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사립학교법 개정안에 ‘경영권 침해’ 주장하는 사학들… 경영권 근거되는 ‘출연재산’ 존재부터 의심스러워</font>
▣ 김남일 기자/ 한겨레 사회부 namfic@hani.co.kr
“학교를 폐쇄하겠다.”
지난 10월21일 전국 1200여개 사립학교 재단들의 모임인 한국사학법인연합회(회장 조용기)는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 추진에 반발하는 모임을 가졌다. 열린우리당이 개방형 이사제 도입과 일부 이사를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회가 추천하는 인사로 채우는 것을 뼈대로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내놓은 지 1주일 만이다. 사학법인들은 이날 모임에서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학교 폐쇄’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설왕설래, 이사 선임권·교원 임면권
전국의 사립학교 수는 2003년 기준으로 1963개(초등 76, 중 669, 고 933, 전문대 142, 대학교 143)다. 대학(전문대 포함)의 경우 사학의 비율은 전체의 9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학교 문을 닫겠다’는 사학법인들의 ‘엄포’가 단순한 엄포로 끝나지 않는다면 그 파장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학법인들은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돼 사학 경영권이 교사 등 학교 구성원에게 넘어간다면 건학이념을 더 이상 실현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과연 여당의 개정안이 사학의 건학이념을 실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개악’됐을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법인 이사의 3분의 1을 학교운영위원회(또는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는 사람으로 임명하는 ‘개방형 이사제’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이사회 구성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이를 둘러싼 대립각은 매우 날카롭다. 사학단체들은 현행법에서 이사회가 후임 이사를 임명하도록 한 것은 설립자의 건학이념 계승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방형 이사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이 요구해온 ‘공익 이사제’를 말만 바꾼 것이라고 주장한다. 송영식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이사 선임권은 경영자의 고유 권한인데 사실상 교원들에게 선임권을 주는 것이 말이 되냐”며 “개방형 이사제는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빙자해 교원에게 경영권을 넘기려는 것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전교조 등은 오히려 “여당이 형식적으로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면서 ‘이사를 추천할 때 법인과 협의를 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개방형 이사제 도입 취지를 완전히 무력화했다”고 비판한다. 교사·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학운위에서 이사를 추천해도 재단쪽에서 이를 거부한다면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사 선임을 둘러싼 학내 분쟁만을 조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학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돼온 교원 임면과 관련해, 애초 학교장에게 주기로 했던 교원 임면권을 현행대로 재단 이사회에 주도록 한 개정안에 대해서도 교육단체 등은 “학교장에게 위임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사학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안고 있다”고 비판한다. 열린우리당은 교원인사위원회의 3분의 1 이상을 교사회(또는 교수회)가 추천하는 인사로 임명하도록 해 인사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사학법인들은 교원 임면의 ‘공정성’이 흔들린다며 이 조항에 대해서도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고와 등록금만으로 운영비 충당
학운위의 심의기구화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학법인들은 “설립자의 재산출연으로 형성된 법인의 경영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학교 운영의 중요 사항을 교사·학생·동문·지역인사 등에게 강제로 이양하는 것”이라며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단체들은 그동안 꼭꼭 감춰져 있던 학교 예결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기 위해 자문기구에 머물고 있는 학운위의 심의기구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학법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건학이념 실종에 대한 우려보다는 ‘막강한 기득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학법인들은 “학교 운영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재산을 출연했는데, 국가가 개방형 이사제 등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결국 운영권을 빼앗겠다는 것”이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가가 계약조건을 위반한 만큼 출연재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학법인들이 ‘내 재산’이라고 주장할 만큰 재산을 제대로 출연했는지에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윤덕홍 전 교육부 장관은 이에 대해 “국내에서 출연재산을 제대로 낸 사학은 얼마 안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학생들의 교육에 써야 할 학교 돈을 빼내 또 다른 학교나 건물을 세우는 방식으로 법인 재산을 불리면서도, 정작 재단전입금은 한푼도 들이지 않는 사학법인들도 도처에 널려 있다. 교육부가 올해 국정감사 때 국회 교육위에 제출한 ‘2003년 법정부담전입금 현황’을 보면, 법으로 정해진 재단전입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사립대가 지난해에만 40개에 이르며, 20여개 대학은 최근 5∼6년 동안 재단전입금 ‘0원’을 기록했다. 오로지 국고와 등록금으로만 학교를 운영해온 셈이다. 이에 대해 송영식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사립학교에 대한 국고 지원은 지원금이 아니라 그동안 등록금과 고교평준화 등으로 (사학을) 통제해온 것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다소 엉뚱한 반론을 폈다.
변성호 전교조 사립위원장은 “현재 학교운영비의 98% 정도를 국가보조금과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사립학교들의 처지에서 학교를 사유물로 취급하는 것은 국민들의 교육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재산을 출연한 사람들의 명예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거기에는 출연과 동시에 공적 기능이 부여된다”고 강조했다.
사학법인들이 신봉하는 건학이념도 사립학교법 개정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다. 변성호 위원장은 “사학법인들이 건학이념 계승을 내세워 사립학교법 개정 불가론을 펴고 있지만, 대부분 진리·사랑·평화 등 모든 교육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며 “건학이념 계승과 사립학교법 개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학법인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최근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국가 백년대계를 포기하는 것이며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조용기 한국사학법인연합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학의 부조리와 사학의 자율은 함수관계에 있다. 사학의 자율을 인정하면 부조리나 비위 따위는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학교 폐쇄에 대한 대책은 충격적이다. 송영식 사무총장은 학교 폐쇄 뒤 학생 수용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공립학교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학생들을 수용하면 된다”고 밝혔다.
사학의 자율성이 비리를 없앤다?
사학법인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극소수에 불과한 사학비리를 전체로 호도해 학교 운영권을 빼앗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학의 자율성이 주어질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교육단체들은 “비리 사학이 ‘일부’라는 주장은 모든 사학에 대한 감사를 전제로 할 때 가능한 말이지만 현행 사립학교법에서는 비리가 불거지기 전까지 감사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교육단체들은 참여정부가 사학의 반발에 밀리면 사학 개혁의 기회를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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