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보복과 표적수사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뒷조사와 ‘먼지털기식’ 검찰 수사가 빈발했다는 의혹이다. 물론 정치보복 논란의 핵심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규명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의혹만 탈탈 털었다. 현 여권 실세의 세무조사 무마 의혹은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했다.
민주당은 6월4일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진상특위)를 구성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이뤄진 검찰의 정치보복과 관련한 진상 파악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정치보복성 수사도 조사 대상이다. 진상특위가 주목하는 사건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김재윤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등에 대한 검찰 수사다. 모두 정치보복성 표적수사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진상특위 주장이다. 그 내용들을 정리했다.
<font size="3"><font color="#638F03">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font></font>참여정부 인사들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의 대표 사례로 꼽는다. 이 전 수석은 2004년 국회의원 선거와 2005년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기업인 등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3월13일 구속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 전 수석이 자신의 선거자금을 관리한 노아무개씨를 통해 모두 3억1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가 조아무개씨에게서 2억1천여만원, 조영주 전 KTF 사장에게서 5천만원, 그리고 김대중 전 두산중공업 사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한테서도 각각 2천만원과 1천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전 수석은 김 전 사장과 정 전 회장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한다. 나머지 부분은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일로 보고 있다. 사업가 조씨와 조 전 KTF 사장에게 직접 돈을 건네받은 일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전 수석 쪽은 검찰의 수사 과정을 문제 삼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 주변에서는 이 전 수석에 대한 각종 비리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밝혀졌다. 말 그대로 ‘설’ 수준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이 전 수석은 이번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예컨대 조영주 전 KTF 사장이 이 전 수석에게 건넸다는 5천만원만 해도 2008년 KTF 납품비리 의혹 사건이 불거졌을 때는 이 전 수석을 비껴가는 듯했다. 이 전 수석의 측근 노아무개씨가 이 돈을 선거자금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 전 수석이 직접 받거나 지시한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
이 전 수석 주변 상황은 2009년 2월부터 ‘이상하게’ 뒤바뀌었다. 사건 관계자들이 검찰에서 이 전 수석에게 불리한 진술을 연이어 내놓은 것이다. 이 전 수석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조영주 전 KTF 사장은 2월26일 노씨에게 돈을 건넨 자리에 이 전 수석의 부인 황아무개씨가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2008년 ‘노씨만 따로 만났다’는 자신의 진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목이다. 조 전 사장으로부터 선거자금을 건네받은 자리에 황씨가 있었다면, 이 전 수석은 정치자금법 관련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조 전 사장보다 더 극적인 변신을 보여준 인물은 사업가 조아무개씨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최근까지 정치권 안팎에 줄을 대온 조씨는 이 전 수석의 측근을 자처해왔다. 이 전 수석이 검찰에 구속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도 바로 조씨였다. 그는 검찰에서 2004년 4월 총선과 2005년 10월 대구 보궐선거 때 노씨를 통해 이 전 수석에게 1억5천만원의 선거자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민주당 진상특위와 이 전 수석이 검찰의 수사를 ‘표적수사’ 혹은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검찰이 참여정부 실세로 통한 이 전 수석을 엮기 위해 관련자의 허위 진술을 이끌어낸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수석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사업가 조씨의 알선수재 혐의를 포착했음에도 이에 대해 기소는 커녕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며 “조씨가 자신의 알선수재 혐의와 정치자금 제공 혐의를 봐주는 대가로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해줬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조영주 전 사장도 검찰로부터 추가 기소나 추가 수사 등의 압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전 수석을 구속하며 검찰은 그가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받았을 뿐 아니라 명절 선물과 개인 기사의 월급까지 후원자에게 대납시켰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이 전 수석 쪽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선 사업가 조씨가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명절 한우 선물세트’ 200여 개의 경우, 검찰은 이를 6천만원 상당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수석 쪽은 조씨가 직접 운영하는 도축장에서 소 2마리를 잡아 전달한 것인데, 검찰이 액수를 부풀리기 위해 이를 백화점 한우 선물세트로 계산해 언론에 흘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역시 검찰이 2천만원으로 계산해 혐의 내용에 포함시킨 이 전 수석 기사의 월급 대납 부분에 대해서도 이 전 수석 쪽에서는 심하다는 반응이다. 이 전 수석의 측근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그만둔 뒤 차도 없이 다니는 그를 위해 후원자들이 나서 십시일반 차량 유지비를 모아 마련해준 것인데, 검찰은 이 전 수석이 후원자에게 먼저 ‘낯 뜨거운 요구’를 한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진상특위에서도 이 전 수석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와 ‘먼지털기식 수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진상특위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 전 수석의 가족과 지인, 기업인 등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에게 무차별적 계좌추적과 전화 진술 요구, 검찰 소환을 일삼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진상특위 관계자는 “검찰이 이 전 수석의 약점을 캐기 위해 그의 부인이 운영했던 서울 강남의 한 횟집 고객까지 무차별적으로 훑었다. 신용카드로 100만원 이상 결제한 사람과 수표로 밥값을 낸 사람에게는 검찰 수사관이 일일이 연락해 횟집을 찾아간 이유와 이 전 수석과의 관계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술 거부권 안 알리고 받은 진술 증거능력 낮아이 전 수석 구속 직전 검찰 관계자는 “이강철 전 수석이 이번에는 제대로 걸렸다”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의 구속으로 당시 검찰이 보인 자신감은 일정 부분 설명이 됐다. 하지만 법정에서도 검찰의 주장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이 전 수석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사업가 조씨와 조영주 전 사장의 진술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했던 역할 그대로였다. 대검은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흔들림이 없다”며 그의 자백에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이 전 수석 수사 과정에서도 검찰은 사업가 조씨의 ‘입’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임의로 받은 진술은 증거능력이 낮다는 게 사법부의 판단이다. 진술거부권이란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font size="3"><font color="#638F03">김현미 전 의원</font></font>이는 표적수사의 또 다른 피해자로 꼽히는 김현미 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에 대한 판결이 말해준다. 김 의원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 저격수로 활약했다. 그는 AK캐피탈의 한보철강 인수와 관련해 대학 동창 문아무개씨에게 1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문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04년 8월20일 김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김 전 의원은 이때 중국에 있었다. 그러자 문씨는 뇌물 액수를 2천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바꾸며 날짜도 8월24일로 바꿨다.
