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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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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이 나를 홀렸네

등록 2005-06-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서러운 이장님과 조용한 농부 철학자를 만난 천성산에서의 3일
소설가 김곰치, 마을을 덮은 송전탑과 고속철도 교각에 숨막히다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글 김곰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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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터널 환경공동조사는 합의서를 작성하고도 새로운 난항에 빠져 있다. 천성산대책위 손정현 사무국장은 “예상을 초과하는 환경조사 경비를 누가 마련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지금 당장 13억원의 총경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단은 모자라는 경비를 건설사에 알아보라고 했다 한다. 나중에 보전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5월30일부터 사흘간 천성산 일대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천성산 대책위, 지율 스님, 공단쪽보다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원사 계곡에서 본 개구리와 개곡마을에서 만난 김의일 농부가 나는 가장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아픔, 그러나 나는 아픔의 환한 빛도 보았다.

사랑하면, 천성산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로 우리의 귀를 빼앗을 것이다. 사랑하면, 천성산은 온갖 비밀스런 장면으로 우리의 눈을 홀릴 것이다.

수족관의 중태기야 애처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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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 웅상읍쪽의 천성산 산행로에서 보았다. 간이 음식점에서 밖에 내놓은 수족관에 ‘중태기’라는 이름의 민물고기가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하류에는 피리가 살고 중태기는 천성산 1급수 맑은 물에 살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니 정반대다. 중태기는 양산 시내 개울에 살고, 천성산 계곡엔 피리가 산다는 것이다. “그럼 중태기는 더러운 물에 사는 거예요?” “더러운 물은 아니고 중급 물에 산다고 할까.” 음식점에서 파는 매운탕은 매일 트럭으로 배달된 양식 중태기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음식점 주인은 장삿 속으로 거짓말을 한 것일까. 어쨌거나 모두 천성산 산물을 먹고 자라는 생물들.

옆의 사진기자는 산 중턱에 달랑 하나 있는 수족관의 물고기가 애처롭다고 하였다. 나는 왠지 물 속에 엎어진 뿌리개가 눈에 들어왔다. 수족관을 통과한 천성산 산물을 뿌리개로 날라 음식점 옆 텃밭에 뿌리는 걸 테다. 천성산 물로 기르고 키운 생명붙이를 우리는 먹는다. 물 뿌리개도 일종의 살생도구라고 할 수 있을까.

송전탑 아래에는 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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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동면 개곡마을은 극단적 상황에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60번 고속국도의 교각 공사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마을 위로 송전탑이 두 줄기나 지나고 있었다. 고속철도 노선은 그 사이로 새로 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송전탑. 내가 마을 주민이라면 분통이 터지고 화병이 나서라도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개곡마을 김종철 이장을 찾았다. “마을에 사람들이 암으로 많이 죽었어요. 송전탑과 관계가 있겠지요.” “농사는 별 상관이 없습니까?” “지장 있습니다. 소출이 떨어졌어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채소농사는 못 지어요. 비 오면 전선에서 떨어진 물방울에 맞아 잎이 다 뚫려요.” 마을의 송전탑은 울산과 부산의 화력발전소에서 오고 가는 것이라는데, 수십km의 송전탑 전선을 따라가도 그 밑에는 희한하게 밭이 하나도 없겠구나 싶었다.

개곡은 ‘開谷’이다. 사람이 살도록 곡을 열었다는 뜻인 듯하다. “밖에서 마을로 들어오다가 다리와 송전탑을 보면, 댐처럼 보입니다. 개곡이 아니라 이제는 폐곡마을이 되어버렸어요.” 김 이장이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의 인품에 반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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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곡마을 앞 논으로 갔다. 써레질하여 물이 흐린 논 앞에 늙은 농부가 홀로 앉아 있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금 농촌에는 도통한 사람만이 산다더니, 말씨에서 풍기는 노인의 인품에 나는 반했다. 말을 하는 내내 얼굴에 머금은, 잔잔한 미소와 상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 때문이었다. 나고 자란 고향마을이 엉망진창이 되고 자신의 몸도 불편한 형편인데, 어떻게 이리 부드러울 수 있을까. 농부는 지난해 지율 스님이 공사현장에서 농성할 때, 스님을 집에서 몇번 재우기도 했다.

“스님, 참 대단허요. 청와대 앞에 계실 때 보소. 얼마나 대단해요. 그리고 참 똑똑헌 사람이요. 내가 보이까, 진짜… 중 맞아요. 넘들은 뭐라고 하지만, 내가 마을에서 보이까 아, 저분이 진짜 스님인가… 싶습디다. 굉장히 말도 잘하시고, 뒷산 공사 막을 때… 굉장했다 아이요.”

나도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공사장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밤새 철조망을 쳤는데, 스님이 손으로 뜯어냈다고 하거든요. 손바닥이 피투성이가 됐죠. 철조망 보고 그 순간 이성을 잃은 거죠.”

“신체도 약한 사람이 우찌 그리…” 하고 농부는 한참 말을 삼켰다.

그의 나이와 존함은 김의일(63)씨. ‘스님’을 ‘중’이라고 칭한들 어떠리.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지율 스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느꼈다. 나는 한국 민중의 감동적인 한 면모를 보았다.

교각에 오르고, 화엄벌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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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 교각 공사 모습이다. 왼쪽으로 휘어지다가 개곡마을 오른편 뒷산을 치고 들어간다. 천성산 터널의 시작 지점이다. “저희는 다리 세우는 일만 합니다. 다리의 노면은 또 다른 회사에서 해요. 터널 뚫는 일은 또 다른 회사가 하고요. 전체 공정 관리는 두산건설이 합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 대도시 사람들은 고속철도로 편의를 얻는다. 그러나 개곡마을에서 보았듯 노선이 지나가는 거의 모든 곳이 파괴된다.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도시 민주주의일 뿐, ‘내부 식민지’의 이런 설움과 비참함을 대도시 사람들은 잘 모른다.

화엄벌에서 보았던 등산객들은 조용히 움직이는 철학자 같아 보였다. 시끄러운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 길을 묻는 질문에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한다.

천성산을 다녀온 뒤 지율 스님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바로 묻는다. “산에는 올라갔어요?” “화엄벌에만 갔습니다.” “화엄벌 어때요?” 부모나 자식 안부를 묻는 말투였다. 정에 굶주린 것인지도 모른다. 스님은 바깥 일로 천성산을 떠나 있은 지 꽤 오래됐을 것이다. “싱싱해 보이던데요.” 내 대답은 내가 듣기에도 좀 이상했다. 그러나 스님은 가만히 눈을 감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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