천주교 교우촌이다. 원래 지어진 성당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진 뒤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날라 복원했다.

7코스 이외에도 전주 한옥마을, 전동성당을 중심으로 연결된 1코스와 9코스를 걸으면 전주시내 관광을 하면서 성지들을 순례할 수 있다. 완주군과 익산을 연결하는 4·5코스에서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평야길도 만난다. 만경강과 호남평야가 어머니와 같은 넉넉함을 선사한다.

순례길이 생긴 뒤부터 천주교의 신부가 석가탄신일에 절의 신도들에게 강연을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주지 스님이 성당을 방문해 법문을 한다. 종교 간의 왕래가 깊어지고 있다. 세계순례대회 조직위원회 신혜경 기획팀장은 “전라북도에 종교문화 유산이 풍부하고 역사적인 깊이도 있다. 순례길이 생기면서 서로 마음을 보듬고 다른 종교를 배려하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꽃이 피는 봄이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울고 떠나 웃으며 돌아오는 길이다’라고 한다. 울고 웃으면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걸으며 나를 찾는 것은 어떨까?

김제=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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