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카운티의 잉글우드시 체육관 앞 주차장. 새벽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텐트를 치거나 담요 한 장으로 밤을 새운 사람들이다. LA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동부에서 달려온 이들도 있다. ‘리모트 에어리어 메디컬 볼런티어’(Remote Area Medical Volunteer)라는 의료단체가 여드레간 진행하는 무료 진료 행사에 모여든 이들이다. 난민 캠프 같다. 세계경제를 주무른다는 미국의 풍경치고는 너무 낯설다.
미국 인구의 6분의 1인 4700만 명 이상이 의료보험이 없어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비싼 의료보험료를 낼 수 없어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을 단념하고 산다고 한다.
“새벽 2시19분에 와서 번호표 345번을 받았어요. 하루에 1500명만 진료를 한다는데, 새벽 5시에 표 발급이 다 끝났대요. 돌아간 사람들도 많아요.”
주황색 번호표를 손에 쥔 한 환자는 체육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유방암이나 당뇨 검사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안과와 치과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다.
19살의 한 소녀는 한 달 전에 이가 깨져서 음식을 먹기는커녕 잠도 잘 수 없었지만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일반 의료보험도 비싸지만 따로 들어야 하는 안과나 치과 의료보험은 더 비싸기 때문에 가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과 보험이 없으면 안경도 맞추기 어렵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많고 허술한지 보여주는 현장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의료보험 체계를 개혁하기 위해 정치 생명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의료업계의 로비를 받은 의회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박승화 기자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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