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이른 여름.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되려면 한 달 가까이 남았지만 서해 바다에는 피서객들이 제법 있었다. 아직 무더위가 오지 않아서인지 낮과 밤, 물과 땅의 온도차 때문에 생긴 안개가 바다를 휘감는다. 손잡고 거닐던 연인이 모래사장 위에 둘의 이름을 새겨넣자 이를 시샘하는 파도가 달려들어 지워버린다. 바다로 뛰어든 친구가 뿌리는 물을 옷 입은 채 맞는 친구의 웃음소리가 허공으로 부서진다.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회식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 옆으로 먹을 걸 달라고 조르는 갈매기들이 줄을 선다. 모래로 집을 짓는 게 신기한 어린이는 손등 위로 쌓아놓은 모래를 연방 토닥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엄마·아빠의 손을 꼭 잡은 딸아이는 발가락을 파도에 살포시 밀어넣는다. 어쩌다 들어오는 손님이 반가운지 상인들도 인심이 후하다.
“시끄럽지 않죠. 너무 더워서 짜증나지 않죠. 북적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지치지도 않죠. 가격 싸죠. 주차장 여유 있죠. 동네 인심도 좋죠….” 이곳에서 생선횟집을 6년째 경영하는 문홍호(58)씨는 이른 여름 바닷가를 찾으면 좋은 점이 뭐냐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
어느덧 안개는 더욱더 짙어졌다. 가까이 있는 섬과 등대가 안개에 휘감겨 있다. 시라도 한 수 읊고 싶을 정도로 제법 운치 있다. 한여름 성수기에는 보기 힘든 여유로운 바다, 이른 여름을 서둘러 온 피서객들의 몫이었다.
태안=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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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