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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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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에도 그리던 고향에서 잠들다

등록 2011-12-06 15:23 수정 2020-05-03 04:26

할머니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날 겨울비가 서럽게 내렸다. 노수복 할머니는 21살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모진 일을 겪었다.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해방된 조국의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역만리 타이에서 70년을 살았다. 일제 때 모진 고통을 잊고 싶어서였을까. 할머니는 모국어를 잊었다. 하지만 부모·형제의 이름과 고향 주소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만나야 할 피붙이가 사는 곳이었으므로. 어찌 꿈엔들 잊을 수 있겠는가.
할머니는 지난 8월 그동안 모아온 5만밧을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의 조선학교에 기부했다. 천만금보다 큰 마음이다. 할머니는 아흔의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했다. 하지만 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갑작스런 노환으로 지난 11월4일 이역만리 타향 타이에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유해는 11월30일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서 추모제를 치른 뒤, 경북 예천군 호명면 선산의 부모님 옆에 안장됐다.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온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2월14일이면 1천 회를 맞는다. 1992년 1월 시작했으니, 20년이 흘렀다. 일본 정부는 외면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엉거주춤이다. 그사이 많은 할머니들이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이제 65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만이 살아계신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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