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단독] 윤 대통령, 파리서 재벌들과 술자리…엑스포 유치 나흘 전

프랑스 순방서 공식 만찬 뒤 별도 회동… 재벌 총수와 공식 만남만 올해 열두차례
등록 2023-12-16 00:16 수정 2023-12-20 12:40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2023년 6월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몰리노의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에 입장하며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2023년 6월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몰리노의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에 입장하며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2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한 한식당에서 재벌 총수들과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은 23일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파리를 방문해, 25일 현지를 출발해 26일 귀국했다. “시간은 금”(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엑스포 유치를 위해 분초를 아끼던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 술자리를 했다. 이날은 엑스포 개최지가 결정되는 28일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를 나흘 앞두고 있었다. 

수행원 없이 홀로 이동한 비공식 일정

프랑스 현지 식당과 복수의 5대 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 ㅇ식당의 2층 단독룸에서 술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엘지(LG)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참석했다. 저녁 식사에는 소주와 맥주가 곁들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 일정으로, 재벌 총수들은 수행원 없이 홀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ㅇ식당은 1994년 파리에 문을 연 고급 한식당이다. 누리집에는 “간단한 전식부터 고급 회 요리까지 음식에 맞는 와인을 추천하고 있다”고 돼 있다. ㅇ식당 관계자는 12월12일(현지시각)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 정의선 회장, 구광모 회장 등 경제인들이 다 와서 저녁 식사를 했다”며 “2층 단독룸은 15명 이상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술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했다. 정확하게 몇 명이 얼마나 마시고, 언제까지 있었는지는 얘기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업 쪽 관계자들도 윤 대통령과의 술자리 사실을 인정했지만, 끝난 시간은 엇갈렸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5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요청으로 수행 없이 총수들끼리만 참석했다. 식당 예약 등 준비도 대통령실에서 했고, 저녁 8시에 시작해 밤 11시까지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는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소폭’을 마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다른 그룹 관계자는 “ㅇ식당에서 윤 대통령이 재벌 총수 등과 함께 저녁 8시부터 술자리를 가졌다”고 말했다. 다른 그룹 관계자 역시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술자리를 했다고 전해들었는데 얼마나 마셨는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일분일초를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혼신의 대장정”

윤 대통령이 파리에 머문 23∼24일은 유치전을 향한 정부와 기업의 열기가 가장 올랐을 때다. 대통령실은 23일 영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파리로 이동할 때 “2박3일간 오·만찬과 리셉션을 통해 BIE 회원국 대표를 일일이 만나 표심을 잡는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약 5개월 만의 (파리) 재방문”이라며 “정상이 1년에 한 국가를 두 번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3일 파리 호텔에서 파리 주재 외교단과 국제박람회 대표단 60여 명을 초청해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인 24일에도 파리 브롱니아르궁에서 열린 주프랑스대사관 주최 국경일 리셉션에 참석해 엑스포 유치 활동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은 새로운 혁신을 선도하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하는 부산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고자 한다”며 “부산은 이미 여러분과 함께할 준비가 됐다. ‘부산 이즈 레디’”라고 밝혔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24일 현지 브리핑에서 “‘팀 코리아’와 함께 일분일초를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윤 대통령의 혼신의 대장정은 이 시각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엑스포 유치 관계자는 “1차 투표에서 어느 후보도 과반을 얻지 못해 결선투표에 부산과 리야드가 진출하면 로마를 지지했던 표 상당수가 부산으로 넘어와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팀 코리아’ ‘원팀’은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유치전을 펼치면서 만들어진 호칭이다. 부산엑스포 민간유치위원장이기도 한 최태원 회장은 11월13∼23일 중남미와 유럽 등 7개국을 방문한 뒤 24일부터 대통령과 행동을 함께 했다. 각 국을 방문하면서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전용기 대신 이코노미석을 타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며 “시간이 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 매일 새로운 나라에서 여러 국가 총리와 내각들을 만나 한 표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영국·프랑스 방문에 이재용·정의선·구광모·신동빈 회장 등이 함께했다. 24일의 국경일 리셉션에도 이들 인사가 참석했다. 윤 대통령이 재벌 총수와 ‘우리끼리’ 술자리를 한 것은 이 리셉션이 끝난 직후다. 

