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가니 마을의 당집이 위치한 곳이다. 마을 남정네들이 새벽에 갓 잡은 소를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비릿한 냄새는 해체한 소에서 나온 피 냄새였다. 쇠고기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굽고, 솥단지에서는 갈비탕이 끓고 있었다. 충남 태안 안면도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섬 황도에서는 아침부터 풍어제 준비로 분주했다.
황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에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황도붕기풍어제(충남 무형문화재 제12호)를 연다. 풍어제는 소를 잡고 당집에서 피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피고사를 마친 뒤 제주(이장)를 선두로 제사에 바칠 제물을 들고 마을을 도는 세경굿을 한다. 각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집안의 안녕을 기원해준다.
세경굿을 마치고 대굿(대동굿)을 펼칠 당집으로 향한다. 제주와 제물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당집에 들어서지만 오색기를 든 사람들은 당집을 100여m 앞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오색기를 든 젊은 남자들이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한다. 당집에서 출발하라는 소리가 들리자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빨리 온 순서대로 서둘러서 당집 앞에 기를 세운다. 각 배를 상징하는 오색기를 들고 달리기 경쟁을 하는 이유는 빨리 온 순서대로 풍어를 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의 얼굴 표정은 이미 풍어를 한 것 같았다.
마을 사람 모두가 당집에 들어서자 대굿이 시작됐다. 무당은 연신 굿을 펼치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대굿은 오후, 저녁, 다음날 새벽까지 3번에 걸쳐 진행된다. 대굿 중간중간에는 마을 사람들이 풍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풍어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는 쇠고기 꼬치와 술, 떡이 제공됐다. 모두가 하나 되는 거대한 축제의 마당이다.
자정에 이르자 무당의 굿은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신이 내렸는지 무당은 당집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씩 잡고 운세를 점친다. 사람들은 무당에게 가족의 안녕과 복을 빌었다. 무당은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계속 뱉어냈다. 선주들과 마을 사람들의 간절함도 무당의 굿이 신명날수록 더해졌다. 새벽까지 이어진 굿은 새해에 출항하는 어선에 당제를 지낸 제물을 나눠 담고 신을 모시는 ‘어선지숙’으로 막을 내렸다.
태안=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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