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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위기설’이 고개 든다

등록 2003-07-17 00:00 수정 2020-05-02 04:23

경수로사업 중단 시점에 북핵 위기 고조될 수도…남한과의 교류협력을 ‘방화벽’으로 삼은 북한

7월 초 국가안보회의(NSC)는 몇몇 대표적 남북 경협인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진 남북경협 관련 비공개 회의였다. NSC에서 핵심 관계자 4명, 민간 경협인에서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을 비롯해 6∼7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지금 북한과 사업을 벌이고 있고 가장 빈번하게 북한을 오가는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이었다. NSC는 북핵 문제로 많은 전문가들을 수시로 불러 조언을 구하였다. 그만큼 북핵 문제는 급박하고 시급한 과제였다.

평양은 의외로 활기차다

물론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북한이 최근 폐연료봉 재처리를 부시 정부에 통보했다는 외신들이 숨가쁘게 타전되면서 옆눈을 팔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NSC는 최근 남북교류협력의 유용성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교류협력의 병행 추진이 한반도에서의 전쟁 예방과 북핵 문제를 푸는 데 효과적인 보조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촉구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북핵 위기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북한 내부 사정도 NSC로서는 큰 궁금거리다. 그간 노무현 정부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대미 공조에 매달림으로써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온 점을 감안하면 미묘한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경협인들이 전하는 가장 최근의 북한 내부 사정이다. 믿기지 않을 만큼 평양이 활력에 차 있어 보인다는 주장들이었다. 이는 핵 문제로 잔뜩 위축되어 있으리라는 일반 예상과는 사뭇 다른 관찰평이다. 그것도 NSC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경협인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들은 평양 시내가 예전보다 활기가 넘쳐나고, 시민들의 표정이 더 밝아졌으며, 외국인을 상대하는 상점의 내부장식 등도 몰라보게 세련돼 있었다고 밝혔다. 즉, 일반인들의 모습에서는 핵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일반 주민들은 평양 시내 시장이 확산되고 인센티브 제도가 정착되면서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상점 점원들의 호객 행위는 더욱 일반화되고 있다는 게 참석 인사들의 전언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최근에 평양을 다녀온 한 참석자는 “군부나 대남 담당 관계자들은 미국 주도의 봉쇄 압박 공세에 적지 않은 위기감을 갖고 있는 반면에, 일반 주민들은 여전히 외부 소식을 접하지 못해 위급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진단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최근 움직임은 이전과는 다른 절박함의 극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과거와 같이 고립되어 내부 결속에만 의존해 미국에 대응하기보다는 남한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적절한 연대를 모색하면서 위기를 벗어나려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북한은 근래 보기 드문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 목표가 고립·봉쇄를 통한 정권교체에 있음을 부인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북한이 될 수밖에 없다. 물에 빠진 북한이 지푸라기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은 내년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시간을 끄는 것이 최선의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티는 문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부시 정권의 고립·봉쇄 영향권 안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로부터 송금이 급감하고, 음성적 무기 거래 등으로 챙겼던 적지 않은 목돈 마련도 이전처럼 쉽지 않게 되었다. 내부 자원의 고갈 현상은 북한 지도부가 공채와 복권 발행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장롱 속 돈까지 끌어모으려는 시도를 통해서도 일찌감치 감지된 바 있다.

중국도 서둘러 중재에 나서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서 모락모락 새어나오고 있는 9월 한반도 위기설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들은 8월 말 기술적으로 더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경수로 사업의 중단이 위기 증폭의 도화선이 되리라 예상한다. 경수로 건설 공사 중단 이전에 북한이 다자회담에 나오지 않거나, 이를 빌미로 핵개발 수위를 높일 경우 북-미간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북-미 관계에 정통한 인사들이 전하는 9월 위기설의 내용이다. 북한 지도부도 이제 더는 머뭇거리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최근 부쩍 서둘러 북한 설득에 발벗고 나서는 것도 9월 위기설 대응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 당국은 북핵 문제를 논의할 다자회담을 7월 중에 개최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이르면 이번 주에 고위인사를 북한에 보내 기존의 북-미-중에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 5자회담을 받아들이도록 북한에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사실상 기한까지 정해 조정에 나선 것은 북한쪽의 긍정적 자세를 포착했을 뿐아니라, 더 이상 문제해결이 늦춰지면 본격적인 위기가 올지 모른다고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도 최근 5자회담이 7월 말부터 8월 초순 사이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쪽은 이르면 8월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이사회가 경수로 사업 중단을 결정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대북 비난 의장성명 채택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전하며 북한에 결단을 촉구할 생각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단기적 방편으로 남쪽과의 교류협력을 방화벽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가 대북 비밀송금 특검을 수용하고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대미 공조를 강조한 바 있으며 지도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들을 적지 않게 했음에도, 북한은 관성적인 거친 수사와 달리 물밑에서는 미국의 공세에 대응한 남쪽과의 공조를 모색해왔다. 지난 제11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이 남쪽 당국에게 미국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동참하지 말 것을 유달리 강조한 점이나, 다자회담 수용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친 점, 핵 문제를 처음으로 남쪽 당국과 의논하기 시작한 점, 경협이나 사회문화 분야 교류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 등은 모두 북한의 다급한 속사정과 관련돼 있다. 당장 8·15 공동행사부터 시작해 대구 여름 유니버시아드(8월21∼31일), 류경정주영체육관 준공식(8월중)에 1천여명의 남쪽 참관단 방북, 남한 문화예술인들의 방북공연(9월), 추석을 즈음해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과 제주도 통일민족 평화체육축전(9월24∼28일) 등 남북한의 인적 왕래가 그야말로 봇물을 이루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북한은 현대아산을 비롯해 다른 몇몇 기업들과도 대규모 남쪽 관광객을 평양에 초청하는 사업을 협의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북한 지도부가 올해 안에 적게는 수천명, 많게는 수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을 세워놓고 이미 준비를 마쳤다”고 귀띔해주었다. 북한은 이런 왕성한 인적·물적 교류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9월 위기설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듯하다.

‘만약’을 대비하는 미국

문제는 상황이 북한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진전 정보를 적절하게 언론에 흘리면서 만약을 대비한 국제적 공조체제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10개국은 7월10일 2차 확산방지구상(PSI) 회의에 참석해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합동 군사훈련의 실시와 긴밀한 정보 공조 등을 합의했다. 미국은 남쪽 정부에도 북한이 핵 문제 해결에 계속해서 미온적 반응을 보이거나 핵개발 수위를 높이면 직접적으로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속도 조절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북한도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억지력 강화 명목으로 겉으로는 남쪽과 활발한 교류를 전개하면서, 이면에서는 핵무장에 바싹 다가설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물증 등이 확인된다면 남북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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