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초등학교 관악반은 올해로 13년째다. 전국대회에서 3차례나 최우수상을 받았고 150차례가 넘는 큰 공연을 한 경력이 시골 학교라고 얕보기엔 만만치 않은 내공이 있음을 말해준다. 1997년 시골 아이들에게도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당시 윤병주 교장의 의지로 교육청에서 예산도 받고 악기도 구입해 관악반이 꾸려졌다.
정작 문제는 이 시골까지 들어와 가르칠 강사가 없었다는 것. 그때 이곳을 찾은 사람이 바로 서광렬(42)씨다. 당시 30대 초반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립음악원에서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막 돌아와 대도시 시립교향악단 입단을 앞두던 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의 간절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연고도 없는 이곳 화순에 내려왔다. 2주 동안만 맡아줄 요량으로 시작한 것인데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이유가 뭔지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대답을 한다.
“글쎄요. 뭔가 멋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게 없네요. 그냥 아이들의 고사리손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았나 봐요. 시골 아이들은 이런 거 접하지 못하잖아요. 처음에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악기들을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그 눈빛에 이끌린 건지….”
혼자 모든 악기를 가르쳐야 하는 시골 학교의 열악함 때문에 호른이 전공인 서씨는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틈틈이 다른 악기를 다루는 법도 배워야 했다. 또 학교를 졸업하고 관악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화순중학교에도 관악반을 유치해 직접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면 절대로 나쁜 길로 가지 않는다’는 게 서씨의 철학이다. 그래서인지 관악반 아이들은 연주면 연주, 공부면 공부, 봉사면 봉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명성에 걸맞게 학부모들도 적극적이다. 졸업 뒤 유학 간 선배들이 방학 때 찾아와 아이들에게 음악을 지도할 때면 가슴 뿌듯한 보람도 느낀다.
늦가을 한적한 시골 학교 복도 위로 드보르자크의 이 울려퍼진다. 튜바의 장엄한 도입부를 트럼펫의 경쾌함이 뚫고 나간다. 아이들의 볼이 움씰거린다. 서씨의 지휘봉이 가을 햇살을 가른다. 활기찬 음악을 따라 아이들의 꿈도 커진다.
화순=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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