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전환과 비메모리 분야 매각으로 한숨 돌려… 파란만장한 3년여, 누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것인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한국경제의 오랜 골칫거리이던 하이닉스 반도체가 살아 돌아오고 있다. 2000년 이후 지속되던 적자가 흑자로 마침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비메모리 분야의 매각이 사실상 타결돼 재무구조를 뚜렷이 개선할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동안 들인 공이 워낙 커서 본전을 계산하기엔 턱없이 모자라지만, 더 이상 모험적인 지원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하이닉스는 예뻐 보인다.
LG반도체 인수가 화근
하이닉스의 주채권은행이자, 최대 주주인 외환은행은 지난 6월1일 전체 금융기관이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부문을 씨티그룹 산하 씨티벤처캐피탈에 매각하는 방안에 최종 동의했다고 밝혔다. 매각대금은 9500억원으로 전해졌다. 외환은행은 7월 말까지는 모든 매각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닉스에게 비메모리 분야 매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매각대금 규모부터가 매우 긍정적이다. 씨티그룹은 지난해 8월 협상에서 인수가격으로 5400억원을 제시했다. 채권단은 기업가치가 오르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으며, 씨티쪽은 9천억원대로, 이어 9500억원대로 인수가격을 올려 제시했다. 비록 매각대금 9500억원 중 현금으로 유입되는 액수는 4800억원가량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하이닉스의 재무구조는 크게 개선되고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 투자할 여력을 갖추게 된다.
하이닉스의 추락은 지난 2000년 하반기부터였다. 동아시아 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지탱하고 있던 정보기술(IT) 버블이 붕괴하면서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2000년 초 개당 5달러이던 128메가 디램값은 그해 연말 1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만들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하이닉스는 엄청난 짐을 지고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999년 LG반도체를 인수한 것이 화근이었다.
외환위기 극복이란 과제를 부여받은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 이른바 ‘빅딜’ 정책을 추진했다. 중복 과잉투자가 이뤄진 사업에서 재벌간 사업 바꾸기를 통해 핵심사업에 주력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반도체 사업도 그 대상으로 포함됐다. LG반도체와 현대전자는 모두 상대방을 인수하기 위해 애썼지만, 제3기관의 평가를 통해 반도체산업을 통합한 것은 현대쪽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인수한 반도체산업이 반도체 가격 하락과 함께 오히려 현대전자의 몰락을 재촉했다. 현대전자는 12조원에 이르는 부채와 연간 1조원이 넘는 이자 부담에 시달렸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사업보고서는 하이닉스가 걸어온 가시밭길을 보여준다. 2000년 2조4868억원, 2001년 5조735억원, 2002년 1조9478억원, 2003년 2조3130억원. 하이닉스의 적자 규모다. 4년간 적자 합계는 11조8211억원에 이른다. 엄청난 적자 속에 하이닉스가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정부의 압박에 밀린 채권단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었다.
하이닉스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2001년 정부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란 것은 만들었다. 산업은행이 주축이 되어 만기가 돌아왔으나 차환 발행이 되지 못하는 회사채를 인수해준 것이다. 물론 13개 은행이 협의를 해서 인수대상을 결정했지만, 사실상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이닉스반도체는 회사채 신속 인수를 통해 1조2천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외국 경쟁업체의 반발을 사는 것이 당연했고, 2002년부터 중단됐다. 채권단은 2002년 들어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하이닉스 매각을 추진했지만, 가격 문제로 무산됐다.
비메모리 매각은 실인가 득인가
하이닉스의 주가는 하이닉스가 사실상 망한 회사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전자 시절 2만5천원이 넘던 주가가 500원 이하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감자를 앞두고는 135원까지 떨어졌다. 하이닉스의 자본금은 26조원으로 무려 52억주나 되는 주식이 거래됐다. 특히 주가 등락이 심해 투기적인 거래를 하는 개인투자자들이 하이닉스에 달려들어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하이닉스 투자로 울어야 했다.
하이닉스가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지난해 대규모 감자에 뒤이은 채권단의 출자전환에 힘입은 것이다. 하이닉스는 무려 21 대 1의 감자를 실시했다. 옛 주식 21주를 신주 1주로 바꾸는 대규모 감자는 소액 주주들의 엄청난 반발 속에 강행됐다. 그리고 채권단은 1조원에 가까운 채권을 출자전환했다. 이로 인해 오늘날 하이닉스의 대주주는 대부분 은행이다. 외환은행이 13.8%를 가진 최대주주이고 우리은행이 13.5%, 조흥은행이 10.2%, 산업은행이 7.3%를 갖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지분은 19%에 그친다.
대규모 출자전환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된 데 이어, 반도체 경기의 회복과 함께 하이닉스의 수익성도 개선되고 있다. 지난 1분기 하이닉스는 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자본금이 1조원을 넘는 회사의 수익치고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동안 누적된 적자에 비하면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하이닉스가 1조2천억원가량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추산했다. KGI조흥증권 이재영 분석가는 하이닉스의 올해 순이익을 1조4천억원대로 예상했다.
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분야를 파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하이닉스가 메모리사업에 집중함으로써 경기변동에 따른 수익변동을 크게 겪을 뿐 아니라, 성장분야를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빼버림으로써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업의 효율성 증대라는 쪽에 무게를 두는 분석가들이 더 많다. 하이닉스는 2003년에도 비메모리 분야에 전혀 투자를 하지 못했고, 올해도 투자계획을 잡고 있지 않았다. 투자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02년 말 도이체방크가 내놓은 구조조정 방안도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매각하라는 것이었다. 하이닉스는 이번 비메모리 부문을 팔아 부채를 줄이고 나면, 내년에는 부채 비율이 70%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우증권 정창원 분석가는 “하이닉스의 재무위험이 감소함에 따라 그동안 추진해온 중국 투자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투자자들의 악몽 같은 기억
하이닉스의 주가는 지난 6월3일 1만700원으로 마감했다. 액면가의 2배를 넘는다. 지난해 4월 감자를 실시한 뒤 2650원으로 거래가 재개된 것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부터 주식을 산 투자자들이나, 5천원에 출자전환한 채권단은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과거 하이닉스 주식을 산 투자자들의 손실이 회복된 것은 물론 아니다. 21 대 1의 감자를 감안하면 현재 주가는 지난해 감자 이전 주식 수를 기준으로 할 때 500원가량이다. 최저 135원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높은 가격이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500원 이상에서 주식을 샀다가 거액의 손실을 보았다. 하이닉스는 이제 겨우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하이닉스가 완전 정상화되면 새로운 과제가 남는다. 당장은 아니지만, 현재 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을 매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하이닉스를 가져갈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파란 많은 일생을 살고 있는 하이닉스의 전설 만들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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