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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희망 지휘하는 ‘강마에’

교향악단 대신 화순초등학교 관악반 선택한 서광렬씨… “아이들 눈빛에 이끌리다 보니 벌써 13년”
등록 2009-11-12 16:35 수정 2020-05-03 04:25

전남 화순초등학교 관악반은 올해로 13년째다. 전국대회에서 3차례나 최우수상을 받았고 150차례가 넘는 큰 공연을 한 경력이 시골 학교라고 얕보기엔 만만치 않은 내공이 있음을 말해준다. 1997년 시골 아이들에게도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당시 윤병주 교장의 의지로 교육청에서 예산도 받고 악기도 구입해 관악반이 꾸려졌다.

트롬본을 부는 화순초등학교 관악반 아이들 틈에 앉아 직접 박자를 지도하는 서광렬씨.

트롬본을 부는 화순초등학교 관악반 아이들 틈에 앉아 직접 박자를 지도하는 서광렬씨.

화순초등학교 관악반은 5·6학년만 60여 명일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다.

화순초등학교 관악반은 5·6학년만 60여 명일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다.

정작 문제는 이 시골까지 들어와 가르칠 강사가 없었다는 것. 그때 이곳을 찾은 사람이 바로 서광렬(42)씨다. 당시 30대 초반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립음악원에서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막 돌아와 대도시 시립교향악단 입단을 앞두던 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의 간절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연고도 없는 이곳 화순에 내려왔다. 2주 동안만 맡아줄 요량으로 시작한 것인데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이유가 뭔지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대답을 한다.

“글쎄요. 뭔가 멋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게 없네요. 그냥 아이들의 고사리손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았나 봐요. 시골 아이들은 이런 거 접하지 못하잖아요. 처음에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악기들을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그 눈빛에 이끌린 건지….”

화순중학교 관악반에서 트럼펫의 음을 지적하는 서광렬씨.

화순중학교 관악반에서 트럼펫의 음을 지적하는 서광렬씨.

트롬본을 부는 학생의 표정이 진지하다.

트롬본을 부는 학생의 표정이 진지하다.

관악반 활동은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관악반 활동은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혼자 모든 악기를 가르쳐야 하는 시골 학교의 열악함 때문에 호른이 전공인 서씨는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틈틈이 다른 악기를 다루는 법도 배워야 했다. 또 학교를 졸업하고 관악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화순중학교에도 관악반을 유치해 직접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면 절대로 나쁜 길로 가지 않는다’는 게 서씨의 철학이다. 그래서인지 관악반 아이들은 연주면 연주, 공부면 공부, 봉사면 봉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명성에 걸맞게 학부모들도 적극적이다. 졸업 뒤 유학 간 선배들이 방학 때 찾아와 아이들에게 음악을 지도할 때면 가슴 뿌듯한 보람도 느낀다.

늦가을 한적한 시골 학교 복도 위로 드보르자크의 이 울려퍼진다. 튜바의 장엄한 도입부를 트럼펫의 경쾌함이 뚫고 나간다. 아이들의 볼이 움씰거린다. 서씨의 지휘봉이 가을 햇살을 가른다. 활기찬 음악을 따라 아이들의 꿈도 커진다.

트롬본에 비친 관악반 아이들.

트롬본에 비친 관악반 아이들.

관악반 교실 바닥을 열심히 닦는 아이.

관악반 교실 바닥을 열심히 닦는 아이.

화순=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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