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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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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는 상처, 새로운 희망

구제역 사태 뒤 1년, 생명 살리려 현장 누비는 수의사들…
살처분의 기억과 농가와의 반목 등 상흔 뒤로 축사를 새로 차지한 소와 돼지들
등록 2011-11-23 17:19 수정 2020-05-03 04:26
수의사 홍수일씨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의 한 농가에서 채혈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수의사 홍수일씨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의 한 농가에서 채혈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 만 1년이 돼가고 있다. 당시 최일선에서 구제역 확산 방지와 살처분 임무를 맡았던 수의사들이 다시 가축을 살리려고 현장을 누비고 있다. 강원도 내 수의사들은 56명. 지난해 그들이 살처분한 소와 돼지는 42만 두에 이른다. 가축을 보살펴야 할 수의사로서 생명을 죽여야만 했던 그들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기가 겁이 난다. 강원도가축위생시험소 김성태(41)씨는 “보상을 위해 살처분하는 소의 임신 감정을 하려고 개복했을 때 막달이 된 소의 따스한 몸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털어놨다. 철원군청 축산산림과 이한진(41)씨는 “안락사용 주사가 듣지 않으면 돼지의 경우 타격으로 기절시킨다. 돼지가 가득 들어 있는 트럭에 올라가면 온몸에 피범벅이 돼서 내려온다”고 말했다.
몇 날 며칠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예민해져 힘들었다고 한다. 수의사들은 “생명을 많이 죽였으니 아마 지옥에 갈 거야”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한진씨는 “가장 가까워야 할 농가들과 사이도 나빠졌다. 어느새 축산농가에 우리는 가해자가 되었고 농가는 피해자가 됐다. 사실은 우리도 피해자인데…”라며 씁쓸해했다.
구제역 파동 이후 살아남은 소값은 반으로 떨어지고 사료 값은 2배 이상 올랐다. 죽은 소들에 대한 보상도 미흡해 살처분한 농가나 그렇지 않은 농가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구제역으로 텅 비었던 축사에는 새 소와 돼지들이 채워지고 있다. 상처가 아무는 자리 위로 새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풍비박산이 난 농가들과 숨가쁘게 살아가는 수의사들의 마음에도 안식이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철원=사진·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농가에 들어가기 전에 방역복을 입고 있다.

농가에 들어가기 전에 방역복을 입고 있다.

가축에게서 채취한 피를 검사하려고 분리하고 있다.

가축에게서 채취한 피를 검사하려고 분리하고 있다.

가축이 새로 들어온 농가의 뒤편에 살처분한 소들의 무덤이 있다.

가축이 새로 들어온 농가의 뒤편에 살처분한 소들의 무덤이 있다.

수의사들이 축사에서 소들을 검사하고 있다.

수의사들이 축사에서 소들을 검사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돼지 한 마리가 텅 빈 축사를 외로이 지키고 있다.

새로 들어온 돼지 한 마리가 텅 빈 축사를 외로이 지키고 있다.

수의사가 소에게서 채혈을 하고 있다.

수의사가 소에게서 채혈을 하고 있다.

수의사가 가축 농가의 백신 접종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수의사가 가축 농가의 백신 접종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수의사가 가축을 진료하다 다친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수의사가 가축을 진료하다 다친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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