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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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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의 먹물짓

등록 2008-11-08 10:05 수정 2020-05-03 04:25

지난 10월30일 오후 충남 서산시 천수만 서산간척지 내 간월호 주변. 벼베기가 끝난 드넓은 들판에 수만 마리 철새들이 한가롭게 먹이를 쪼아대고 있었다. 농로에 들어서자 ‘꽥꽥’ 하는 울음과 함께 가창오리떼가 날아올라 순식간에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다. 공중에 거대한 띠를 만들고 역동적으로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며.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는 듯한 모습에 짜릿한 전율이 온몸으로 번진다. 간월호 주변은 아침 무렵 피어오른 물안개 속에 철새들이 펼치는 군무도 장관이지만, 붉은 노을과 천수만 바다를 병풍 삼아 휘저어 날아다니는 해질녘 철새들의 군무가 단연 압권이다.

철새의 먹물짓

철새의 먹물짓

천수만은 매년 300여 종 40여만 마리가 찾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 시베리아·만주 등에서 동남아시아로 가는 이동 경로의 중간 지점이다. 겨울나기 채비를 서두르는 철새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요즘 간월호 주변은 전국 각지에서 단체관광객을 실고 온 관광버스들로 북적인다. 때마침 창원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10차 람사르 총회는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원인으로 지적된 철새들에 대한 오해도 풀어주었다. 람사르 협약 과학기술검토패널은 AI가 가금류 간에만 전염되며, 발생 장소도 철새의 서식지 부근이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간월호·부남호 등 천수만 주변에 둥지를 튼 철새는 쇠기러기·흰뺨검둥오리 등 20여 종, 30여만 마리쯤 된다는 게 서산시의 설명이다.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 흑두루미, 원앙 등이 간월호 상류 모래톱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곧 흑부리오리, 북방 검은머리쑥새 등도 속속 천수만을 찾는다. 11월이면 철새들의 군무가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서산=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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