파리에는 국제박람회기구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는 물론 각국 대사관이 집중돼 있다. 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윤 대통령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 ‘대통령 특사’로 임명된 재벌 총수들과 엑스포 유치가 결정되기도 전에 ‘폭탄주’를 마신 꼴이다.

술자리가 있었던 24일은 대통령이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파리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기 전날이다. 대통령에게는 ‘뒤풀이’ 격이지만 회장단은 다음날에도 유치 전략을 이어갔다. 최태원·정의선 회장은 투표일 28일까지 남았고, 이재용·구광모 회장은 28일 이전에 한국에 도착했다. 술자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한겨레21>의 수차례 전화 연락과 문자메시지에 대통령실은 답하지 않았다.

공식 행사에도 수시로 재벌 총수 동원

5대 그룹 관계자는 “막판까지 엑스포 유치에 노력해야 할 시간에 술자리를 한 것이어서 국민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엑스포 유치는 박빙으로 결선에서 역전할 것이라는 정부 전망과 달리, 1차 투표에서 165개 회원국 가운데 29표를 얻는 데 그쳤다. 예상과 다른 참패에 29일 윤 대통령은 “제 부덕의 소치”, “제 부족함 탓”이라는 내용을 담은 담화문을 내어 유치 실패에 사과했다.

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공식·비공식 만남을 갖는 것은 물론 이들을 행사에 동원하는 것도 문제다.(표 참조) 윤 대통령은 2023년 10월 말에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용·최태원·구광모 회장 등 재벌 총수들과 비공개 만찬을 하고 이전 해외 순방 때도 재벌 총수들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행사에도 수시로 재벌 총수들을 동원하고 있다. 12월6일에도 이재용 회장 등 7명의 재벌 총수와 부산 깡통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등 ‘먹방’을 연출하고, 며칠 안 지나 12월11일에는 이재용·최태원 회장 등과 함께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이처럼 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공식적으로 함께 만난 자리는 2023년에만 12차례에 달한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인데다, 비공식 일정까지 감안하면 더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비공식적으로 술자리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공개적인 자리를 갖는 것도 걸맞은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 시장 방문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 달래기’라는 정치적 행보에 재벌 총수들을 동원한 것으로 유례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피의자처럼 생각해 자꾸 동원한다는 느낌”이라며 “정치인이 기업인들을 자주 만날수록 이들에게 정부 사업을 수주하거나 규제 회피 등을 얻어 정경유착이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처럼, 비공식 자리는 지양하고 공식 자리도 명확한 의제를 설정해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순방투쟁’의 결과이자 기록…2023년 대통령 순방 예산 578억원

미국정치학회(APSA) 회장을 지낸 에런 윌다브스키 버클리대학 교수는 예산은 정치투쟁의 결과이자 기록이라고 표현했다. 윤석열 정부의 본질을 살피려면 예산안을 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예산안을 보면 2023년보다 ‘통일외교’ 분야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건전재정’을 강조하면서 정부 총지출을 2.8%만 늘렸는데 통일외교 분야는 무려 20%가 증가했다. 특히 통일 부문을 뺀 외교통상 부문만 보면 2023년보다 32%(1조6천억원) 늘었다.
외교통상 부문 증가에 대통령 해외순방 예산이 한몫한다. ‘정상 및 총리 외교’ 사업 예산은 2023년 249억원에서 2024년 271억원으로 9% 증가한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예산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23년 대통령 순방을 위해 지출한 예산은 578억원에 달한다. 애초 예산보다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대부분 최소 1년 전부터 기획되고 추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정 예산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한 달이 멀다 하고 해외순방에 나선 것이 2022년 예산 편성 때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을, 그래서 씀씀이가 커져 부족한 예산을 예비비로 충당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2024년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위해 271억원을 책정했지만,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를 위해서인지 예비비가 5조원으로 8.7%(4천억원) 많아지면서 통일외교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늘었다. 예비비는 국회의 예산심의를 받지 않는다. 예비비는 2013년 3조9천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줄어, 2017년부터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까지는 3조원 수준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깜짝 증가도 했지만 이미 코로나19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2024년 예비비가 지나치게 증가한 것은 대통령의 해외순방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