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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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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으로 파는 호떡

등록 2008-04-04 00:00 수정 2020-05-03 04:25

경기도의 아파트 단지 돌며 호떡 장사하는 청각장애 부부 한기혁·정은정씨

▣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장이 서는 날이어서 시끌시끌하다. 슬쩍 눈길이라도 주면 장사꾼의 호객 소리는 한층 더 커진다. 이 북적이는 장마당 한켠에 아주 조용하고도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는 가게가 있다. 주인은 손님을 부르지 않으며, 손님은 가만히 가서 주인이 쳐다봐주길 기다릴 뿐이다.

한기혁·정은정씨는 청각장애인 부부다. 이들은 농아학교 동창으로 만나 같은 직장에 다니며 사랑을 키워 결혼했다. 하지만 회사가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아 문을 닫자 먹고살 길이 아득했다. 다들 쫓겨나고 있는 판에 새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장애인으로서 불가능했다.

그래서 배우게 된 게 호떡 만드는 기술이었다.

호떡 장수 중에는 청각장애인들이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호떡 장사를 시작한 청각장애인들이 손님과 세심한 의사소통 없이도 장사하기가 쉽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도 권하면서 청각장애인 호떡 장수가 많아졌다고 한다.

한기혁·정은정씨도 청각장애인으로 호떡 장사를 하던 정씨 언니에게서 호떡 기술을 배웠다.

1999년에 시작해 지금은 경기 화성·안성·평택에서 장이 서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일주일에 세 번 장사를 한다. 장사 날이면 새벽부터 밀가루 반죽 등 재료 준비에 정신이 없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저녁이면 녹초가 된다고 한다. 10살, 7살인 딸과 아들은 그사이 할머니가 돌본다. 노모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부부의 꿈은 식당을 차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일하면서 아이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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