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땐 ‘잘나갔지’만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폐쇄될 영종도 염전의 마지막 수확
▣ 영종도=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뙤약볕에 대지가 녹아 들어갈 것만 같다.
염부 강종진(60)씨가 웃통을 벗어젖힌 채 소금을 캐러 나선다. 대파(소금물을 미는 고무래)질을 한다. 등이며 이마는 물론 무쇠처럼 단단한 팔뚝에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국내산과 외국산 소금을 구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입자의 크기와 경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국내산 천일염은 입자가 고르고 뚜렷하나 외국산 소금은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마모도가 심하고 입자도 고르지 않다. 특히 국내산은 수분 함유량이 많아 손바닥에 잘 들어붙고 손으로 비비면 잘 부스러진다. 반면 외국산은 경도가 높아 손바닥에 잘 붙지 않고 비벼도 덩어리가 남게 된다.
천일염을 거둬들이는 채염 작업은 새벽과 오후 4시쯤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하루에 두 차례 이뤄진다. 대낮의 뜨거운 날씨를 피하기 위함이다. 천일염은 햇볕과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영종도 염전은 한국전쟁 당시 밀려드는 피란민들의 생계를 해결할 목적으로 1953년 조성됐다. 광활한 들판의 소금밭 60여 동의 소금창고가 2km에 걸쳐 줄지어 선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영종도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내년부터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난 2001년 소금시장 완전개방 이후 값싼 외국산 소금에 밀리더니 급기야 생산한 소금을 창고에 고스란히 쌓아둘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는 한때 ‘잘나가는’ 소금 생산지였다. 지난 1970∼80년대 이곳 염전은 300정보(1정보=9917.4㎡)에 달했다. 하지만 공항 활주로와 신도시, 골프장에 자리를 내주면서 지금은 절반을 밑도는 150정보도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올가을 수확을 마지막으로 영종도에서 사라진다.
△강종진씨는 “소금은 바닷물의 청정도, 일조량, 바람의 세기 등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며 “소금 하나만 잘 먹어도 웬만한 성인병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좋은 소금은 맛부터 다르다고 한다. 좋은 소금은 부드럽고 단맛이 나며 뒷맛도 깨끗한 반면 나쁜 소금은 쓴맛이 난다.
강종진씨는 “서울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사가는 게 고작”이라며 “쌀 추곡수매 하듯이 정부가 비축염을 사들이기도 했는데 올해는 이런 것도 없어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염부들에게는 팔리지 않는 소금 외에 더 큰 걱정이 있다. 내년에 염전이 폐쇄돼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땅도 논도 없고, 다른 곳에 가봤자 나이가 많다고 써주지도 않는다”며 한숨지었다.
그나마 ‘옛날 얘기’가 염부들의 이마에 깊게 팬 주름을 걷어냈다. 황해도 웅진이 고향인 최성준씨는 “1951년 ‘1·4후퇴’ 때 이곳으로 건너왔어”라며 “1958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밀가루, 강냉이 먹어가며 염전을 만들었는데 벌써 50년이나 지났네”라고 회상했다.
이곳 염부들은 70∼80년대만 해도 남부럽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3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는 사이 꾸깃꾸깃해진 염부의 담뱃갑이 자꾸 눈에 밟혔다
△좋은 소금을 만들기 위한 염부들의 노력은 날씨를 예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데는 꼬박 2∼3주가 걸리는데 도중에 비를 맞으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일기예보가 정확하지만, 과거에는 어떻게 족집게처럼 날씨를 알아낼 수 있었을까. 40∼50년 경력의 염부들은 우선 일몰 무렵 구름의 위치와 모양을 살피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꼽는다. 해가 넘어갈 때 구름이 해 주변에 끼어 있으면 2∼3일 뒤 비가 온다는 것이다. 염부들은 이를 “해가 집 짓고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강종진씨가 대파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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