1심 재판부는 2008년 12월30일 문씨의 진술 태도로 볼 때 자백의 동기가 의심스럽다며 김 전 의원의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진술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조서는 그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에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AK캐피탈의 한보철강 인수를 해결하겠다며 제3자로부터 2억원을 받은 문씨가 자신을 겨냥한 검찰의 칼끝을 피하기 위해, 대신 김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넸다며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김 전 의원은 2009년 5월8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font size="3"><font color="#638F03">김재윤 민주당 의원</font></font>‘표적수사’와 ‘정치보복’ 의혹에는 이처럼 대부분 ‘검찰의 혀’가 등장한다. 법원은 이들의 진술에 물음표를 던지는 추세지만, ‘표적’으로 지목된 당사자에게는 검찰 소환 자체가 상처가 너무 크다.
김재윤 민주당 의원도 그랬다. 2008년 촛불 정국에서 김 의원은 촛불 국민보호대책단 단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악법 강행 처리에 맞서서는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를 주도했다. 김 의원이 언론에 등장하는 빈도가 가장 높았던 2008년 8월, 대검에서 느닷없이 김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 나왔다. 검찰은 김 의원이 제주도에 외국계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던 ㅇ사 김아무개 회장으로부터 병원 인허가와 관련법 개정 로비 명목으로 3억원을 받았다는 단서를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일방적 주장만 있던 상황이었지만, 차명진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김재윤 의원은 혹시 자신이 민주투사인 것처럼 착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국민의 눈에는 법망을 피해 밀실에 숨어든 범죄자처럼 보일 뿐”이라며 김 의원을 공격했다.
‘별건 수사’ 통해 방향 틀어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법원은 2009년 3월6일 검찰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의원이 받은 3억원이 알선 대가인지 빌린 돈인지 다퉈볼 필요가 있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이유였다.
김 의원과 민주당 쪽에서는 검찰이 애초 ㅇ사 김아무개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무리하게 짜맞추기식 수사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은 한국석유공사 해외유전 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 ㅇ사 김아무개 회장 관련 부분을 추적하다 김 의원에게 건너간 수표가 나왔다고 발표했지만, 여러 정황을 살피면 애초부터 김 의원을 표적으로 삼기 위해 김아무개 회장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에 조사받던 김 회장을 면책해주는 대신 김 의원에 대한 허위진술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실제 검찰은 지난해 야심차게 한국석유공사 비리 의혹 수사에 착수했지만, 김 의원 사건이 ‘별건 수사’를 통해 불거지자 이쪽으로 방향으로 틀었다. 한국석유공사 비리 수사는 2009년 5월29일 서울고법이 시추비 과다 지급 등으로 한국석유공사에 45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김아무개 전 한국석유공사 해외개발본부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아무런 소득 없이 종결됐다.
<font size="3"><font color="#638F03">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font></font>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한 검찰 수사도 비슷하게 진행됐다. 대전지검은 최근 안 최고위원의 측근 윤원철 전 청와대 행정관을 구속했다( 764호 ‘검찰 표적수사는 현재도 진행 중’ 참조). 검찰은 윤 전 행정관이 2007년 9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게 8천만원을 받아 안 최고위원에게 건네고,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2005년께 지인에게 학교시설 개선 등에 관한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1억원 안팎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 검찰이 그린 그림은 ‘이철상 전 VK 대표→윤원철 전 행정관→안 최고위원 등 386 정치인’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이철상 게이트’였다. 하지만 검찰은 이 흐름도에서 이 전 대표와 윤원철 전 행정관, 그리고 안 최고위원까지 이어지는 고리가 막히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철상 대표는 안 최고위원 등 386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유지하고 있고, 구속된 윤 전 행정관도 검찰이 그린 그림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여전히 안 최고위원의 소환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안 최고위원의 측근은 “대전지검 주변에서는 2008년 10월부터 검찰 수사가 안 최고위원을 겨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안 최고위원 본인에게 당당히 연락해서 소명을 요구하고, 그래도 석연치 않다면 기소하면 될 텐데 그런 절차는 일절 없이 끊임없이 설만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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