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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길따라 가죽이 살아나다

등록 2007-07-11 00:00 수정 2020-05-03 04:25

맥이 끊겼던 칠피공예를 연구해 되살린 박성규씨의 작업장을 찾아서

▣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칠피(漆皮)공예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기술이다. 조형된 나무작품에 가죽을 붙이고 옻칠을 한 뒤 문양을 만들고 다시 옻칠을 한 뒤 광을 낸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다루는 장인의 솜씨에 따라 작품의 질과 내구성은 천차만별이다.

근대에 들어 맥이 끊겨 사라져버린 이 기술이 한 장인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다시 살아났다. 대한민국 칠피공예의 명장 박성규씨. 그도 처음엔 나전칠기 일을 했다. 1953년에 태어난 그는 가난을 면하기 위해 15살 때 장롱공방에 취직했다. 어깨너머로 ‘나전’기술을 배우던 그는 전국 최고의 장인이 되기 위해 옛 문헌과 전국의 박물관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던 박씨는 우연히 찾은 박물관에서 낡은 서류함을 보고는 곧바로 그 작품에 빠져들었다. ‘가죽으로 만든 공예!’ 세월에 바래진 서류함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세련된 문양과 색감이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곧바로 가죽으로 만든 상자에 도전해보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 맥이 끊긴 칠피공예는 작품도 거의 없었고 문헌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처음엔 내가 배운 나전칠기와 기술이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은 했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구두 만드는 아는 형님에게 힌트를 얻어 나무상자에 가죽을 붙이고 구두약까지 칠해봤습니다. 웃긴 일이었지만 만드는 사람은커녕 이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결과는 참담한 실패. 이후 수십 번의 시도를 했지만 건조 과정에서 나무가 틀어져 폐기처분한 가죽이 산더미를 이뤘다. 생활고에 시달려 부인 김용순씨마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때마침 일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버는 돈의 3배나 되는 큰 금액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거절했다. 지금껏 매달려온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생옻칠을 반복하면 습기와 부식에 약한 가죽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인고의 산물이었다. 칠피공예 작품을 첫 출품한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이후 칠피공예에 눈뜬 그는 전통유물을 복원하고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데 열정을 기울였다. 독일 함부르크 박물관의 ‘황칠문서함’, 덕수궁의 ‘인장함’ 등 각종 전통유물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지금도 칠피공예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어렵사리 이어놓은 맥도 끊길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의외로 박 명장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다 보면 나오겠지 하는 마음이다. 설령 끊기더라도 후손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연구해서 더욱 훌륭한 작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무것도 없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언젠가는 알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전통 계승의 끈도 이어지리라는 희망을 그는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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