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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소리를 담는 사람

토종 오동나무로 거문고, 가야금을 40여년 만들어온 고흥곤 악기장…자연의 원리대로 자연의 소리를 담는 곰삭은 장인의 집념
등록 2011-12-06 15:30 수정 2020-05-03 04:26
고흥곤 악기장이 서울 서초동의 국악연구원 사무실에서 완성된 가야금의 현을 점검하고 있다.

고흥곤 악기장이 서울 서초동의 국악연구원 사무실에서 완성된 가야금의 현을 점검하고 있다.

“거문고는 선비의 기질이 있어요. 남성적이죠. 선이 굵고 묵직해요. 가야금은 여성적입니다. 오밀조밀한 매력이 예쁩니다.” 서울 서초동에 마련된 그의 국악연구원에서 고흥곤(59)씨가 각각의 국악기에 대한 특징을 설명했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이제 막 완성된 가야금에 명주실을 앉히던 중이다. 중요무형문화재 42호인 고흥곤씨는 우리의 전통악기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악기장이다. 그가 만든 악기는 국내 유명 국악인들이 인정하는 명품으로 손꼽힌다.
 고씨는 전북 전주가 고향이다. 악기장 고 김광주(1906~84) 선생의 이웃에 살았다. 자연스럽게 그 집에 드나들었다. 남은 재료로 이것저것 만들던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스승의 권유로 19살에 본격적으로 국악기 제작에 입문했다.
 “스승님이 워낙 유명하신지라 당시엔 가야금 하나 만들어주면 쌀 스무 가마를 주었어요. 꽤 비쌌죠. 그런데 주문량 자체가 적었어요. 전국에서 1년에 100여 대나 제작될까 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일이 없을 땐 소형 가구 등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스승과 제자는 우리의 소리를 연구하고 국악기를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40년의 공도 있었지만, 그보다 자연을 존중한 고집스러운 제작 방식의 공이 더 크다. 지금도 고씨는 5~10년 동안 자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곰삭은 토종 오동나무로만 악기를 제작한다. 경기 하남에 있는 그의 공방 뒤편 야산에는 각각의 세월 동안 익어온 5천여 개의 오동나무가 널어져 있다. 썩거나 갈라져 버려지는 비율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고씨는 여전히 인공적인 건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우리 악기는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는 세계적으로 드문 악기입니다. 만드는 것도 자연의 원리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7년 이상 곰삭은 오동나무라야 깊고 고운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습니다. 그 나무로 만들어야 몸체의 틀어짐도 막을 수 있어요.”
 이제는 명장의 대열에 오른 고씨는 여전히 제작 일선에서 일을 한다. 민족의 감정과 정서를 담아내는 최고의 소리를 만드는 일이 아직도 진행 중인 그의 꿈이기 때문이란다.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공방 뒤 야산에서 5년 이상 곰삭은 오동나무를 고흥곤 악기장의 조교인 김영렬씨가 살펴보고 있다.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공방 뒤 야산에서 5년 이상 곰삭은 오동나무를 고흥곤 악기장의 조교인 김영렬씨가 살펴보고 있다.

명주실로 엮은 가야금 현.

명주실로 엮은 가야금 현.

가야금의 위 몸체인 오동나무와 아래 바닥인 밤나무를 접착한 뒤 끈으로 묶어 고정하고 있다.

가야금의 위 몸체인 오동나무와 아래 바닥인 밤나무를 접착한 뒤 끈으로 묶어 고정하고 있다.

해금의 몸통으로 쓰는 대나무는 뿌리의 바로 위 첫 마디를 5년 이상 자연 건조해 사용한다.

해금의 몸통으로 쓰는 대나무는 뿌리의 바로 위 첫 마디를 5년 이상 자연 건조해 사용한다.

해금에 옻칠을 하고 있다.

해금에 옻칠을 하고 있다.

고흥곤 악기장의 뒤편으로 현악기에 쓰는 명주실이 보인다.

고흥곤 악기장의 뒤편으로 현악기에 쓰는 명주실이 보인다.

농현으로 가야금의 소리를 점검한다.

농현으로 가야금의 소리를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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