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를 괴롭히는 전향과 준법서약의 망령…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의 본격 계기 삼아야
“정부는 전향은 안 해도 되지만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사회질서를 지키겠다는 준법서약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서약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설령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고 실천적 휴머니스트 내지는 인권운동가라 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권력 앞에 게워낼 필요는 없는 법이다.”
지난 1985년 이른바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돼 13년8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강용주씨가 쓴 의 한 대목이다. 준법서약서 제출을 거부한 강씨는 1999년 2월 다른 양심수들과 함께 석방됐다. 강씨가 일갈했던 준법서약서는 올 7월에 폐지됐고, 사상전향제는 이보다 앞선 1998년에 사라졌다.

검찰이 기다리는 ‘반성의 수준’
그러나 2003년 11월 37년 만에 조국을 찾은 초로의 교수를 둘러싸고, 전향과 준법서약의 망령은 여전히 잡초 같은 생명력을 자랑하며 곳곳에서 꿈틀대고 있다.
지난 11월6일, 검찰은 “송두율 교수가 묵비권을 행사하며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전된 ‘반성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구속기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학교 담장 안에서나 들릴 법한 ‘반성’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중요한 처벌기준으로 변신한 것은 사건 추이를 살펴보면 그리 놀랄 만한 얘기는 아니다.
송 교수는 입국 뒤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준수와 조선노동당 탈당 등 사실상의 ‘준법서약’을 만천하에 알렸지만, 검찰은 “충분한 반성 표명이 아니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송 교수는 며칠 뒤 ‘국민 여러분과 사법 당국에 드리는 글’을 통해 그동안 사용을 고집해온 ‘경계인’이라는 입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친북행위를 사과했다. 독일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참회’의 강도가 셀수록 (처벌) 수위도 그만큼 내려갈 것”이라며, ‘확실한 반성이 곁들여지면 관용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송 교수의 거듭된 ‘반성’이 이어졌지만, 검찰은 “여전히 반성 수준이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고 송 교수를 구속하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검찰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반성’의 수준이 궁금해진다. 독일에서 자기 발로 들어와 국정원에 자진 출두했고 10차례가 넘는 검찰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한 송 교수에게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송 교수의 구속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자백’과 ‘전향’을 강제하고자 하는 검찰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정희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결국 검찰이 원하는 반성이란 송 교수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사상전향’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만의 하나, 불기소처분인 ‘공소보류’(국가보안법 20조) 처분이 내려진다 해도 송 교수는 또다시 ‘전향’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왜 진보인사들마저 입을 다물었나
공소보류자 관찰규칙을 보면 ‘보류자는 훈계를 받은 때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서약서를 공소 보류의 결정을 한 검사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이 서약서의 내용이다. “이번 본인이 공소 보류의 은전을 받음에 있어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대오각성하여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할 것이며, 규칙을 성실히 이행하고 모든 지시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굳게 맹세하고 서약서를 제출하나이다.” 노골적인 충성서약서이며 전향문이다.

사상전향제도는 원래 ‘나쁜 사상’을 가진 자를 ‘천황의 사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일제가 고안해낸 제도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제도를 고스란히 넘겨받아 50여년 동안 1970~80년대 전향을 거부하는 좌익 수형수들의 손톱을 뽑고 코에 고춧물을 들이부으며 ‘제대로’ 써먹었다. 국내외의 비난이 이어지자 이 제도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상전향이 강요해서 될 일도 아니다”라는 이유로 폐지되었지만, 그 뒤를 이어 사상법에 대한 가석방 심사기준으로 도입된 준법서약제 역시 같은 이유로 논란이 이어졌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7월 국내 사상전향제도가 국제인권규약(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B규약)에 위반되는 만큼 피해자에게 국가배상을 하고 재발방지 조처를 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통보문에서 “대한민국은 사상전향제가 준법서약제로 대체됐고 강제 운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준법서약제에도 사상전향제도의 강압적인 성격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정치적 견해에 대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전향제는 인권규약의 평등권과 사상·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송 교수 사건에서 보여지듯, 사상의 ‘선택’을 강요하는 인식과 형식은 여전히 검찰과 언론 그리고 공소 보류를 위한 ‘충성서약서’ 등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전향은 필연적으로 국가보안법 문제로 이어진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사상을 검증하고 어느 편인지를 확인하며 그것을 온천하에 밝히라고 강요하는 ‘사상전향제’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특히 송 교수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50여년간 우리 사회에 강고하게 자리하면서, 우리의 의식체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의 상흔을 안고 보안법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던, 이른바 일부 진보 진영의 대응방식이 이를 정확히 증명한다.
송 교수를 초청하고 열렬히 환영하던 인사들은 송 교수의 노동당 가입 사실 등 자신들이 ‘몰랐던’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이들은 자신들까지 ‘용공세력’으로 몰릴 처지에 놓이자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겠다. 진실을 밝히려면 구속 수사밖에는 없다”(나병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국회발언)며 발을 뺐고, “송 교수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송 교수를 관용해야 할 것”이라며 애걸했다.
우리는 여전히 ‘극단의 시대’에 산다
하지만 보안법에 대한 평소 소신대로라면, 이들은 반인권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송 교수를 처벌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송 교수를 단죄할 것이 아니라 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어야 한다.
김규항씨는 ‘송두율 교수 사건 교수·학술연구자 비상대책위원회’(freesong.jinbo.net)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국가보안법을 찬성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찬성하는 자들과 인정하는 자들이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라고 개탄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수구 냉전세력이 공조해 국가보안법을 잣대로 전향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진보 진영이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분명한 잘못”이라며 “이제 송 교수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송두율 교수 사건은 우리가 여전히 ‘친북’과 ‘반북’으로 갈리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전향을 말하고 권하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송 교수 사건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갈 것인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설 것인지를 시험하는 잣대가 됐다. 그리고 과연 누가 ‘반성과 참회’를 해야 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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