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동네에 높은 장벽이 생겼다. 흔히 재개발 지역에서 ‘가림막’이라 불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철제 파이프 골조를 세우고 두꺼운 천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철거가 끝나면 그 자리에 철제 벽을 세운다. 동네 주민들이나 지나가는 이들은 가림막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마치 이스라엘의 거대한 장벽을 통과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온 느낌이다. 건물들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히 부서져 있고, 멀쩡해 보이는 건물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빨리 꺼져라! 죽고 싶지 않으면” 등 흉측한 낙서들이 쓰여 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남아 있던 세입자 등에게 이주하라고 협박한 흔적들이다. 주변에서는 쿵쿵거리며 포클레인들이 건물을 통째로 쓰러뜨리고, 고물상들은 쓸 만한 알루미늄 새시를 뜯어낸다.
그런데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직도 이주할 곳을 찾지 못한 세입자들이다. “우리라고 여기 살고 싶나. 내가 여기 20년은 살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나. 돈이 있어야지.” 박분자(72) 할머니처럼 월세 15만원을 내며 살던 독거 노인은 갈 곳이 없다.
서울 강북에는 이렇게 거대한 가림막이 솟아 있는 곳이 수없이 많다. 성북, 왕십리, 마포, 용산…. 가림막은 비밀스럽게 뭔가를 준비하다가 마술처럼 최신식 아파트를 내보인다. 하지만 그 집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땅이 있어야 하고, 능수능란하게 조합을 운영해야 하며, 철거 깡패를 동원해 세입자들을 쫓아낼 정도로 용기(?)도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바로 그때까지 가림막이 필요하다.
용산 철거민 학살 현장에 갔다. 그곳에서 또 다른 가림막을 봤다. 그 가림막은 살아 있었다. 바로 국가 공권력이라는 가림막이다. 사건 현장은 볼 수도 없게 전경버스로 가로막아졌고, 골목 곳곳은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든 전경들에 의해 막혀 있다. 그 가림막은 집을 사람이 살아가는 거주지가 아니라 투기 대상으로 여기는 자들을 위해 마무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 서비스는 참으로 잔인하고 몰염치했다.
21세기,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가림막 안쪽에서 별을 헤는 난쟁이들이 있다.
사진·글 이상엽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