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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이 던진 숙제

등록 2003-09-25 00:00 수정 2020-05-02 04:23

논란을 몰고 37년 만에 돌아온 송두율 교수… 우리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37년 만에 돌아온 ‘경계인’.

‘경계인’은 원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국경지방에 출몰하던 마적을 뜻한다. 훗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과 백인을 넘나들며 두 세계를 소통시키던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Border Rider’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의미로 정착했다.

인천공항의 상반된 표정

9월22일 우여곡절 끝에 입국한 송두율(59·독일 뮌스터대) 교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두고 항상 ‘경계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왔다. 그가 평생 부여잡은 화두들도 ‘경계’라는 개념에 직접 맞닿아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남과 북의 경계, 철학과 사회과학의 경계, 동과 서의 경계, 현대와 탈현대의 경계…. 2000년에 벌어진 그의 귀국 좌절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은 (감독 강석필)였다.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 있는 탓에 경계인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마치 좁은 수평대 위에 서 있는 체조선수처럼 말이다.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넓은 수평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펴낸 책인 에서 ‘경계’라는 단어를 이렇게 보충설명했다.

9월22일 오전 인천공항의 입국 장면은 그가 왜 경계에 서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듯했다. “분단의 고통 속에서 37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신 송두율 교수님을 평화와 통일의 마음으로 환영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와, “송두율은 가면을 벗고 김일성, 김정일과의 관계를 밝혀라”는 내용의 피켓이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김철수 망령’이 떠돌기 시작한 것은 조선로동당 비서였던 황장엽씨가 베이징에서 망명을 선언하고 마닐라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지 1년이 훨씬 지난 1998년 7월이었다. 황씨를 보호하고 있던 당시 안기부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이름으로 출판된 황씨의 비공개 비매품 책이었던 를 입수한 은 이를 기초로 1998년 8월호에 “재독학자 송두율씨, 김철수라는 가명을 가진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특종기사’를 내보냈다.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으나…

송 교수는 이 기사와 관련해 1998년 10월 황씨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냈다. 이후 3년 동안은 그에게 녹록지 않은 ‘싸움’의 과정이었다. 애초 황장엽이라는 개인을 상대로 하는 문제제기였음에도, 소송이 진행되면서 와 , 국가정보원과 한나라당 등 국내 수구세력의 주력부대 전체와의 싸움으로 전선이 확대돼버린 상황이 그랬다. 그는 이같은 상황을 두고 “조폭(朝暴)은 조폭(組暴)이 되었고, 이들이 펼치는 조폭(粗暴)스런 논리를 나는 3년 가까이 경험했다”( 중에서)고 털어놨다.

국정원(당시 안기부)은 재판의 전 과정을 통해서 시종일관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귀순자들의 증언과 외국 정보기관이 제공한 자료와 각종 첩보를 입증자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장엽씨를 제외하고 국정원쪽이 유력한 증인으로 내세운 3명 가운데 2명은 이미 사망한 사람들이었다. 즉,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 남쪽에서 전향했다고 알려진 박병엽 등 2명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인 오길남씨(독일에서 입북했다가 북에 가족을 두고 혼자 다시 독일을 거쳐 서울로 돌아간 인물) 역시 1992년 작성한 탄원문 어디에도 송 교수가 자신의 입북을 주선했다는 내용이 없었다.

국정원은 또 “증인 이외에 확보된 구체적인 판단근거를 제시해달라”는 재판부의 요청에 “판단 근거자료들은 비밀, 즉 국가정보기관의 중요 정보수집 활동사항으로 공개되면 국정원의 정보 역량이 손실되고 국가안전보장에 적지 않은 위해를 끼친다”는, 너무 포괄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이유를 들어 끝까지 거부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불충분하나마 송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주장은 진실로 보기 어렵지만, 황씨가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도 인정되는 만큼 황씨의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송 교수가 명예를 훼손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황씨가 이런 주장을 펴게 된 경위나 목적에도 일정 정도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송씨의 손도 들어주면서 보수세력의 눈치를 극도로 살핀 절충적인 판결이었던 셈이다.

1심 판결이 내려지자 송 교수는 항소를 포기했다. “금전적인 손해배상은 못 받았지만, 김철수란 누명은 벗었다”는 게 이유였다. “소송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그는 지인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구속 등 강경 조처 없을 듯

귀국 직후인 9월23일부터 국정원의 조사가 이뤄져 송 교수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지만, 당장 ‘구속’ 등 강경한 조처가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 독일 국적을 지니고 있어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1심 재판과정에서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 국정원쪽의 문제 등이 겹쳐 이번에 형사처벌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국정원쪽이 재판과정에서 제출하지 않은 세부적인 ‘근거자료’들이 공개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송 교수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실현 가능성은 낮다.

검찰과 국정원 안팎에서는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공소보류’(2년 안에 기소하기 위해 같은 사건으로 재구속도 가능하지만, 2년 동안 공소제기가 없으면 기소하지 못함)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혐의는 인정하되, 처벌을 보류한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양쪽 모두가 한발씩 물러나는 ‘묘수’는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절차에 따르더라도 ‘충성서약서’를 쓰는 절차를 두고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는 10월 초까지 국내에 머물면서 친인척들을 만나고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도 할 예정이다. 체류기간 동안 그가 ‘마적’으로서의 경계인이 될지, ‘두 세계를 소통시키던 사람’으로서의 경계인이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몫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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